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베라스의 "세바랑비의 이야기" (2)

필자 (匹子) 2022. 1. 25. 12:04

(앞에서 계속됩니다.)

 

9. 세바랑비의 수도, 세바린데의 외부적 조건: 세바랑비의 수도, 세바린데는 막강할 정도로 철저하게 어떤 기하학적인 구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왕궁을 제외하면 수도에는 267개의 사각형의 건물이 위치합니다. 건물들은 모두 4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물의 옆면은 약 2500미터로 확정되어 있습니다. 각 건물마다 약 천명의 사람들이 거주합니다. 건물에는 네 개의 대문이 있어서 인접한 건물과 평행선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모든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사람들은 잔디가 덮인, 거대한 내부 정원과 마주하게 됩니다. 건물을 감싸고 있는 성벽은 하얀 돌, 혹은 대리석으로 축조되어 있습니다.

 

넓은 도로는 직선 구도로 뻗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공적이거나 사적인 위생 시설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상하수도 시설이 잘 이루어져서 사람들은 욕실, 부엌에서 깨끗한 물을 사용하며, 분수대의 물로도 충당하곤 합니다. 사람들은 도시의 더러운 골목을 물로 깨끗이 청소하곤 합니다. 날씨가 무더울 경우 사람들은 도로 위에 채양을 설치하여 강력한 햇빛을 차단시킵니다. 상기한 사항은 여러 가지의 면에서 데카르트의 영향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드니 베라스의 사회 설계를 “데카르트의 유토피아 cartesische Utopia”라고 명명하곤 합니다.

 

10. 국유제의 장점과 문제점: 이미 언급했듯이 베라스의 국가 모델 그리고 내외적인 기능을 고찰하면, 우리는 이것이 초기 르네상스의 정태적인 유토피아를 그대로 답습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실 베라스의 사회 경제적 모델은 아무런 갈등 없이 잘 구획된 틀에 의해서 축조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드니 베라스는 자신이 처한 비참한 현실의 근본적 이유를 찾으려고 오랫동안 골몰했습니다. 이로써 그가 발견해낸 것은 다름 아니라 사람들의 나쁜 습성에 해당하는 교만, 탐욕 그리고 게으름이었습니다. 이러한 나쁜 습성이 자리하게 된 근본적 배경에는 사유재산제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베라스의 사고는 토마스 모어의 그것과 거의 일치합니다.

 

세바리아스가 맨 처음 제정한 제도는 무엇보다도 사유재산제도의 철폐였습니다. 세바랑브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적어도 사용 도구를 제외한 나머지 물품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없습니다. 모든 재화의 소유권은 국가에 귀속되고 있는데, 이를 관장하는 사람들은 부왕 (副王) 그리고 그의 신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크리스티안 토마지우스 Christian Thomasius의 다음과 같은 물음에 있습니다. 만약 국가가 모든 재화를 관장하게 되면, 부지런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상실하게 되고, 편안하게 노는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최소한의 생활을 느긋하게 즐기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는 다시금 노동의 가치가 약화되고 사회악이 다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Thmasius: 961)

 

11.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정착된 공유제: 실제로 세바리아스는 국가가 재화를 관장하는, 이른바 공유제를 도입하게 됩니다. 이로써 그는 재화를 더욱 많이 소유하려는 개인의 사적 욕망을 잠재우고, 국가의 재산을 강화시키려 하였습니다. 가난을 이 땅으로부터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바로 그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교환 수단으로서 화폐의 사용은 금지되고 있습니다. 금은 국가의 재화를 대변하는 역할만 담당합니다. 금화의 생산은 세바랑브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금은 심지어 외국과의 무역에도 어떤 경우에도 활용될 수 없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베라스의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어의 그것과 차이점을 드러냅니다. 세바랑비에서 사용되는 외국과의 교역 물품은 포도주 혹은 섬유 제품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문제가 발생합니다. 세바리아스 다음의 부왕 브론타스가 등극한 다음에 페르시아 사람들이 세바랑브로 이주해 왔습니다. 이들은 금은보화를 재화로 인정하였고, 이로 인하여 사회적 문제가 다시 발생합니다. 그 때문에 브론타스는 외부와의 관계를 단절함으로써 외부로부터의 나쁜 영향을 사전에 차단시켰습니다.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세바랑비는 외국과 다시 교역의 관계를 체결합니다.

 

12. 세바랑비에서의 생산과 분배: 세바랑비에서의 물품의 생산과 분배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어떤 계획 경제의 틀에 의해서 조직화되어 있습니다. 경제의 토대는 무엇보다도 농업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밖에 이곳의 수공업자들은 섬유, 가죽, 금속의 분야에 종사하는데, 이러한 생산 체제는 매뉴팩처 (가내 수공업)의 방식으로 영위됩니다. 드니 베라스는 생산 과정에 관해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습니다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오스마시”라고 불리는 마치 궁궐처럼 지어진 건물에서 약 1000명씩 함께 거주하면서, 물건을 생산합니다. 그들은 노동을 지도하는 사람의 계획에 의해 제각기 맡은 임무를 다하면서 노동에 임합니다.

 

거주지 근처에는 거대한 물품 저장고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의 곡식, 포도주, 기름, 과일 등을 저장고에서 꺼내서, 그것들을 자신이 속한 “오스마시”로 가지고 갑니다. 남아도는 물품들은 인접한 매뉴팩처 혹은 일반 저장소로 이전되어 그곳에서 오랫동안 보관됩니다. 일반 저장소는 특정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는 물품들을 저장해놓고 다른 지역의 일반 저장소의 물품들과 교환합니다. 물품의 생산과 분배 그리고 교환 등의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감독관들입니다. 이들은 생산과 분배, 저장과 교환 등의 일을 담당하며, 감시합니다. 감독관들은 그밖에 사회적 축제라든가 공공 행사 등을 조직하고 이를 실행하는 권한을 지니고 있습니다.

 

13. 휴식과 노동으로 이루어진 여덟 시간의 노동: 드니 베라스는 국가가 조합의 형태로 물품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루 여덟 시간 일하면, 자신과 가족이 굶주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세바랑비 사람들은 과거에 노예가 행하던 일감을 직접 맡아서 행했습니다. 이를테면 광산 채굴 작업이라든가, 성벽을 쌓는 일 등을 생각해 보십시오,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노예들을 더욱 열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일하는 노동자로 활용한 바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베라스의 경우에도 노예들은 힘든 일을 행하는 노동자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요약하건대 세바랑비의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노동을 의무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여덟 시간 노동으로부터 면제받는 사함들은 임산부, 아이들 그리고 60세 이상의 노인들, 병자들 그리고 정치적 엘리트들입니다. 노동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국가는 노동 시간의 준수를 법으로 확정하고 있습니다, 베라스는 만인의 노동이 강제적 사항이 아니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주장합니다. 사람들이 마지못해서 일하게 되면, 노동의 결과는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동시간을 엄수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충분한 휴식 시간을 부여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노동자들은 여덟 시간 동안 오로지 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덟 시간 동안에는 자유시간과 휴식이 주어집니다. 쉬는 시간이 노동자들은 쉬거나 춤을 추며, 산책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특정한 시간 동안 연극을 관람할 수도 있습니다. 긴장을 풀게 되면 우울증에 빠진 노동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일에 몰두할 수 있다고 합니다.

 

14. 자연의 개발과 과학 기술: 드니 베라스는 자연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지상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근대의 자연과학과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세바리스타스는 47년 동안 세바랑비를 다스리는 동안에 예술과 정치 그리고 학문을 강조하였습니다. 그의 후계자인 케마스 역시 사람들로 하여금 지하자원을 개발하게 하였습니다.

 

시덴 선장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부왕 (副王) 미나스는 선원들에게 수로 (水路, Aquädukt) 사업에 관하여 언급합니다. 세바랑브의 운하 그리고 건축 등은 모두 기하학적 구도에 의해서 축조되어 있습니다. 기술자들은 산을 뚫어서 터널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힘든 과업이지만,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행할 수 있지요. 세바랑비 사람들은 늪지대의 수분을 제거함으로써 대지로 변화시킬 수 있으며, 거름을 활용하여 황무지를 옥토로 개간할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들은 납과 구리를 녹여서 관을 만들어서, 이것을 상수도 시설에 도입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물이 부족한 지역에 식수를 공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를 고려할 때 베라스가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를 기술 유토피아의 모범으로 수용한 것은 분명합니다. 건축학적 측면을 고려할 때 세바랑비의 유토피아는 루이 14세의 왕궁을 하나의 건축학적 범례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15. 세바랑비의 의식주: 그렇다고 해서 드니 베라스가 무조건 왕궁의 화려한 의복을 무작정 도입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그저 좋은 의복을 입고 품위롭게 생활하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사항은 매우 중요합니다. 즉 베라스는 사치가 아니라, 절제라는 덕목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베라스는 주어진 재화를 낭비하고 남용하는 행위 자체를 사악한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세바랑비에서는 사람들이 비록 좋은 옷을 걸치지만, 결코 옷감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귀족 신분의 사람들과 여성들은 비단옷을 입을 수 있지만, 대중들은 털옷, 무명옷을 걸치고 다닙니다. 의복의 색깔은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데, 7년마다 한번 교체됩니다. 세바랑비에서 술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포도주와 알코올 섞인 술은 일부 계층 사람들에게 허용됩니다. 이곳 사람들은 굶주리지 않고, 스포츠를 즐기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며, 병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16. 가족과 결혼: 세바랑비의 가족은 공동체의 기본적인 토대로 작용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베라스의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어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가정은 국가의 기본법에 의해서 보호를 받습니다. 기본법이 있기 때문에 세바랑비는 인구 증가를 사전에 차단시킬 수 있으며, 개개인의 사생활의 영역에서도 조화로움이 자리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간음이라든가 혼외정사는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동물과의 혼음은 법으로 철저하게 금지되며, 일부일처의 윤리만이 고유한 합법성을 지닙니다.

 

물론 국가의 최상 그룹에 해당하는 자는 여러 명의 여성을 거느릴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20세, 여자는 18세가 되어야 결혼할 수 있습니다. 결혼은 사랑의 공동체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통과의례입니다. 일반적으로 젊은 남녀들은 18개월을 사귄 다음, 약혼하거나 결혼할 수 있습니다. 결혼식은 1년에 네 번 공동으로 치러지는데, 신랑 신부는 첫 번째 몇 년간 3일에 한 번, 28세의 나이가 되면 이틀에 한 번 동침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함께 지낼 수 있습니다.

 

17. 여성의 노동과 지위: 세바랑비에서는 여성들 또한 전사로서 훈련받으며 전선에 투입되곤 합니다. 이 점은 플라톤, 토마스 모어, 캄파넬라의 경우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밖에 여성들에게는 남자의 선택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를테면 여성들은 정치적 야망을 지닌 남자보다는 단순한 남자를 더욱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남편을 다른 여자들과 나누어가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대표하는 그룹은 특정한 남녀들이 상대방을 일시적으로 원할 경우 얼마든지 사랑의 파트너를 교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로 인하여 혼인과계가 파기되거나 자식이 생기게 되면, 높은 직위의 사람들은 이를 창피한 것으로 여깁니다. 이혼 시에 자식들의 나이가 7세 미만일 경우 어머니는 –국가가 아이들의 교육을 맡을 때까지 아이들을 돌봅니다. 베라스의 유토피아에서는 가부장주의의 요소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가령 길쌈이라든가 바느질 그리고 의복 제조 등의 일감은 주로 여성들이 담당합니다. 여자들은 차제에 남편에게 봉사하고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을 하나의 명예로 생각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