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J, 오늘은 동독 시인, 라이너 쿤체 (Rainer Kunze, 1933 - )의 산문집 『멋진 세월』에 관해서 언급하려고 합니다. 이 작품은 1976년에 서독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쿤체는 자신의 글이 동독에서 간행되기 어렵다는 것을 미리 간파하고, 서둘러 서독에서 간행하게 했던 것입니다. 산문집이 발표되자, 지금까지 발표된 자신의 시작품들보다 더 커다란 반향이 나타났습니다. 작품은 짤막한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동독 젊은이들의 암울한 삶이 간결한 문장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쿤체가 묘사한 일상은 사회주의 통일당 (SED)이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찬란한 일상생활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작중 화자는 중등과정에 있는 학생들, 대학생들, 공장의 견습생들 그리고 젊은 군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작품은 1973년에서 1976년 사이의 일상을 다루고 있으므로, 3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지닙니다. 동독은 이 작품이 간행된 즉시 1976년에 작가 라이너 쿤체를 작가 동맹에서 쫓아낸 뒤에,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래서 쿤체는 1977년 서독으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라이너 쿤체의 모습
작품의 제목은 미국작가, 트루먼 캐포트 (Truman Capote, 1924 - 1984)의 소설 『잔디 하프 The Grass Harp』(1951)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나는 11살이었고, 나중에 16세가 되었다. 커다란 공로를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멋진 세월이었다.” 이러한 과거의 체험은 사회주의 국가 내의 메커니즘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동독의 젊은이들에게서 개성과 자발성을 송두리째 앗아갔기 때문입니다. 「평화의 아이들」에서 쿤체는 관용과 비판적 성찰을 배우지 못하는 잘못된 교육을 지적합니다. 이를테면 여섯 살 난 꼬마아이는 다만 적이라는 이유로 군인 인형의 머리통에 구멍을 냅니다. 중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적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총격을 가하는 훈련에 자발적으로 참여합니다. 친애하는 J, 적이라면 무조건 처형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스탈린주의와 같은 이른바 잘못된 흑백논리로 인한 판단이 아닌가요?
쿤체는 딸과의 체험에서 비롯한 여러 이야기를 작품 속에 반영하였습니다. 자고로 젊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개성을 가꾸고, 자신의 존재와 가능성 등에 대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제각기 다양한 해답들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동독 사회는 교육적으로 이러한 자기 인식의 과정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속물근성과 관료주의는 동독의 학교 교육에서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오로지 한 가지 철칙만을 강요하는 실정입니다.
예컨대 학생들 가운데에는 도쿄를 여행한 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동급생에게 도쿄의 그림엽서를 보여주었는데, 이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선전”으로 매도됩니다. (「동급생」) 검은색 스웨터를 걸치는 것은 낙관주의의 세계관을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이해되는가 하면 (「인간상 1」), 거리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협동을 방해하는 일로 취급됩니다. (「반향」) 성서를 읽으려고 하는 자는 불안한 요소를 마음속에 간직한 자로 간주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어야 하는 마지막 시설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르겔 연주」)
세 번째 단락 “슬라비아 카페”에서 작가는 은근히 프라하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동정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쿤체는 두 번에 걸쳐서 프라하로 여행을 떠납니다. 첫째는 1968년 바르샤바 조약의 동맹군이 프라하로 진군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프라하의 어느 식당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황당하게도 독일 시민이라는 이유로 음식 주문을 거절당합니다. 두 번째 프라하 여행은 1975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곳의 어느 카페에서 쿤체는 아무런 제제 없이 음료수를 주문한 다음에 편안하게 앤솔로지 시집을 뒤적거렸습니다. 놀랍게도 시선 집에서는 정치적으로 비판적 자세를 취하는 유명한 체코 시인들의 작품이 빠져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체제 비판적인 시인은 예술 활동마저 거절당한다는 것을 체코에서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쿤체는 아홉 명의 체코 시인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그들의 침묵이 오로지 당국의 강요에서 비롯한 것임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멋진 세월』에서 작가는 어떤 순수한 청춘을 우울하게 고찰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배움에 굶주려 있고, 비판적이지만, 얼마든지 상처 입을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쿤체는 이성의 힘을 굳게 믿는 작가입니다. 그는 아주 섬세한 어조로 국가가 얼마나 끔찍하게 개개인들을 끔찍하게 협박하고 이들에게 억압을 가하는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어떤 구체적이고 정밀한 사실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이를 비판적으로 거론합니다. 개별적 텍스트의 제목은 주어진 현 상황에 대한 아이러니한 표현과 다름이 없습니다. 작품 내에서 서술자의 역할은 현저하게 축소화되어 있습니다. 서술자는 그저 사실적 상황에 대한 객관적 사항만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작품 『멋진 세월은』어떤 기록 문학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사우 근교에 있는 라이너 쿤체 재단
쿤체의 책은 서독에서 주로 정치적 문서로 수용되었습니다. 하인리히 뵐 Heinrich Böll은 “작품은 동독의 내적 현실에 대한 끔찍한 이상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학 비평가들은 작품에 반영된 작가의 세밀한 관찰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작품 속에는 위트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에 평론가들은 이 책을 “마치 우화를 통해 다룬 동독 현실의 미세화”라고 규정했습니다. 요약하건대 쿤체가 중시하는 것은 모범적이고 예술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무엇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파괴하는 구동독의 현실 구조를 압축적이고도 정교하게 묘사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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