36 현대영문헌

서로박: 웰스의 두 편의 소설 (1)

필자 (匹子) 2023. 4. 1. 09:16

1. 웰스의 두 편의 사이언스 픽션과 그의 시대비판: 미리 말씀드리자면 웰스의 문학 유토피아는 20세기 초 제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대의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의 상이며, 나아가 조만간 출현하게 될 디스토피아의 잠재적인 형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일차적으로 웰스 의 두 편의 소설, 『타임머신 The Time Machine』그리고 『잠자는 자가 깨어난다면 When the Sleeper Wakes』을 약술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작품이 우울하고 염세적인 분위기를 드러낸다면, 첫 번째 작품은 찬란한 미래를 묘사한 마지막 긍정적 유토피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웰스는 의식적으로 찬란한 미래의 사회를 멀리 떨어진 항성으로 이전시켜 놓았습니다.

 

어쩌면 그는 사회주의라는 경제적 토대 위에 이상 사회를 건설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이에 대해 커다란 아쉬움을 표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소련의 사회주의의 과업은 더 이상 실현될 수 없다고 스스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1917년 이후에 소련의 지식인들은 웰스의 이러한 입장을 조소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소련의 혁명이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던 유토피아』이후에 발표된 웰스의 작품들은 인간의 역사적 진보에 대한 어떤 회의적인 시각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20세기 초에 웰스는 미래의 낙관주의에 대해 더 이상의 커다란 기대감을 고수하지는 않았습니다.

 

2. 『타임머신』에 등장하는 두 계층: 1895년에 발표된 그의 소설 『타임머신』은 비관적이고 염세주의적인 미래상을 보여줍니다. 절대적인 계급투쟁을 쟁취하기 위해서 싸우는 이야기는 의외로 기괴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름 없는 주인공은 타임머신을 타고, 사차원의 시간을 운행하여 서기 802701년의 공간에 도달합니다. 그곳에서 주인공이 처음 목격한 생명체들은 마치 귀여운 요정과 같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일견 아름답고 온화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미래의 공간은 다만 겉보기에 아름다운 전원일 뿐입니다. 자연 속에는 유희하는 아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엘로이”라고 명명되는데, 약 5세 아이의 지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엘로이들이 어둠이 도래하면 모든 놀이를 멈추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넓고 폐쇄된 홀 속으로 몸을 숨긴다는 사실입니다. 홀의 벽에는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아마도 파괴된 과거 문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마이센의 도자기 제품에 그려진 그림들을 연상시키게 합니다. 따라서 흐릿한 벽화가 이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3. 험상궂게 생긴 몰록: 엘로이들은 마치 아름다운 꽃과 같은 아이들로서 지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모자라는 생명체들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몰록”을 무서워합니다. 몰록은 매우 험상궂게 생긴 생명체인데, 미래의 또 다른 인간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얼굴은 무척 창백하고 턱이 없습니다. 몰록은 불그스레한 커다란 눈동자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하의 거대한 공장 건물에서 거주하면서, 거대한 기계를 가동시키는데, 엘로이와는 달리, 육식을 즐깁니다. 그들은 어둠이 깔리면 자상으로 올라와서 엘로이들을 한 명씩 잡아먹습니다. 미래의 두 인간형은 시간 여행자가 처하고 있는 시대적 갈등에 대한 반대급부의 상입니다.

 

사실 웰스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부의 차이 내지는 갈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간 여행자는 처음에 엘로이를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회의 계층으로 간주였습니다. 이에 비하면 지하에서 살아가는 몰록들은 가진 것 없이 힘든 삶을 영위하는 무산계급으로 여겨졌습니다. 처음에는 겉보기에 아름답고 우아한 상류층 사람들이 아무런 근심 없이 사치스럽게 살아가는 것 같았지만, 나중에는 엘로이들이 유약하고 지적으로 열등한 인간으로 전락한 자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말하자면 행운과 부유함이 그들에게서 삶의 가치를 깊이 숙고할 기회를 모조리 앗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엘로이들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더럽고 메스꺼운 노동은 영위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하에서 살아가는 혐오스러운 얼굴의 몰록들이 거대한 기계를 가동시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몰록들은 비지땀을 흘리면서 마치 엘로이들이 의식주에 필요한 물품들을 생산해내는 것 것처럼 보였습니다.

 

4. 인간에 대한 역사적 보복: 시간 여행자는 몰록이 거주하는 지하 세계를 탐색한 다음에, 모든 정황을 파악합니다. 이때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맨 처음의 판단을 대폭 수정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엘로이들이 결코 관료주의를 표방하는 엘리트 계층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미래 사회에서 그저 풀을 뜯어먹고 살아가는 가축에 불과하며, 마치 개미와 같이 일하는 몰록들이 이들을 보호하다가, 하나씩 사냥하여 잡아먹고 있습니다.

 

처음에 시간 여행자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처절한 계급투쟁의 싸움으로 인하여 결국에 이르러 천진난만하고 아름다운 요정, 엘로이 그리고 피의 사육제를 즐기는 험상궂은 기이한 존재, 몰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과거의 계급투쟁은 여기서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엘로이들은 풀을 뜯으며 살아가는 단순한 가축들이며, 몰록들은 이들을 키우고 보호하다가 그냥 한 명씩 잡아먹을 뿐입니다. 문제는 같은 인간 존재로서의 생명체가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행해지는 사냥, 살인을 자행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5. 시간 여행자의 방랑: 시간 여행자는 몰록이 무서워서, 타임머신을 타고 더욱 먼 미래로 향합니다. 약 300만년 이후의 시기에 타임머신은 지구에 당도합니다. 인간은 어느새 지구에서 사라지고 없습니다. 붉은 태양의 불빛이 약화되어 흐릿한 빛만 내뿜고 있는데, 지상에 존재하는 것은 그저 원시적 생명체밖에 없습니다. 시간 여행자는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현세로 돌아옵니다. 주위 사람들은 그의 시간 여행 그리고 그의 신비로운 체험에 대해 반신반의합니다. 시간 여행자는 카메라를 지닌 채 다시 제 2차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작품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인간은 진화를 통해 과학 기술 문명을 발전시켰으나, 결국 기이한 생명체를 탄생하게 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육체 없는 정신적인 생명체, 엘로이를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영혼을 상실한 사악한 몰록을 가리킵니다. 전자는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유약한 존재이며, 후자는 인간애, 동정심이라고는 추호도 없는 악랄한 존재입니다. 어쩌면 작가는 다음을 말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동지애 그리고 정의로움을 무시하고 박애주의를 외면하다가 인류는 종국에 이르러 역사적으로 어떤 끔찍한 보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천 세대 이전에 인간은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서 그리고 태양 빛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형제자매들을 추방시켰다. 이제 추방당한 형제들은 완전히 변한 모습으로 인류에게 보복하고 있다.” (Wells: 69)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