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생태 공동체와 대아 유토피아 (3)

필자 (匹子) 2020. 9. 20. 11:53

8. 21세기 유토피아의 세 가지 경향 (3): 셋째로 21세기에 출현할 두 번째 유토피아는 생태 공동체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가 중심이 아니라, 비-국가 중심의 크고 작은 코뮌 운동을 지속적으로 활성화시키려고 합니다. 가령 현대의 문제점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첫째로 계층의 구분으로 인하여 인간 사이의 갈등과 차별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둘째로 생태계를 파괴하도록 간접적으로 작용한 인간중심주의에 근거한 일방적 휴머니즘에 하자가 있습니다. 셋째로 성 그리고 인종 등의 차별을 들 수 있습니다. 넷째로 현대의 삶을 위협하는 것은 핵에너지 개발과 관련된 자연과학자의 일방적 연구 그리고 국가 이기주의에 근거한 범국가적 차원의 정책 등입니다, 이것들은 더 이상 거대한 국가 차원의 정치적 유토피아에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21세기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자본주의의 폭력일 것입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국가적 차원의 사회주의 운동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 2의 소련은 더 이상 탄생하지 않을 테니까요, 대신에 우리는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생태 공동체 운동에 최소한의 기대를 걸 수는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회생태학자, 머레이 북친 Murray Bookchin도 암시를 던진 바 있지만, 생태 공동체의 자치, 자활 그리고 자생의 운동은 작은 범위에서나마 거대한 국가 사이의 무역 그리고 독점 자본주의의 경제에 제동을 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9. 유럽과 남한의 생태공동체 (1): 생태 공동체에 관해서 세밀하게 언급하기 전에 우리는 일차적으로 유럽과 남한의 생태 공동체에 관하여 비교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생태 공동체의 결성의 이유가 서로 다릅니다. 유럽 사람들은 개인주의의 생활습관으로 인하여 대체로 외롭게 살아갑니다. 통계에 의하면 유럽 남자들은 평균적으로 여섯 번 이혼하고, 일곱 번 결혼하며, 유럽 여자들은 평균적으로 두 번 이혼하고 세 번 결혼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대체로 자기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외로움을 가장 고통스러워합니다. 유럽인들이 생태 공동체를 통하여 공동의 삶을 영위하는 까닭은 고독과 외로움을 떨치기 위함입니다. 이에 비하면 남한 사람들은 농촌 살림 그리고 생명 살림에 커다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사회보장 제도가 거의 존속하지 않고, 빈부 차이가 극심한 남한에서 생태 공동체는 더 이상 자본주의의 먹이 피라미드에서 상부로 향해서 나아가지 않고, 겸허한 자세로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결성된 것입니다.

 

10. 유럽과 남한의 생태 공동체 (2): 둘째로 유럽의 생태 공동체는 경제적으로 그렇게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그들은 생태 친화적으로 공동체를 운영하며, 자원을 아끼며 생활합니다. 놀라운 것은 일부 공동체는 생태 친화적인 건물을 건설하고, 고도의 자연과학 기술을 실생활에 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중세의 목골 가옥을 짓는가 하면,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여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조달합니다. 유럽의 생태 공동체에 비하면 남한의 생태 공동체는 경제적으로 시정부로부터 어떠한 보조를 받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태 공동체는 특수한 물품을 생산하여 이익을 극대화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파산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이를테면 공동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자급자족해야 할 뿐 아니라, 외부에 판매하여, 최소한의 이윤을 남겨야 합니다. 필요한 물품의 경우 외부에서 구입해야 합니다. 남한의 생태 공동체가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유럽의 생태 공동체 사람들보다 더 깊고도 절실한 생태 의식을 표방합니다. 왜냐하면 남한의 생태 공동체는 대체로 시골의 사찰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며, 불교의 생명 사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11. 유럽과 남한의 생태 공동체 (3): 셋째로 유럽의 생태 공동체의 경우 사랑의 삶에 있어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전통적 가족 체제 속에서 파트너를 잘못 만나서 불행하게 살던 사람들은 공동의 삶을 통해서 행복을 누리려고 합니다. 이에 비하면 남한의 생태 공동체는 전통적 가족 구도를 파기하지 않습니다. 명상과 극기를 통해서 자신을 부자유스럽게 살게 만들던 자아의 구속 상태를 떨치려고 애를 씁니다. 올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는 말년의 작품 『섬』에서 불교의 명상과 마약 그리고 자유로운 성을 동시에 실천하는 팔라 섬사람들을 묘사한 바 있는데, 이는 실제로 극동 지역의 생태 공동체에서 한 번도 나타난 바 없는 가상적인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그밖에 유럽과 남한의 생태 공동체는 한 가지 공통되는 일을 추진합니다. 그것은 교육 프로그램과 관련되는 사항입니다. 이를테면 생태 공동체는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켜서, 주말에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그렇게 하면 도시의 각박한 현실에서 살아가는 일상인들은 주말에 공동체를 방문하여, 특정한 테마의 교육을 받으면서 휴식을 취하면서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습니다. 남한의 생태공동체의 경우 도농 교류, 신토불이 장터 등과 같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방문객들에게 향토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고 참가비를 수령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