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베라스의 "세바랑비의 이야기" (1)

필자 (匹子) 2022. 1. 25. 12:04

1. 드니 베라스의 유토피아: 친애하는 V, 신시대 이후로 출현한 유토피아 가운데에서 드니 베라스Denis Vairasse의 『세바랑브의 이야기 Histoire des Sevarambes』(1702)만큼 작가의 이력과 밀접하게 결부된 사회 유토피아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사실 베라스의 소설은 무척 자전적 요소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 “시덴 Siden 선장”의 이름 역시 “드니Denis”를 바꾸어 쓴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상 국가의 최고 입법자인 “세바리아스 Sevarias” 역시 베라스Vairasse에서 유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세바리아스는 어린 시절에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법학을 공부했는데, 이 역시 작가와 거의 일치하는 대목입니다. 세바리아스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학문적 식견을 넓혀 나갔으며, 고대 및 현대의 작가들의 작품을 독파하였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더 나은 이상 사회를 설계한 것은 분명히 그가 처한 비참한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베라스는 프랑스에서 그리고 영국에서 개인적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고 했는데, 이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자신의 실패는 결국 어떤 가상적 사회의 설계로 이어지게 됩니다.

 

2. 드니 베라스는 누구인가? (1): 그렇다면 어째서 베라스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상 사회를 설계한 것일까요?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드니 베라스의 삶에 관한 정보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의 파편적인 사항만이 전해지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그의 이름과 가계에 관한 사항 역시 신빙성을 지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성조차 명확하게 표기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성이 이를테면 “Veiras”, “Veirasse”, “Vairasse”, 혹은 “Vayrasse”로 기술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드니 베라스는 추측컨대 남부 프랑스 랑그 독의 북부 지역에 위치한 아예, 혹은 알레의 출신인 것 같습니다.

 

그는 추측컨대 1623년과 1639년 사이에 세상에 태어난 것 같습니다. 그가 시민 계급인지 아니면 귀족 계급이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확실한 것은 그의 부모가 프랑스 루이 14세 치하에서 억압당하던 위그노에 속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확실한 것은 드니 베라스가 처음에 군인으로서 이탈리아의 북서부 지역에 해당하는 피에몽 전투에 참가한 다음에,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제대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드니 베라스는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나, -『세바랑비의 이야기』에서 암시되고 있듯이- 수많은 잘못된 판례 내지 잘못된 법 적용에 대해 상심한 나머지, 법과 관련된 직업을 포기했습니다.

 

3. 드니 베라스는 누구인가? (2) 그 후에 드니 베라스는 이를테면 탐험가로서, 유럽의 전역을 여행하게 됩니다. 1655년 무렵에 마침내 영국에서 정주할 계획을 세웁니다.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면 생활비를 벌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버킹엄 공작과 같은 고위 정치가와 친분을 쌓게 됩니다. 추측컨대 수많은 여행 경력과 외국어 능력으로 인하여 그가 통역사 내지 버킹엄 공작의 조언자로 일한 것 같습니다.

 

이 와중에서 그는 영국의 정치에 가담하여 1665년에 요크 공작의 함선을 타고 프랑스와의 해전에 참가하기도 하였습니다. 보고서에 의하면 드니 베라스는 1672년에는 버킹엄, 알링턴 그리고 할리팍스 공작을 대동하여 헤이그에서 개최된 평화 협정에도 참가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영국 군함의 비서인 펩시와 친분을 쌓기도 하였습니다. 펩시는 존로크와 함께 일기를 발표하여 문학적 명성을 쌓은 자였는데, 권력의 암투에 연루되었습니다. 결국 드니 베라스는 펩시와의 교분으로 인하여 더 이상 영국에서 정치적 경력을 쌓지 못하게 되자, 프랑스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4. 드니 베라스는 누구인가? (3): 1675년부터 1683년 사이의 드니 베라스의 삶은 자세히 문헌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후 드니 베라스는 생제르맹에서 전업 작가로 살아갑니다. 간간이 통역을 통해서 때로는 지리와 역사에 관한 강의로 생활비를 법니다. 생제르맹에서 전해지는 문헌에 의하면 볼테르 이전에 베라스만큼 영어를 그토록 완벽하게 구사한 프랑스인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수많은 지식인들과 교우하였습니다. 많은 지리학자, 장세니슴 추종자, 선원들이 그의 친구였습니다.

 

프랑스에 머물면서도 존로크 그리고 존 스콧 등과의 교우관계를 지속하였습니다. 존로크는 1675년과 1679년 사이에 세 번이나 베라스의 집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드니 베라스는 언어학에 있어서도 통달해 있었으며, 1683년에 프랑스어 문법에 관한 책을 간행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어떻게 말년을 보냈는가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 없습니다. 1685년 낭트 칙령이 철회된 뒤에 드니 베라스는 네덜란드로 도주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가 몇 년도에 사망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5. 세바랑브 이야기의 구성: 베라스의 『세바랑비의 이야기』는 도합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도합 다섯 장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제 1장은 시덴 선장과 그의 선원들, 항해와 난파 그리고 세바랑비 사람들과의 만남 등의 내용을 차례로 담고 있습니다. 제 2장에서는 선장과 선원들은 세바랑비의 수도, 세바린드를 시찰합니다. 여기서 독자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위치한 세바랑비가 어떠한 문명을 일으켰는지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도시의 계획, 건축 그리고 위생 시설 등이 그것들입니다.

 

제 3장에서 이곳 사람들은 페르시아 출신의 입법자 세바리아스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여기서 시덴 선장과 선원들은 세바리아의 생애, 그가 건립한 국가 및 “기본법들 Loix fondamentales” 그리고 세바리아스의 후계자들이 국가를 어떻게 이어나갔는가? 하는 사항을 접하게 됩니다. 제 4장은 세바랑비의 일상의 삶, 특히 이곳 사람들의 사랑의 삶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그밖에 독자들은 세바랑비 왕궁의 상황과 군사, 법, 종교 그리고 외교 등과 관련되는 정책에 관해서 많은 사항을 알게 됩니다. 제 5장에서 베라스는 사제들의 속임수에 관한 몇 가지 명제를 제시합니다.

 

오래 전에 세바리아가 출현하기 전에 스토카라스라고 불리는 거짓 사제가 세바랑브를 다스렸다고 합니다. 스토카라스가 이곳의 사람들을 기만하고, 조종하는 등 폭정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마법과 주술을 사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밖에 베라스는 세바랑비 사람들의 순수한 이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전통과 인습과는 무관하게 사용되는 이곳 사람들의 언어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6. 베라스의 작품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모작인가? 베라스의 작품은 한편으로는 이국적 사항을 신빙성 넘치고 밀도 있게 다룬 모험 소설에 해당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의 국가를 비판적으로 염두에 두면서 설계한 이상 국가의 문헌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작품은 1675년에 『세바리트 사람들의 이야기 The History of the Sevarites』라는 제목으로 런던에서 간행되었으며, 18세기 초에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유럽 전역에 소개되었습니다.

 

문제는 베라스의 『세바랑비의 이야기』가 토마스 모어의 모작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베르네리는 드니 베라스의 작품이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관점에서 고찰할 때 토마스 모어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연구서에서 이 작품을 자세히 천착하지 않았습니다. (Berneri 83: 164). 이에 반해서 엠마누엘 폰 데어 뮐은 드니 베라스의 작품을 잉카 문명과의 관련성 속에서 분석하면서, 작품이 지니고 있는 고유성 추적해 나간 바 있습니다. (Mühll 38: 173). 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드니 베라스의 작품을 일차적으로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7. 유럽 사회에 대한 비판, 언제까지 사회는 마냥 불공정해야 할 것인가?: 드니 베라스의 작품에 묘사된 가상적 내용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그것과는 약간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작품은 한 가지 사항에 있어서 공통점을 지닙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저자가 처한 현실에 대한 비판을 부분적으로 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세바랑비의 유토피아는 학교 체제, 군대 그리고 청년들의 일터 등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도시와 시골 사이의 생필품 교류 등을 통하여 이른바 만인의 안녕을 위한 이상국가의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명령하는 인간과 복종하는 인간 사이의 구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일부는 넘쳐나는 재물과 곡식을 소유하는 반면에 일부는 계속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일부는 편안하게 살면서 향락을 즐기는 반면에, 일부는 한조각의 빵을 벌기 위하여 끝없이 힘든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유럽 사회에서 일부는 능력도 없는데도 높은 직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부는 놀라운 재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밑바닥에서 기어야 했습니다. 하루 여덟 시간 이상 일해도 가족을 부양하기는커녕 자신의 입에 풀칠도 하지 못합니다. 일부는 열심히 일하는데도 세금 내지 빠듯하고, 딸의 결혼지참금은커녕, 영리한 자식 한명을 교육시킬 수 없었습니다.

 

8. 세바랑비의 과거와 사회적 변화: 상기한 사항을 고려할 때 드니 베라스의 유토피아의 핵심사항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즉 노동, 굶주림 그리고 거주지와 같은 사회적 근본 문제는 오로지 재화의 공정한 분배에 의해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사항 말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베라스는 사회적 평등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항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세바랑비의 과거에 대한 작가의 개괄적인 설명입니다. 세바리아가 이곳에 당도하기 전에 세바랑비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참담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세바리아스는 고대와 현대의 책을 읽고 이에 영감을 얻었을 뿐 아니라, 여행을 통하여 박식한 견해를 축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성의 원칙에 근거하여 훌륭한 사회 모델을 구상하였습니다. 세바리아의 사회 모델은 세바랑브를 야만의 상태에서 문명의 상태로 바꾸어놓기에 충분했습니다. 세바리아가 도입은 인민의 교육은 세바랑비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변화시켰는데, 이는 과거의 모든 악덕을 사라지게 작용했습니다. 다른 한편 세바리아스가 도입한 새로운 훌륭한 법체계 그리고 학문과 예술은 세바랑비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더욱 향상시켰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세바랑비는 야만의 상태에서 벗어난 문명의 사회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