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생태 공동체와 대아 유토피아 (1)

필자 (匹子) 2020. 9. 20. 11:52

 “심리적 고통에서 해방되려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떨쳐야 한다.” (Sogyal Rinpoche)

 “기존의 것만 얻으려 한다면, 결코 변화를 이룩하지 못할 것이다. 무언가 변화시키려면, 과거의 것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어떤 새로운 모델을 축조해야 하리라.“ (Buckminster Fuller)

 

1. 미래의 가능성: 지금까지 우리는 비판적 역사적 시각에서 유토피아의 역사를 세부적으로 천착해보았습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적 흐름과 병행해서 나타난 것들이지만, 시각과 방향에 있어서는 수미 일관적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연구의 대상은 역사 속에 출현한 것이지만, 연구 내용의 방향은 언제나 미래로 향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U, 나는 이 자리에서 다시금 지금까지 출현한 제반 유토피아의 수많은 면모를 요약하고 정리하지는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나타난 문학 유토피아 내지 정치적 의미를 지니는 유토피아의 사고는 한편으로는 방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 사항에 있어서 제각기 독자적 고유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반 유토피아들이 독자적 고유성을 지니는 까닭은 그것들이 제각기 주어진 시대의 사회적 관련성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유토피아는 주어진 특정한 현실적 관계 속에서 일차적으로 비교되는 게 급선무일 것입니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존재가치를 지니는 유토피아들을 시시콜콜 재론하는 대신에, 주체 유토피아 그리고 대아의 삶을 실천할 수 있는 미래의 생태 공동체에 관하여 약술함으로써 “유토피아의 연구”라는 대장정을 마치려고 합니다.

 

2. 21세기 유토피아의 세 가지 경향 (1): 일단 21세기에 출현할 세 가지 유형의 유토피아에 관해서 조심스럽게 언급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유토피아는 생태학의 유토피아와 관련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에너지, 인구, 생태계 문제일 것입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태에서 나타났듯이 핵에너지는 판도라의 상자 속에 담긴 “신의 선물”로서 가장 끔찍한 파국을 안겨줄지 모를 일입니다.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많은 사람들이 핵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핵의 개발이 오늘날 얼마나 인간 삶에 위험한 요인으로 작용하는지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아가 인구의 증가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습니다. 이를테면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은 마치 제어할 줄 모르고 달리는 고속 기차를 방불케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자연과학의 발달과 자연과학자의 눈먼 연구는 사이언스 픽션에서 자주 다루는 제재입니다. 가령 어술러 르 귄 Ursula Le Guin의 『빼앗긴 자들. 어떤 모호한 유토피아』에 묘사된 혹성 유토피아는 바로 이러한 지구상의 제반 문제점과 관련하여 설계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달에서 살아가는 가능성이라든가, 우주를 개발하여 그곳에서 생활 터전을 마련하는 일은 아직도 요원한 미래의 일일 것입니다. 우주 개발에 관한 낙관적 미래주의는 에른스트 블로흐 Ernst Bloch도 언급한 바 있지만, 현대 사회에 주어져 있는 근본문제를 그저 비켜갈 뿐입니다. 왜냐하면 지구상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갈등은 우주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지상에서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 상태로서는 좋든 싫든 톨레미주의자로 남을 수밖에 없으며, 지금 여기의 경제 문제에 일차적 관심을 기을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3. 21세기 유토피아의 세 가지 경향 (3): 21세기에 출현할 두 번째 유토피아는 남녀평등과 직결되는 성 평등의 유토피아를 가리킵니다. 흔히 사람들은 사랑의 삶과 가족제도에 관한 문제가 정치적 제도의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지레짐작합니다. 그러나 이는 엄청난 착각입니다. 인간 삶에 있어서의 가장 내밀한 사랑과 성의 문제는 국가의 가장 작은 규모의 정치 체제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기에 빌헬름 라이히 Wilhelm Reich 그리고 주디스 버틀러 Judith Butler 등은 “성 정치 Sex-Politic”라는 용어를 서슴없이 사용한 바 있습니다. 성, 가족 사랑의 영역이 정치의 영역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현상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농간 때문입니다. 모든 영역이 철저하게 폐쇄적으로 분화되어 있는 남한 사회에서는 정치가 오로지 정치가의 전유물로 간주되는 기현상은 마치 당연지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학생은 공부만 하고, 정치가만 정치에 신경을 쓰며, 경제인만 돈벌이에 혈안이 되고, 가정주부는 가사에만 골몰하면, 세상은 잘 돌아갈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과 성, 성과 결혼, 결혼과 출산의 문제는 개인의 사적인 사항이 아니라, 그 자체 사회와 국가가 담당해야 할 몫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낙태의 문제, 매춘의 문제 그리고 이혼의 문제는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중대사가 아닙니까? 이를 고려한다면 성이 근본적으로 지배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