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생태 공동체와 대아 유토피아 (5)

필자 (匹子) 2020. 9. 20. 11:54

14. 제도냐, 의식이냐?: 상기한 이유로 인하여 우리는 어쩌면 서양의 제도가 아니라, 동양의 의식에 대해 어떤 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체 유토피아 역시 인간의 의식과 직결되는 개념입니다. 그것은 전체주의적 권력의 횡포에 대해 개개인이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지키려는 노력에서 출발합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사회주의 체제를 통하여 개개인의 권리가 사회적으로 용납되기를 갈구하였습니다. 개인의 권리가 사회로 확장되면, 사회는 보편적 권리를 개인에게 환원되리라고 성급하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동구의 사회주의 실험에서 드러났듯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여러 가지의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소수의 엘리트 관료들이 국가의 거대한 시스템을 인위적으로 작동시켰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주체 유토피아는 어떤 공동체 내지 코뮌의 운동으로써 해결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더 큰 자아의 안녕을 추구하는 사고는 개개인 사이의 협동과 상호 부조를 통하여 실천될 수 있을 것입니다.

 

15. 개인주의 그리고 계약의 한계: 서구에서의 주체의 개념이 너무 잘게 나누어져 있습니다. 서양에서의 개인은 말 그대로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존재 Individuum”로 표현되지 않습니까? 이는 서양의 철저하게 분할된 소유 관계에 기인합니다. 문제는 수많은 자아들이 자신의 개별적 권리를 요구하고 이를 관철시키려는 데 있습니다. 작은 주체 내지 작은 자아들이 제각기 자신의 권한을 요구할 때에는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갈등이 출현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개인의 자기 권리를 법적으로 확정시키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계약에 바탕을 둔 실정법을 강화시켰습니다. 맨 처음 실정법은 개인의 자기 권리를 고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를테면 로마법이 확정된 근본적 계기가 채권자의 소유권을 분명히 규정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십시오. 자고로 계약은 올바른 법 규정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법 규정이 바람직하게 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개개인 사이의 알력과 마찰은 필연적으로 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민법이 제 아무리 상세하게 분화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모든 삶의 문제점을 포괄할 수는 없습니다. 둘째로 개체의 권리는 전체의 권리로 확장되고, 전체의 권리는 개체의 그것으로 환원되어야 하는데, 계약의 조건 하에서는 제반 갈등이 완전히 해결되는 게 아니라, 서로 조정될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대립하는 견해들이 제각기 소멸되는 게 아니라, 합리적 방식으로 그냥 분할될 뿐입니다.

 

16. 자아 그리고 영혼: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은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자아에 대한 집착은 자유에 대한 의식을 부추기고 자극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권리에 대한 끝없는 요구사항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아에 대한 집착은 때로는 인간의 심리를 해치게 만들곤 합니다. 이에 반해서 영혼은 어떠한가요? 개별적 자아는 구분되지만, 개별적 영혼은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사랑과 우정은 자아의 개념으로 이해될 게 아니라, 믿음, 영혼 등을 지닌 대아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는 비록 몸이 사랑하는 임과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사랑하는 임과 함께 있다고 믿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더 큰 자아를 위해서 우리는 자아에 대한 집착을 떨쳐야 하며, 그 대신 영혼의 힘을 찾아내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의식 내지 영혼의 차원에서 개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더 큰 자아를 도모하는 마음을 견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결국 협동적이며 이타주의적인 생활관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제도의 차원에서 고찰할 때 기존의 국가 체제 대신에 작은 소규모의 공동체를 위한 사회 토대 속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17. 생태 공동체 운동의 전제 조건: 인간의 의식은 마르크스도 언급한 바 있듯이 주어진 현실적 처지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한 인간의 경제적 토대가 그의 의식을 규정하게 되는 법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 서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고가 현실을 추동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며, 현실 자체가 사고를 추동해야 한다.” (Marx: 386). 따라서 중요한 것은 주어진 현실이 얼마나 하나의 변화를 위해서 무르익고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만약 개인이 이기심을 저버리고 더 큰 자아의 삶의 방식을 실천하려면,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회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21세기의 현실적 특성을 고려할 때 소규모의 공동체 운동이 적절합니다. 왜냐하면 국가 구도의 자본주의 계층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자본주의 경쟁 및 이윤 추구의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약하건대 개개인이 더 큰 자아, 다시 말해서 우리로 의미론적 확장을 이우려고 한다면, 일차적으로 하나의 제도적 장치,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새로운 삶을 실천하려는 공동체의 틀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기존하는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의 구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려면, 인간은 일차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된 영역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게 된 연후에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결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18. 인간은 협동하고 아우르며 살아가는 영혼의 생명체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철학, 사회학 그리고 심리학의 영역에서 인간 그리고 인간학에 관하여 연구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여러 학설을 방만하게 소개하는 것은 아마 무의미할 것입니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타자와 함께 사회적으로 공존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유기질의 세포를 생각해 보세요. 세포들은 개별적 개체들이지만, 상호 영향을 끼칩니다. 만약 조직체 전체가 건강하고, 외부로부터의 위협이나 압력이 없는 경우 유기적으로 서로 아우르고 협력합니다. 마찬가지로 개개인 역시 상호성의 관점 하에서 서로 돕고 협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어떤 근본적인 압력을 받거나 경제적 차원에서 이윤추구의 경제 구도의 악영향을 받게 되면, 유기질 내부에 생동하는 세포들은 제각기 고립화되어 아포의 상태로 응축되고 맙니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사람들은 아집, 독선 그리고 편견을 견지하며 대부분 깍두기로 살아가는 이유는 그들이 자본주의의 경쟁 구도의 틀에 얽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19. 공동체의 필요성에 관하여: 복지 없는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는 오로지 부딪치고 싸우는 자아들만 존재할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랑과 우정, 평등과 자유를 찾으려는 노력은 모조리 헛수고일 뿐입니다. 따라서 대아의 사고를 실천하려면, 영혼의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자아를 저버리고 (이종영: 308), 평등한 삶을 추구하는, 독자적인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결성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래야 외부의 질서, 다시 말해서 기존의 자본주의 국가가 행사하는 나쁜 영향으로부터 그나마 조금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생태 공동체 운동은 남한의 경우 지방자치와 관련된 풀뿌리 민주주의, 공생 공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현재에는 아직 부족한 면 그리고 갈등이 온존하지만, 생태 공동체 운동은 언젠가는 이것들을 극복하고, 어떤 다른 환경 평화 운동과도 접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이 운동은 풀뿌리 민주주의, 평화 통일 그리고 남녀평등 등과 같은 거창한 과업에도 영향을 끼칠 게 확실합니다. 마치 돌멩이 하나 빼내는 작은 일 하나가 거대한 저수지의 썩은 댐을 무너뜨리듯이, 나사렛 출신의 그리스도가 믿음을 위한 작은 행동으로써 거대한 로마 제국을 붕괴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듯이, 생태 공동체 운동은 나중에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자본주의의 메가 시스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참고 문헌

 

- 전춘명: 생태공동체 확산을 위한 기반 제도, 실린 곳: 국중광 외: 한국 생태공동체의 실상과 전망, 월인 2007, 275 - 302.

- 김익중 외: 탈핵학교, 반비 2014.

- 이종영: 영혼의 슬픔, 두 개의 삶 사이에서, 울력, 2014.

- Bookchin, Murray: Die Ökologie der Freiheit. Wir brauchen keine Hierarchien, Weinheim/Basel 1985.

- Buckminster Fuller, Richard: Ideas and Integrities: A Spontaneous Autobiographical Disclosure (Series Editor Jaime Snyder), Lars Müller Publishers, Baden/CH 2010,

- Marcuse, Herbert: Das Ende der Utopie, Berlin 1967.

- Marx, Karl: Zur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Einleitun, in: MEW, Berlin 1953.

- Rinpoche, Sogval: Das tibetische Buch vom Leben und vom Sterben Ein Schlüssel zum tieferen Verständnis von Leben und Tod. Fischer-Taschenbuch-Verlag, Frankfurt am Main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