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슈테판 하임의 슈바르첸베르크

필자 (匹子) 2020. 4. 7. 14:59

 

슈테판 하임 (Stefan Heym, 1913 - 2001)의 소설 "슈바르첸베르크"는 1984년에 발표되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과거 역사 속에 실제로 주어졌던 사실을 추적하고 있다. 하임은 전후시기에 자신의 친구로부터 미국과 소련의 영향으로부터 거리감을 취했던 조그만 도시, 슈바르첸베르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친구는 다름 아니라 작센 지방의 고등 검사장으로 재직했던 칼 콘 (K. Kohn)이라는 인물이다. 콘은 당시에 슈바르첸베르크로 직접 찾아가 그곳의 상황을 직접 체험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임은 슈바르첸베르크에 관한 실제의 영역에 관한 생생한 묘사를 어느 정도 생략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임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재현이 아니라, 어떤 독자적 사회주의의 가능성 내지 이에 대한 전제 조건 등을 묘사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작품 "슈바르첸베르크"의 작품 주제는 다음과 같은 물음과 관련된다. 즉 전후시기에 소련의 간섭을 배제한 독자적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은 가능한가? 하는 물음말이다. 슈바르첸베르크는 에르츠 산맥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작은 지역으로서, 약 천 평방킬로미터의 넓이를 지니고 있다. 1945년 전쟁이 끝날 무렵 이곳은 어느 외국 군대에 의해서 점령되지 않았다. 미군과 소련군은 제각기 어떻게 휴전선이 그어질지 확실하게 알지 못했다. 이 지역에 거주하던 사회주의자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은 6주 동안 슈바르첸베르크를 독자적으로 관장한다.

 

Schwarzenberg: Roman (German Edition): Stefan Heym: 9783570001400 ...

 

 

 

하임의 눈에는 슈바르첸 공화국의 정치적 진공 상태는 우연에 의해서 존속되는 것처럼 비친다. 미군은 슈바르첸베르크의 왼쪽 경계선까지 진군하였고, 소련군은 이 지역의 오른쪽 경계선에 이미 주둔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우연으로 인하여 슈바르첸 공화국은 정치적으로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가령 미군이 계속 진군하지 않은 이유 역시 우연 때문이다. 미군들은 사령부로부터 정확한 임무를 전달받지 않았으므로, 점령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가령 그들은 베레모를 던져서, 이를 결정하게 된다. 소설은 세 개의 가상적 관점에서 다루어진다. 첫째는 「카들레츠의 기록」이다. 내레이터인 “나”는 카들레츠라는 인물이다. 그는 슈바르첸베르크 공화국 내의 행동위원회 소속으로서, 자신이 체험한 모든 사실을 녹음기에 담아두었다. 둘째는 「군사적 막간극」이다. 여기서는 미국과 소련의 점령군의 활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셋째는 소설의 주인공, 막스 볼프람의 관점에서 파악되는 사건이다.

 

막스 볼프람은 유대인이자 반파시스트이다. 어느 날 그가 수감되어 있던 드레스덴의 감옥은 연합군의 폭격을 당한다. 이때 막스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탈출하여, 이곳 슈바르첸베르크로 잠입한다. 그는 행동주의자로서 많은 친구를 끌어 모은다. 예컨대 내레이터인 카들레츠, 소련 망명으로부터 되돌아온 광산 설계사, 라인지페 등이 그의 친구들이다. 그들은 전쟁 말기의 혼돈 상태에서 미소의 간섭을 받지 않는, 독자적인 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여기서 카들레츠는 유연한 사고를 지닌 충직한 자로서, 막스 볼프람을 추종하는 반면, 라인지페는 그렇지 못하다. 라인지페는 친소주의자로서 사상적으로 막스와 대립한다.) 그들은 행동 위원회를 구성하여, 독자적으로 슈바르첸베르크 지역을 다스리고 있다. 나아가 그들은 과거의 시장을 구속하고, 자유 민병대를 결성한다. 이곳 사람들은 소련 출신의 노동자들을 본토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조처하기 위해서, 소련 측과 협의하려 한다.

 

소련 노동자의 이송 문제를 처리하기 위하여 슈바르첸베르크의 민병대 대장, 보르쿠틴은 소련 장교인 복다노프와 만난다.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하여 “나”는 소련 내에서도 항상 개별적 인간이 존중되고, 정의가 실천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소련을 이상 국가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카들레츠는 다음의 사실을 재확인한다. 즉 소련 공산주의 체제는 무조건 바람직하게 운영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말이다. 게다가 카들레츠는 소련 출신의 여자 노동자, 카챠나와 사귀게 되어, 몇 주 동안에 서로 격정적인 사랑의 불꽃을 태운 바 있다. 카챠나의 입을 통해서 그는 이미 소련 내의 불미스런 숙청에 관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군대는 슈바르첸베르크의 독자적인 자기 관리 시스템에 대해 그냥 사회학적으로 흥미롭게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관망한다. 이에 반해 소련 군대는 가급적이면 빨리 진군하여, 슈바르첸베르크 지역을 통째로 삼키려고 의도하고 있다. 막스 볼프람은 슈바르첸베르크 공화국을 위하여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국가를 설계하고, 이에 합당한 법을 제정한 바 있다. 이러한 국가 체제 속에서는 사회적 정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생각을 달리하는 자들의 사상적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막스의 법에 의하면 국가의 최고기관은 인민에 의해 선출된 대의원 회의이다. 또한 막스의 법은 기업의 국가 소유화, 직업 군대 및 비밀 경찰의 폐지, 인권과 사상의 자유 보장, 검열의 철폐 등을 명시하고 있다. 막스의 국가 설계는 평등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적 정신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예컨대 로자 룩셈부르크 (Rosa Luxemburg)의 입장과 일맥상통한 것이기도 하다. 

 

슈바르첸베르크 공화국은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에 봉착한다. 첫째, 아직 기득권을 상실하지 않은 파시스트들을 척결하는 일, 둘째, 두 점령군과의 미묘한 협상 문제, 셋째, 인민들의 자생적 의지를 극대화시키는 일, 넷째 경제적 궁핍함 등이 그러한 어려움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그 지역의 사회 간접 자본이 파괴되고, 다른 지역과의 교역이 중단되어, 주민들이 물질적 경제적 피해로 인하여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막스 볼프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미군의 도움을 받아서 독자적인 슈바르첸베르크 공화국을 고수하려고 애를 쓴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끝내 수포로 돌아간다. 막스 볼프람이 협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라인지페 그리고 보르쿠틴은 그를 체포하게 한다. 몇 년 후에 막스 볼프람은 소련으로부터 돌아와서,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게 된다. 그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슈바르첸베르크 공화국은 “하나의 환상” 내지 “하나의 꿈”이었다고 말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회주의는 불가능한 것인가? 이러한 생각을 유추하게 하는 인물은 바로 파울라라는 여성이다. 파울라는 드레스덴에서 어떤 커다란 충격을 받아 벙어리로 살아간다. 파울라의 아버지는 친소적 공산주의자, 라인지페와 절친한 친구 관계를 맺고 있었다. 드레스덴의 파울라의 집이 폭격을 받아 몽땅 내려앉고, 파울라의 가족들의 일부가 목숨을 잃게 되었을 때, 라인지페는 친구의 가족을 돌보지 않고 그냥 내버려둔다. 어찌 절친한 친구가 위험에 처해 있는데, 친구를 돕지 않고, 친구의 가족을 외면할 수 있는가? 이는 친구에 대한 배반이나 다름이 없다. 혼자 폐허 속에서 몸을 일으킨 파울라는 가족들을 잃고 너무나 커다란 전율을 느낀다. 이때부터 그미는 말문을 닫아버린다.

 

라인지페 역시 슈바르첸베르크 공화국을 건립하지 않고, 결국 이 계획을 저버리고 만다. 그는 행동 위원회 내에서 경제 분과를 담당했지만, 그의 관심사는 다른 데 있었다. 즉 라인지페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소련 정부가 그에게 부과한 비밀스러운 임무를 완수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슈바르첸베르크 지역에 있는 우라늄을 보호하라”는 임무였다. 라인지페는 양비론을 신봉하며, 매사에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였다. 라인지페에 의하면 “인류의 미래를 규정하는 근원적 에너지는 이것 아니면 저것”일 뿐이다. 그러나 라인지페의 비인간적 태도 내지 슈바르첸베르크 공화국에 대한 배반은 끝내 백일하에 드러난다. 파울라가 드디어 말문을 열게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라인지페의 제반 행동을 심문한다. 파울라의 진술 그리고 라인지페에 대한 심문 등은 슈바르첸베르크 공화국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은근히 보여준다.

 

슈테판 하임은 "아하스베어"에서 영원한 혁명을 하나의 원칙으로 내세운 바 있다. 그는 “순수한 혁명가로부터 가장 엄밀한 질서의 수호자가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하면 하임은 "슈바르첸베르크"에서 바람직한 국가에 관한 구체적 유토피아를 설계하고 있다. 즉 하임이 묘사한 국가는 현실적 상황과의 갈등 속에서 실패를 맛본다. 그렇지만 가상 국가의 일시적 존재는 -에른스트 블로흐의 의미에서- “미래에 대한 기억”을 독자들에게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하임의 "슈바르첸베르크"는 독자적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 가능성을 가장 설득력 있고, 구체적으로 묘사한 셈이다. 만약 주위에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이 자리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두 강대국 사이의 냉전적 분위기가 존속하지 않았더라면, 슈바르첸베르크 공화국은 현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