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레나와 그미의 노래: 첫 번째 인물은 레나입니다. 그미는 카를 마르크스 슈타트 출신으로서 심리 치료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1989년 8월 상당수의 동독 사람들은 나라를 떠나려고 할 때 레나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감지합니다. 그미는 하얀 작업복 차림으로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라이프치히 거리를 달립니다. 레나는 “왜 우리가 친구일 수 없는가?”라는 노래 속에 시대정신의 분위기를 담습니다. 데모대의 사람들은 즉흥적으로 레나의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그리하여 이 노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이로써 레나는 라이프치히 혁명의 영웅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6) 레나의 오빠, 사진사: 두 번째 인물은 “레나의 오빠”인데, 사진사로서 자신의 라이카 카메라로써 시위 현장 등 모든 놀라운 장면들을 사진 속에 담아냅니다. 그는 실제로는 레나의 친오빠가 아니라, 이웃청년입니다. 두 사람이 항상 같이 행동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네나의 오빠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레나의 오빠는 행인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마음을 사진 속에 담을 수 있는 놀라운 센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왜 카메라로 모든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내려고 하는가?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해명합니다. “우리가 그냥 눈을 감아버리면, 중요한 장면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말지요.” 나중에 언급되겠지만, 그가 찍은 사진들 속에는 변호사, 기젤라 블랑크라든가 인권 운동가, 위르겐 바르테 등의 저항의 장면 등이 클로즈업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사진들은 나중에 시대의 증거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레나의 오빠가 찍은 사진들은 2002년 홍수로 일부 못쓰게 되었지만, 시대의 흔적과 다름이 없습니다.
(7) 호텔지기, 발데마르 부데: 세 번째 인물은 발데마르 부데라는 남자입니다. 그는 팔라스트 호텔 앞에서 근무하는 호텔지기입니다. 발데마르는 폴란드 출신으로서 그의 가족들은 12살 때 동독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폴란드어도 독일어도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합니다. 그가 사용하는 독일어는 약간 어설픕니다. 그럼에도 그는 장대높이뛰기에 관한 책을 집필하였습니다. 주지하다시피 구동독에서 간행되는 모든 책은 “출판 허가를 위한 심의”를 사전에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책의 출판은 출판사 임의로 행해지는 게 아니라, 동독에서는 출판 자체가 국가의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출판 허가를 위한 심의제도”를 “검열”이라고 일컫습니다. 발데마르는 검열이 철폐되면, 자신의 책이 반드시 간행되리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의 책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둘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발데마르는 다음과 같은 기상천외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자명종이 잘 팔린단 말인가? 거의 모두가 아침에 울려 퍼지는 시계소리를 증오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명종을 없애지 못한다. 어째서 대부분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는가? 아무도 원하지 않는 무엇이 이 세상에 널리 활용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발데마르에게서 작가 브루시히의 면모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브루시히는 작가로 활동하기 이전에 동베를린에서 호텔지기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8) 구조대원 빌리: 네 번째 인물은 “거친 빌리”입니다. 그는 대담한 구조대원인데,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모습는 마치 용감한 전사를 연상시킵니다. 그는 시위하는 사람들 맨 앞에서 소리치는 레나가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처럼 아름답다고 여깁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어느새 레나에 대한 연정이 솟아오릅니다. 거친 빌리에게는 한 가지 이상한 버릇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따금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긴 혓바닥을 내미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이 술 마시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게 아니라, 긴 혀 때문에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이상하게 발음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거친 빌리”는 앰뷸런스를 몰기 때문에 교통사고를 유발하며, 목과 다리 등을 다치곤 합니다. 그는 자신이 응급구조차 속에서 사망하는 첫 번째 응급구조원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9) 개미핥기처럼 지조를 바꾸는 다니엘 데첸: 다섯 번째 인물은 다니엘 데첸입니다. 그는 기젤라 블랑크 변호사 사무실에서 서기로 일하는 남자입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으며, 지식인 모임에도 자주 얼굴을 드러내는 자입니다. 다니엘은 목사의 아들이기 때문에, 고등학교 과정을 끝낼 무렵에 대학 입학을 위한 아비투어 시험을 치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진로를 선택했습니다. 다니엘은 언젠가는 대학에 진학하여 지식인이 될 수 있으리라고 희망하면서 살아갑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다음 독일 통일을 맞이한 뒤에 다니엘은 자신의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데니티에라고 고칩니다. 다니엘의 조상은 프랑스 위그노 교도로서 동쪽으로 망명을 떠나 동독에 뿌리를 내린 바 있습니다. 스스로 개명한 이유는 자신의 이름이 서독에서 멋지게 불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독자는 다니엘의 모습에서 전환기 이후에 나타나는 기회주의적 인간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통독 이후에 마치 “개미핥기 Wendehals”처럼 자신의 과거의 정치관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속출하였습니다.
(10) 변호사, 기젤라 블랑크: 여섯 번째의 인물은 기젤라 블랑크입니다. 그미는 유명한 변호사로서 명망 높은데, 지금까지 굵직굵직한 사건만을 맡아왔습니다. 기젤라는 이전에 자신의 경력을 쌓을 요량으로 스타지에 가담했습니다. 그미의 가명은 공증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노타르 Notar”입니다. 기젤라는 통독 이후에 민사당 PDS의 대표로서 정계에 입문하게 됩니다. 그미는 새로운 당이 내걸은 희망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기젤라 블랑크는 자신의 과거 스타지 행적을 말해주는 서류들을 불태워 없애버립니다. 행여나 서류가 공개되면 동독의 비공식적인 문화 관료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알려지기 때문입니다. 기젤라 블랑크는 실제로 민사당 PDS의 정치가, 그레고르 기지 Gregor Gysi를 연상시킵니다. 기젤라는 “기지”라는 애칭을 지니고 있는 것도 독자의 의혹을 가중시키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레고르 기지가 동독 시절에 스타지에 가담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 우리는 함부로 답할 수 없습니다. 이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김근태를 떠올리는 인권운동가 위르겐 바르테, 일곱 번째 인물은 인권 운동가 위르겐 바르테입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에 일시적으로 인민 대표로서 원탁의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그후에 위르겐은 평의회 대표로서 한시적으로 일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위르겐은 어떤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표들과 격렬하게 싸우게 되고 이로 인하여 결국 투옥되고 맙니다. 기젤라 블랑크는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변호를 맡아서 일합니다. 친애하는 B, 사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서 정치적으로 반대되는 사람을 탄핵하고 고발하곤 합니다. 위르겐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위르겐의 적대자들은 주로 스타지에서 일하던 관료들인데, 위르겐의 과거 행적 그리고 이른바 복잡한 사생활 등을 들추어내어 그를 곤경에 빠뜨립니다. 그들은 구동독 시절에 위르겐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을 자행했던 사악한 인간들이었습니다. 위르겐은 재판을 통해서 끝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냈으나, 이 와중에서 자신을 따르고 흠모하던 지지 세력을 서서히 상실하게 됩니다. 위르겐은 이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거의 드물며, 실수를 저지르는 게 인간이라는 사실을 독자에게 전해주는 불행한 인물입니다. 재판 과정은 한 인간의 몸과 마음을 극도로 초췌하게 만듭니다. 결국 그는 타일랜드로 떠나 그곳의 해변에서 삶의 여유를 조금 찾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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