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브라쉬의 '아버지보다 아들들이 먼저 죽는다'

필자 (匹子) 2018. 11. 14. 09:12

친애하는 J, 오늘은 다재다능한 비련의 작가, 토마스 브라쉬 (Thomas Brasch, 1945 - 2001)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토마스 브라쉬는 시, 단편 소설, 장편 소설, 극작품, 시나리오, 평문 등을 집필하였을 뿐 아니라, 배우, 연출가,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했습니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브라쉬가 다루는 문학적 주제가 결코 한두 가지의 틀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의 문학적 주제는 국가의 문제, 현대인의 소외된 삶, 예술에 관한 성찰, 자연 파괴의 문제 등 무척 다양합니다. 이러한 다재다능한 그의 능력은 아쉽게도 찬란하게 만개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오랫동안 이른바 정겹지만 폐쇄적인 동독에서 작품 발표의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외부의 검열 체계는 오랜 기간 동안 작가의 의식 속에서 자기 검열로써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토마스 브라쉬는 영국으로 망명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47년에 가족들은 동쪽 독일 지역, 즉 소련 점령 지역 (SBZ)으로 이주했습니다. 여기서 그의 아버지 호르스트 브라쉬 (1922 - 1989)는 정치적 경력을 쌓습니다. 그는 나중에 동독 문화 부수상의 관직까지 승승장구하지요. 토마스 브라쉬는 아비투어를 끝낸 뒤에 기계공, 인형극 작업자 그리고 식자공으로 일했습니다. 1964년에서 1965년까지 라이프치히에 있는 카를 마르크스 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동독의 지도자들을 비아냥거렸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제적당합니다. 그 후에 그는 식당 웨이터 그리고 도로포장 노동자 등으로 일해야 했습니다.

 

1966년 브라쉬는 베트남 공연극을 집필하여 베를린 인민극장에서 상연하려고 했으나, 당국에 의해서 금지 당했습니다. 1967년부터 1968년까지 그는 바벨스부르크에 있는 연극 영화를 위한 연출 수업을 받았습니다. 1968년 그는 소련의 체코 침공에 항의하는 삐라를 살포하다가,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체포된 자들 가운데에는 동독의 반체제 인사 로베르트 하베만의 아들 플로리안 하베만도 있었습니다. 토마스 브라쉬는 2년 3개월 구금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가 1969년에 집행 유예로 풀려납니다. 그후 그는 헬레네 바이겔의 도움으로 1971년에서 1972년까지 브레히트 문서실에서 일합니다. 이때부터 그의 일련의 극작품들이 탄생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체제비판적인 테마 그리고 실험 형식 때문에 그의 극작품은 구동독에서 단 한 번 상연되었을 뿐입니다.

 

1976년 브라쉬는 볼프 비어만 사건 이후에 서독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1982년 서독 펜클럽의 회원이 되었으며, 그의 영화 「철로 된 천사 (Engel aus Eisen)」(1981)로 바이에른 영화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방송극 「로베르트, 나, 사육제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 클라이스트 방송극 상을 받았습니다. 1986년부터 그는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1987년 『행인 (der Passagier)』이라는 영화의 연출을 맡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스타, 토니 커티스를 주연으로 삼게 되자, 연출가로서의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였지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토마스 브라쉬는 절필합니다. 동독의 몰락은 작가에게 심혈을 기울여 작품에 몰두할 대상을 상실하게 만든 게 분명합니다. 브라쉬는 술과 마약으로 말년을 보내다가, 1999년에 『처녀살인자 브룬케 Der Mädchenmörder Brunke』라는 산문집을 발표하여 세인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원래 그는 약 만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쓰려고 계획했다고 합니다. 같은 해 그의 극작품 「장화는 죽어야 한다.」,「소포클레스의 트라키아 여인들 혹은 권력 사랑 죽음」이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2000년 「여성들의 전쟁 세 가지 덧칠들」이 다시 공연되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극작품 「베를린에서 유래한 동화 코미디」는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작품집 『아버지 이전에 아들들이 죽는다 (Vor den Vätern sterben die Söhne)』는 1977년에 서베를린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브라쉬는 이전에는 구동독에서 산문 작품집을 간행할 수 없었습니다. 서베를린의 로트부흐 출판사가 브라쉬의 원고를 입수하게 되었을 때, 동독의 문화 관청은 작가에게 출판을 허가할 수 없다고 재차 통고하였습니다. 이때 브라쉬는 서독으로 이주합니다. 당시에 브라쉬는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습니다. “그동안 나는 여섯 편의 극작품, 200여 편의 시작품 그리고 두 편의 공연 대본을 집필하였으며, 로트부흐 출판사에 커다란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 작품집이 간행된다는 것은 나에게 무척 중요합니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나라에서 작가로서 출발할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내용 뿐 아니라, 주어진 여건으로 인하여 브라쉬의 작품집은 커다란 호응을 얻게 되었습니다. 서구의 독자들은 전쟁 이후의 세대에 속하는 젊은 작가가 동독의 일상을 어떻게 비판하는가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지요. 작품집은 3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도합 11편의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동독의 편협한 일상 현실과 정체적 분위기를 벗어나려는 젊은 작가의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텍스트는 「두 영웅의 싸움 Zweikampf」이지만, 다음 기회에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인간을 마비시키는 “현재 상태 (Status quo)”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출구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베를린 장벽을 넘어서 서구의 비트와 로큰롤 문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비트 문화 그리고 로큰롤 문화는 싫든 좋든 간에 미국 자본주의의 상업 문화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J, 바로 이 대목에 주의하기 바랍니다. 1945년생 동독 출신의 작가는 정체된 사회주의의 답답한 현실에서 만족할 수 없지만, 서구 자본주의 체제의 현실에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독의 풍토는 무엇보다도 “돈”을 최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공동생활과 협동 정신을 추구하는 삶이 실효를 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브라쉬와 같은 동독 출신의 작가에게 바람직한 땅은 주어진 현실에서 결코 발견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체념하고 절필을 구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고 그는 외쳤다, 탯줄을 끊는 일이야. 그건 내 목을 칭칭 감고 있거든. 모든 것을 달리 만들고 싶어. 공장과 자동차가 없었으면 좋겠어. 검열 그리고 손목을 자극하는 시계가 없기를 바라고 있어. 두려움도 경찰도 없었으면 좋겠어.”

 

작품집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부각되는 것은 주관적 자유입니다. 이는 브라쉬의 이후의 텍스트 그리고 시나리오 등에서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브라쉬에게 구동독의 부자유스럽고 전체주의적인 현실에 대한 예리한 비판을 기대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브라쉬는 동서독의 현실을 뛰어넘어서, 이른바 인간 삶 전체에서 태동하는 여러 가지 갈등의 존재론적인 측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브라쉬의 작품집에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예리하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즉 동독은 자본주의 그리고 파시즘을 극복하려는 역사적 선택으로 탄생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이너 뮐러가 말한 바 있듯이 사회주의의 이상으로부터 변형된 어떤 현실적 몰골을 지니고 있다는 점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브라쉬는 일차적으로 동독이라는 국가 체제는 개개인들의 자기실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작품 속에 드러내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러한 주제는 1977년에 간행된 그의 카르고 (Kargo) 텍스트 뿐 아니라, 70년대 동독 문학의 보편적 테마와 관련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브라쉬의 작품집 제목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로 그것은 80년대 동독 작가들의 보편적 심리 상태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50년대 이후에 태어난 구동독의 젊은 작가들은 “아비 없는 세대 (die vaterlose Generation)”에 해당합니다. 그 까닭은 후배 작가들에게 정신적 지주로 작용할 중견 작가들이 비어만 사건 이후 절필하거나 서독으로 이주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것은 혁명 세대 그리고 혁명 이후의 세대 사이의 갈등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가령 하이너 뮐러가 「볼로콜람스커 국도 III」에서 묘사한 바 있듯이, 혁명 전의 세대는 혁명 이후의 세대와 갈등을 빚습니다. 그밖에 브라쉬의 이력이 이에 대한 범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아버지보다 아들들이 먼저 죽는다.”는 말은 레닌과 스탈린 사이의 노선 변경, 소련과 공산 위성 국가의 관계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같습니다. 볼프강 레온하르트 (Wolfgang Leonhardt, 1921 - )의 책 『혁명은 자식들을 쫓아낸다 (Die Revolution entläßt ihre Kinder)』를 읽으면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즉 구동독의 노회한 정치가들이 얼마나 소련의 정치가들의 행보를 그대로 답습했는가 하는 점 말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즉 독재보다도 무서운 것은 독재자에게서 모든 것을 답습한 하급 신하들의 횡포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