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학자의 사고는 비난당하고 외면당해 왔다.: 사실 향유와 노동은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감입니다. 그렇기에 향유와 노동을 결합시키려고 하는 푸리에의 시도야 말로 가장 중요한 과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리에는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헛된 망상으로 치부되거나, 방종한 사고로 매도되었습니다. 그의 전집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간행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반증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푸리에는 처음부터 두 개의 그룹 사람들을 자신의 적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철학자”로 언급되는 식자 그룹이며, 다른 하나는 상인 그룹입니다. 이들은 푸리에에 의하면 문명이라는 사탄의 사회에서 가장 추악한 두 개의 그룹이라고 합니다. 상인에 관해서는 분명하므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식자 그룹에 관해서는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10. 식자 그룹에 대한 푸리에의 비판: 식자 그룹은 정치가, 도덕주의자, 경제학자 그리고 형이상학자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로 정치가들은 대체로 인간의 다양한 권리에 골몰하지만, 정작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들의 권익에 대해서는 뒷짐만 지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힘없고 가난한 노동자들의 권익을 외면하고, 부유한 자본가들을 위해서 정책을 펴나갑니다. 둘째로 도덕주의자들은 강제적 성윤리를 언급하지만, 뒤에서는 겉 다르고 속 다르게 행동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위정자와 귀족들의 엽색행각을 모른 척하지만, 노동자들이 주어진 성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경우 이들을 파렴치한 성범죄자로 몰아세웁니다.
셋째로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상인들의 이윤추구의 정당성만 고려할 뿐, 노동자들이 얼마나 착취당하고 살아가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들이 상인과 자본가의 편에서 활동하는 까닭은 그들로부터 약간의 “콩 고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형이상학자들은 문명화된 산업에 관해 추상적으로 언급할 뿐, 성의 억압이 얼마나 커다란 악영향을 낳는가? 하는 점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형이상학자들은 체제 옹호적으로 처신하며, 주어진 관습과 도덕을 “하나의 차선책으로서의 훌륭한 질서”라고 선언합니다.
11. 상업의 폐해와 시장의 철폐: 푸리에는 사익과 사리를 추구하는 문명사회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노동자들이 별도로 자신들의 고유한 공동체를 형성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를테면 모어와 캄파넬라의 유토피아는 권력을 지닌 귀족과 수사 계급과 같이 경제적으로 착취하며 살아가는 유한계급의 악습을 없애기 위해서 설계된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푸리에의 유토피아는 누구보다도 상인, 은행가 그리고 고용인들의 안하무인격의 이윤추구를 차단시키기 위해서 설계된 것입니다. 그래서 푸리에의 공동체에서 철저히 금지되는 것은 이윤 추구의 상행위입니다. 모든 재화는 공동 조합을 통해서 교환되고 분배됩니다.
12. 노동과 향유를 동시에 누리는 사람들: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푸리에의 견해에 의하면 노동과 향유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흔히 말하기를 삶을 즐기는 자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을 행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엄밀히 따지면 하나의 편견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노동은 푸리에에 의하면 이와 무관합니다. 성적 향유를 누린다고 해서 노동을 멀리 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고찰하면, 쾌락을 누리는 자가 오히려 자신이 맡은 노동의 본분을 더욱 충실히 이행합니다. 이는 마치 깊이 잠을 잔 사람이 이튿날 더욱 집중적으로 일하는 경우와 같은 논리입니다.
푸리에에 의하면 쾌락은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게 하고, 성공은 쾌락을 누리면서 집중적으로 일하는 자에게 재화를 가져다줍니다. 문제는 노동자 또한 귀족과 마찬가지로 삶을 향유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있습니다. 재화는 다시금 사람들에게 풍요로움을 안겨주고, 풍요로움은 다시 새로운 쾌락을 창출합니다. 이 모든 것은 “팔랑스테르 Phalanstères”라는 하나의 조합 내지는 공동체에 의해서 이행되고 있습니다.
팔랑스테르는 프랑스어로 “팔랑주 phalange”로 표현되는데, 이는 병법 용어와 관련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보병의 밀집 방어를 위한 방진으로서 “팔랑스 phalanx”를 활용했습니다. 이로써 적은 밀집 대형을 뚫고 들어오기 힘이 듭니다. 아마도 푸리에는 자신의 공동체를 어떤 독립적이고 완전한 소규모의 방진으로 구축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푸리에게 처음에 자신의 공동체를 “소용돌이 teurbillon”라고 표현한 것은 아마도 공동체의 독자성 그리고 응집력을 강조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박주원: 225).
13. 팔랑스테르의 구조: 푸리에는 팔랑스테르의 크기, 인구, 건물 등을 구체적으로 주도면밀하게 설계하였습니다. 팔랑스테르는 농업, 산업 그리고 거주 공동체라고 명명될 수 있는데, 크기에 있어서 그리고 외견상 베르사유의 궁전과 유사하게 축조되어 있습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면은 600 미터 넓이로 구성되며, 3층 르네상스식의 건물로 축조되어 있는데, 중앙에 원형의 건물, 좌우로 “ㄷ” 자의 유형의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좌우 건물의 정면 넓이는 제각기 300 미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중앙 건물에는 식당, 도서관 회의실 그리고 겨울 정원 등이 마련되어 있고, 왼쪽 건물에는 공장과 유아 시설이 있습니다. 오른쪽 건물에는 거주 공간 내지 외부인을 위한 숙박 시설이 있습니다. 공동체 구성원은 연인 남녀, 아이 달린 가정 그리고 부부 들도 얼마든지 공동체의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팔랑스테르의 사람들은 남녀평등을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은 총 1610명으로서 남자는 830명, 여자는 790명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는 푸리에가 염두에 둔 인간의 810 가지의 제반 특성을 모조리 수집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파코: 52).
14. 즐거운 노동과 분업의 철폐: 푸리에에 의하면 노동 자체가 바로 쾌락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두 시간 동안 한 가지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다른 일감을 맡아서 행합니다. 이를테면 사과나 배를 키우는 사람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를테면 두 시간 사과나무를 가꾼 사람은 그 다음에 (일에 대한 욕구가 있을 경우) 계산 장부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시간마다 노동의 내용, 즉 일감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랑과 쾌락이 오래 지속될 경우에 나타나는 권태와 불쾌감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일감에 대한 열정은 현재의 쾌락을 남용하는 것을 차단시켜줄 수 있습니다. (변기찬 2007: 139). 삶에 있어서 바람직한 것은 푸리에에 의하면 절제도 남용도 아닌, 균형적인 생활패턴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한 가지 일로 재미를 느끼는 노동자는 여섯 시간 동안 한 가지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15. 아이들의 노동: 아이들은 푸리에에 의하면 원래 파괴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으며, 더러운 물건으로 장난치기를 즐긴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아이들로 하여금 힘들지는 않지만, 더럽고 지루한 노동을 담당하게 하면, 이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푸리에의 팔랑스 공동체에서는 아이들이 작은 그룹을 형성하면서 생활합니다. 이들은 항상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마구간을 청소하고, 동물들을 돌보거나, 도살장의 청소를 담당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아이들은 지방 도로를 청소하여 주요 도로에서 더 이상 뱀, 독을 품은 곤충 등이 기어 다니지 않도록 합니다. 푸리에가 아이들로 하여금 청소 등의 일을 담당하게 하는 것은 미성년 학대하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이들도 공동체의 일원이므로 자신의 일을 통해서 공동체에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푸리에는 청소년들에게 많은 수당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청소년들은 애국의 열정 그리고 사회에 대한 헌신의 마음을 지니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은 가급적이면 돈과 재화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하며, 대신에 공동체를 위한 희생 정신과 봉사 정신을 지녀야 한다는 게 푸리에의 지론이었습니다. (Berneri: 218).
16. 사유 재산의 부분적 용인: 또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팔랑스테르 공동체가 사유재산을 어느 정도 범위에서 용인한다는 사실입니다. 재산, 성격, 개개인의 충동 등이 다르면, 공동체는 그만큼 다양하고 생기 넘친다는 게 푸리에의 지론이었습니다. 게다가 약간의 사유재산이 주어지면, 노동에 있어서 활력이 넘치고, 노동에 대한 욕구를 강화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평등과 재화 공동체에 관한 푸리에의 깊은 숙고 속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예컨대 푸리에는 로버트 오언이 추구한 목표로서의 “재화 공동체 내에서의 완전한 평등”을 한마디로 “박애주의자의 허튼 망상”으로 규정합니다. 왜냐하면 실제 현실에서 재화는 만인에게 똑같이 분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500명 이상의 공동체 사람들은 “능력, 재산 그리고 노동의 유형” 등에서 최소한 15000가지의 이질적 특성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Saage: 74). 상기한 이유로 인하여 푸리에는 공동체 조합원들의 재화의 완전한 평등 대신에, 사유 재산을 부분적으로 용인했던 것입니다.
17. 재산의 분배, 귀금속의 소유: 공동체는 농업, 공업 그리고 숙박 시설 등을 통해서 약간의 수입을 얻습니다. (외부 사람들은 이곳을 방문하여 얼마든지 숙식할 수 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일정 금액을 숙식비 용도로 납입해야 합니다.) 총 수입금은 월말에 정리되어 팔랑스테르 공동체 주민들에게 분배됩니다. 분배는 노동시간, 투자 금액 그리고 노동에서 발휘한 능력의 기준에 의해서 책정되는데, 분배의 기준은 노동시간 12분의 5, 투자 금액 12분의 4 그리고 노동에서 발휘한 능력 12분의 3 등으로 책정됩니다.
이로써 푸리에는 적어도 공동체 내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 생산자와 소비자,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갈등이 해결되고 극복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전에 출현한 대부분의 유토피아 모델들은 금과 은 등의 귀금속을 사회적으로 해악을 조장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푸리에는 금, 은 그리고 보석을 재화로서 소지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데, 10분의 1에 해당되는 축재의 욕망은 충족되어도 무방하다는 것이 푸리에의 지론이었습니다.
'32 근대불문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로박: 푸리에의 팔랑스테르 (4) (0) | 2022.04.28 |
---|---|
서로박: 푸리에의 팔랑스테르 (3) (0) | 2022.04.27 |
서로박: 푸리에의 팔랑스테르 (1) (0) | 2022.04.26 |
서로박: 베라스의 "세바랑비의 이야기" (3) (0) | 2022.01.25 |
서로박: 베라스의 "세바랑비의 이야기" (2) (0) | 2022.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