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18. 세바랑비 사람들의 사생활과 일상적인 삶: 세바랑비에서의 삶은 국익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침 식사와 점심식사를 공동으로 해결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저녁에는 가족 혹은 친구들과 개별적으로 식사합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곳 사람들이 사랑의 삶에 관한 한 국가의 강제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캄파넬라의 경우 성생활 역시 엄격한 시간으로 제한되는 반면에, 베라스의 경우 수많은 예외조항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세바랑비의 공립학교에서는 가끔 에로틱한 사건이 회자되기도 하며, 부왕 (副王)이 젊은 처녀를 사랑하게 되어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었습니다. 후자의 경우 처녀는 어떤 시인을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결국 부왕은 그미를 포기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권력과 간계 등에 대항하여 끝까지 싸우지만, 결국에는 당국의 중재를 받기도 합니다.
19. 베라스의 유토피아에는 폭동이 자리하지 않는다. 베라스의 유토피아는 공동 이성의 체계에 의해서 축조된 것으로서, 오래된 자연법에서 비롯한 개인주의적 요소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령 세바랑비의 부왕과 백성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연법의 고유한 법칙을 천부적인 것이라고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정책이 보편적인 안녕을 위해서 제정되고 실행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특별위원회의 허락 내지 태양의 명령 없이는 어떠한 인위적인 정책도 실천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부왕은 국가 내에서 행여나 반대 세력 내지 상류층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킬까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혹시 누군가 지배 세력을 무찌른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처음부터 인민들로부터의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세바랑비의 국가는 거대한 체계의 어떤 감독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실제로 모든 삶의 영역이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편입되어 있습니다, 생산, 분배, 교육, 공공연한 축제 그리고 건물 등 제반 영역에서 국가의 감독관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일반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사랑의 삶을 투시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감독관의 감시 하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사람들은 감독관의 감시를 따돌리고 사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20. 외국 여행과 출간의 문제: 외국 여행 역시 철저하게 통제됩니다. 학문이라든가, 어떤 혁신적 사항을 개발하라는 국가의 특명을 받고 외국으로 향하는 사절단 역시 철저하게 통제의 대상이 됩니다. 그들이 나라를 떠나려면, 반드시 자신에게 달린 세 명의 아이를 나라에 맡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은 출국할 수 없습니다. 또한 언론의 자유 역시 부분적으로 통제를 받습니다. 만약 누군가 책을 출간하려고 할 때, 그는 인쇄하기 전에 검열관에게 책을 보여야 합니다. 세바랑비에서는 오로지 수준 높은 원고만이 책으로 간행될 수 있습니다.
21. 정부의 권위주의 그리고 인종주의의 정책: 물론 세바랑비에서도 제반 정책의 수행에 있어서 의견의 대립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국시로 명시되어 있는 이성적 판단을 수미일관 추종합니다. 그렇기에 소수의 견해는 공개적으로 비난당할 때가 있습니다. 베라스의 유토피아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보건 위생 정책 내지 인간의 차별에 관해서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세바랑비의 사람들은 건강한 육체를 선호하는데, 수도인 세바린데에서는 육체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병든 사람들이 살지 않습니다.
장애인들은 어떤 특별한 공간에서 별도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별은 교육 정책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국가는 건강하고 힘이 넘치는 남녀들이 동침하게 하여, 가급적이면 훌륭한 자식들을 많이 낳도록 조처하고 있습니다. 많은 아이들을 키운 여자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으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사회적으로 천대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한 지 5년이 되는 남자는 과부가 된 여자, 혹은 처녀를 성의 파트너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으면 그는 노예 가운데 한 명의 여자를 택할 수도 있습니다.
22. 베라스 유토피아의 특성: 세바랑비의 유토피아는 플라톤의 『국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그리고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의 특징들을 부분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드니 베라스는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역사적으로 이미 출현한 사회 시스템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한 베라스의 유토피아는 거의 독창적인 상상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고대로부터 근대로 이어지는 모든 자료에다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어떤 참신한 유토피아를 창조했습니다. 그렇기에 베라스의 유토피아는 가상적인 요소가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리얼리티한 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드니 베라스는 한마디로 주관적 자연법에 근거를 둔 공산주의 공동체의 구상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지배자는 수많은 백성들의 물질적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주고 그들로 하여금 정신적 도덕적으로 일치감을 느끼게 할 의무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23. 가상적인 이상 국가, 세바랑비의 취약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토피아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혁명적인 요소를 철저하게 배제하였습니다. 가령 장소 유토피아의 유형적 특징인 섬의 모티프를 생각해 보세요. 게다가 사회적 변화를 위한 강력한 의향 또한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세바랑비의 법과 도덕은 그 자체 완전무결한, 아니 완전무결함에 가까운 정태적인 시스템 속에서 작동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드니 베라스의 유토피아에서 그저 계몽된 절대주의의 사회상을 접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세바랑비의 이야기』는 당시 프랑스 사회 체제를 비판하는 대목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드니 베라스는 다른 유토피아주의자들의 경우와는 달리 당국으로부터 출간으로 인한 여러 가지 제약에 시달리지 않았습니다.
참고 문헌
- Berneri, Marie Luise: Reise durch Utopia, Aus dem Amerikanischen übersetzt von Renate Orywa, Berlin 1982.
- Mühll, Emanuel von der: Denis Veiras et son Histoire des Sevarambes 1677 – 1679, Paris 1938.
- Saage, Richard: Utopische Profile, Bd. II, Aufklärung und Absolutismus, Münster 2002.
-Thomasius, Christian: Freymüthiger jedoch vernunft- und gesezmäßiger Gedancken über allerhand/ fürnehmlich aber Neu Bücher, Halle 1689.
-Vairasse, Denis: Histoire des Sevarambes, peubles qui habitent une Partie du troisiéme Continent communément appellé La Terre Australe, Amsterdam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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