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퓌만의 유대인 자동차

필자 (匹子) 2017. 7. 15. 15:07

 

구동독 출신의 작가이자 시인인 프란츠 퓌만 (Franz Fühmann, 1922 - 1984)의 소설집, "유대인 자동차. 20년에서 비롯한 14(Judenauto. Vierzehntage aus zwei Jahrzenten)"1962년에 발표되었다. 소설집에는 총 14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1959년에서 1961년 사이에 쓰인 것들이다. 1929년에서 1949년 사이의 시기는 현대 독일의 역사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사건을 포함하고 있다. 가령 20년대의 경제 위기의 시기로부터, 2차 세계대전을 거쳐, 동독의 건립에 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과정을 생각해 보라. 모든 사건은 22년생의 작가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발문에서 프란츠 퓌만은 다음의 사항을 분명히 지적한다. 즉 자전적인 요소가 소설의 중심이 아니지만, 제반 사건들은 작가 자신의 삶과의 관련 속에서 비판적으로 투영되었다고 말이다.

 

실제로 퓌만은 제 2차 세계대전에 독일군으로 참여하여, 1947년에 소련의 포로수용소에서 귀국했다. 뒤이어 그는 두 권의 시집을 간행했다. 예컨대 스탈린그라드로 향하는 여행 (Die Fahrt nach Stalingrad)(1953), 난초 니코스 (Die Nelke Nikos)(1953)이 바로 그것들이다. 60년대 초 동독에서는 노동자 세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시키자는 의도에서 비터펠트 운동이 주창되었는데, 퓌만은 이에 대한 배경 등을 작품 철선 기중기 그리고 푸른 페터(1961)에서 거론한 바 있다. 그렇지만 퓌만은 무엇보다도 국가 사회주의에 관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퓌만은 젊은 시절에 국가 사회주의에 열광하였다. 작품은 이러한 사고의 전제 조건 및 결과가 나중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명확하게 지적해 준다. 한마디로 파시즘은 젊은 인간의 사고 자체를 열광의 슬로건 속으로 몰아넣고, 어떠한 의심조차 느끼지 못하게 작용하였던 것이다.

 

작품집의 제목에 해당하는 단편 유대인 자동차. 1929, 세계 경제 위기는 주데텐란트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유년의 시각을 동원하여, 이 지역에서 발생했던 반유대주의적 분위기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예컨대 9세의 소년은 이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서술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자신의 예식을 위하여 기독교 아이들을 죽인다는 것이다. 밤이 되면 네 명의 검은 유대인 살인자들이 노란 차를 몰고, 이리저리 돌아다닌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쁜 계집아이를 포획하여, 살육한 뒤에 그녀의 피로써 마법의 빵을 굽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소년의 상상 영역을 온통 경악으로 가득 채운다.

 

어느 날 소년은 자신과 한 반인 여학생 집의 근처에서 노란 자동차를 바라보고, 끔찍하게 놀란다. 자동차 안에는 네 명의 남자들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운전석에 앉은 험상궂게 생긴 남자는 소년에게 말을 건다. 어쩌면 잡혀 죽을지 모른다! 소년의 모골은 송연해 진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에 소년은 이를 악물고 어디론가 도주한다. 다음날 소년은 학교에 가서 피 묻은 장검을 흔드는 네 명의 유대인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에 그는 여학생을 가리키기도 했다. 심지어는 선생님 역시 소년의 이야기에 맞장구치면서, 유대인에 대해 전율을 느낀다. 이때 여학생은 당시의 정황을 설명해 준다. 삼촌이 친구들과 자신의 집을 찾았는데, 소년에게 길을 물었다는 것이다. 소년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자존심을 되찾기 위하여 소년은 끝까지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어지는 소설, 라이헨베르크 체육관의 보호. 뮌헨 협회 이전의 19389에서 소년은 나치 동조자 대열에 가담한다. 독일과 체코 사이의 국경 지대에서는 독일인들의 인종 차별에 대항하는 운동이 퍼지고 있었다. 이때 제국 독일 방송국은 이러한 운동을 체코인들의 선동 선전이라고 단정하고, 이러한 발언을 왜곡시켜 독일 전역에 들려주었다. 가령 체코에 살고 있는 유대인 공산주의자들은 평화롭게 살고 있는 주데텐 독일인들에게 끔찍한 테러를 가한다는 것이었다. 라이헨베르크에 살고 있는 독일의 젊은이들은 이 사실을 직접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고 믿게 된다. 이때 하나의 소문이 전해진다. 즉 체코 사람들이 라인헨베르크에 있는 어느 체육관에서 폭탄을 터뜨릴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젊은 나치 당원들이 이제 무언가를 계획한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의 용맹성을 증명할 좋은 기회라고 했다. 그들은 체육관을 무력으로 점거하고 하루 종일 농성을 벌린다. 체코 경찰은 그곳을 폐쇄하고, 청년들을 집으로 귀가시킨다. 다음날 독일 방송은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체코 경찰은 라이헨베르크에서 무고한 학생들을 급습하여, 하루 종일 그들을 인질로 묶어두었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단어들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눈망울을 번쩍거리며, 뉴스를 듣고 있었다.” 그것들은 괴벨스의 선전 용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믿었던 모든 게 거짓이라는 인식은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작가의 뇌리에 떠오른다. 이는 소설 모두에게 스탈린그라드를. 19431, 스탈린그라드 근처의 전투에서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이어지는 소설 코카서스의 비 내리는 날. 1946421, 독일 공산당 그리고 사민당 사이의 연합일은 작가의 포로 소용소 생활을 기술하고 있다. 작가는 반파시즘 학교에 다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작가는 아무 어려움 없이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세운다. 국가 사회주의 대신에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한 것은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이었던 것이다. 퓌만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동독을 택한다. 퓌만의 이러한 결단은 가령 처음으로 독일을, 1949107, 독일 민주 공화국의 건립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나중에 프란츠 퓌만은 게오르크 트라클에 관한 성찰을 담은 후기 작품 "천사의 몰락 (Der Sturz des Engels)"에서, 자신의 이러한 무비판적인 태도를 성급했다고 술회하였다. 1968년 스위스에서 "유대인 자동차"가 간행되었는데, 이 책의 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소설 자체를 완전히 달리 쓰고 싶었는데, 나는 이를 내심 거부해야 했다. 소설은 한 번 집필된 것이며, 결국 그렇게 씌어졌다는 자체는 그대로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퓌만의 문학은 한국에 제대로 소개된 바 없다. 기껏해야 김임구 교수의 논문 몇 편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