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생시몽의 중앙집권 체제의 유토피아 (1)

필자 (匹子) 2021. 7. 14. 11:28

친애하는 S, 이제 중앙집권적인 체제의 유토피아를 설계한 학자와 그들의 이론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들은 다름 아니라 클로드 앙리 드 생시몽과 에티엔 카베입니다. 일단 생시몽을 먼저 언급해보기로 하겠습니다. 클로드 앙리 드 생시몽 (Claude-Henri de Saint-Simon, 1760 - 1825)은 귀족 출신의 지식인이며, 전기 작가인 루이 생시몽과는 먼 친척관계에 있습니다. 17세의 나이에 그는 마르키 드 라파예트 장군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생시몽은 그곳에서 영국군에 대항하는 프랑스인들의 독립전쟁에 참전한 바 있습니다. 물론 그는 직접 총을 들고 전선에서 싸우지는 않았지만, 비밀리에 폭동을 일으킨 프랑스군의 배후에서 군수품을 조달하는 임무를 맡아서 활동했다고 합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발발했을 때 생시몽은 처음에는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귀족의 입장을 동조하였습니다. 그러나 1794년에 수많은 귀족들이 단두대에서 숙청당하게 되었을 때 그는 교묘하게 그곳을 빠져나와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체험을 그대로 받아들여, 원래의 세계관을 우직하게 견지하지만, 생시몽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공화주의 혁명에 가담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끔찍한 고초를 겪었음에도 그는 나중에 공화주의를 열렬히 주장하였습니다. 그가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무척 중요하게 수용한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내적인 진취성에 기인합니다

 

혁명의 와중에 생시몽의 재산은 거의 대부분 몰수되었습니다. 그렇지만 1795년에 온건파가 일시적으로 권력을 획득했을 때 생시몽은 자신의 기지를 발휘하여 자신의 재산을 일부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초부터 생시몽은 파리에서 살롱을 경영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키웠는데, 이는 귀족 출신의 여성과 결혼으로써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혼생활은 조만간 파탄으로 이르게 됩니다. 어쨌든 생시몽은 결혼을 통하여 일하지 않고도 자유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경제적인 부를 거머쥐게 됩니다.

 

생시몽은 데스튀트 드트라시 Antoine Louis Claude Destutt de Tracy의 서클에서 활동하면서 자연과학 그리고 철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드트라시 (1754 - 1836)는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처음으로 언급한 계몽주의 학자입니다. 그는 이 개념으로써 지식인의 눈을 가리는 불명료한 제반 반계몽주의의 태도를 질타한 바 있습니다.] 어쨌든 생시몽이 사회와 국가에 관한 이론서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였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친필 원고는 오랫동안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가령「동시대인에게 보낸 제네바 주민의 편지 Lettres d'un habitant de Genève à ses contemporains」(1803), 「사회 조직에 관한 에세이 Essai sur l'organisation sociale」(1804) 그리고 『19세기의 학문 연구 서언 Introduction aux travaux scientifiques du XIXe siècle』(1807) 등은 이에 해당합니다.

 

생시몽은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의 왕정복고의 시기에 서서히 자신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합니다. 맨 처음 그는 “산업 'L'Industrie”이라는 신문에 2년에 걸쳐 수많은 칼럼을 게재하였습니다. 생시몽이 수많은 행사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저술활동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나중에 역사학자로 문명을 떨치게 되는 자크 A. 티에리 (Jacques Nicolas Augustin Thierry, 1795 - 1856)를 자신의 비서로 고용했기 때문입니다. 생시몽은 자신의 생각을 틈틈이 티에리에게 구술하였고, 티에리는 그의 말을 세밀하게 글로 옮겨 적었습니다. 1820년대에 그는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쳤습니다. 대표작 『산업 시스템에 관하여 Du système industriel』(1820 - 1822), 『산업의 교리서 'Catéchisme des industriels』(1823/24) 등이 간행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생시몽을 마치 예언자처럼 숭배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1824년에 발표된 『사회조직에 관하여 De l'organisation sociale』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시몽은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오귀스트 콩트 (1798 - 1857)를 자신의 비서로 새롭게 받아들여서, 『사회조직에 관하여』(1824)라는 책을 발표하게 하였습니다. 오귀스트 콩트는 이 책에 자극을 받아서 나중에 사회학의 영역에서 실증주의를 대표하는 학자로 우뚝 서게 됩니다.

 

친애하는 S,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생시몽의 입장 가운데 한 가지 놀라운 사항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시몽은 19세기 초의 시점에 국가 이기주의를 떨치고, 유럽 공동체의 결성 가능성을 학문적으로 타진한 지식인입니다. 그의 논문 「유럽의 새로운 모습」은 다음의 사항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즉 유럽의 제반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는 까닭은 개별 국가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정책 수행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럽의 국가들은 문화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향상되기 위하여 국가 중심적인 이기주의적인 입장을 지양하고 유럽 공동체를 결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공동의 이슈가 되는 것은 이를테면 라인 강, 마인 강 그리고 다뉴브 강을 잇는 초국가적인 운하 사업이며, 유럽 전역의 교육 정책이라고 합니다. 비록 독일이 여전히 분단국가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통일 이후 문화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상호 이득이 되는 협동적인 정책을 얼마든지 추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시몽의 이러한 생각은 수백년을 앞서는 진취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언하건대 라인-마인 운하는 이미 5세기에 카를 대제가 기획했던 공사로서, 1992년에 비로소 완공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모든 선박들은 북해로부터 독일을 관통하여 지중해로 향하여 운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생시몽의 대표작 『산업 시스템에 관하여 Du système industriel』를 자세히 언급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책은 1820년부터 1821년 사이에 여러 신문과 잡지에서 발표된 문헌을 모은 것입니다. 생시몽은 처음에는 귀족 신분으로서 프랑스혁명에 연루되었지만, 공화주의를 표방하면서, “산업”이야 말로 프랑스인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추구해나가야 할 영역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산업가들이란 생시몽의 견해에 의하면 넓은 의미에서 사회 내에서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산업가는 “재화를 직접 생산해내기 위하여, 그리고 사회의 여러 다양한 구성원들이 자신의 필요한 것을 심리적으로 충족시키며 육체적 향유를 누릴 수 있게 하는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 수단을 제공하기 위하여 일하는 자”를 지칭합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산업가라는 개념은 크게 보아서 농부 계층, 수공업 계층 그리고 상인 계층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계층 구분은 오늘날의 의미에서 말하는 사업가와 노동자 사이의 엄격한 구분과는 거리가 멉니다. 생시몽은 여기서 막연하게 농부, 대장장이, 건설 노동자, 마도로스라든가, 신발 생산자, 건축가 그리고 의복 생산자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에버,하르트 빌츠 Fr. Eberhart Bilz의 미래 국가의 인민 1904.

 

산업가 계급은 생시몽에 의하면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며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도래하게 될 어떤 새로운 국가에서 첫 번째의 계급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국가의 안녕은 산업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정치적 권리를 효율적으로 행사하는가에 따라 결정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프랑스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생시몽에 의하면 산업의 체제라고 합니다. 개인은 사회의 유익한 구성원들로서 공동으로 일하면서 재화를 생산해야 합니다.

 

개개인들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며, 개개인의 노동과 노력은 결국 사회적 풍요로움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개인들은 자신이 행한 만큼의 대가를 얻게 되며, 사회적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구성원들 가운데에는 다른 사람의 노동의 결실을 착복하는, 마치 기생충 같은 사람들이 온존합니다. 가령 귀족, 연금생활자, 잠재적 실업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겨운 노동의 대가로 많은 재화를 획득해야 하는 반면에, 귀족, 연금생활자 그리고 실업자들은 하나의 결실로 얻게 되는 사회적 풍요로움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천명하였습니다.

 

상기한 입장에 근거하여 생시몽은 세 가지 사항을 강력하게 요구하였습니다. 첫째의 요구사항은 귀족 계급이 점진적으로 파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귀족은 사회 경제적 차원에서 고찰할 때 스스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산업가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둘째의 요구사항은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당면한 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인적 자원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생산력을 신장시키기 위해서 이에 상응하는 유능한 인재들을 육성하고 이와 결부된 시설을 확충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셋째의 요구사항은 정치의 기본적인 문제점들을 제기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학자들이 경제적으로 지원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시몽은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 당장 산출되는 이득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고찰할 때 생산해낼 수 있는 이득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