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서독 신문기자, 레오 라트케: 열세 번째 인물은 레오 라트케입니다. 그는 함부르크의 대중 잡지, “스타”의 기자입니다. 그는 동독의 현실을 취재하라는 사장의 명을 받고 동베를린으로 향합니다. 레오 라트케는 서독의 저널리스트, 마티아스 마투세크 Mathias Matussek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그곳에서 레오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정도의 심리적 압박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는 “레나의 오빠”를 사진사로 고용하지만, 몇 당 동안 고작 두 개의 기사만 집필했을 뿐입니다. 그 가운데에는 함부르크 성탄 축제의 특별 호에 실린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동독인들이 자동응답기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풍자적인 기사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라트케의 마음속에 서독 인으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우월의식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라트케는 또 한 가지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동베를린에는 여자가 되기 위해서 성전환수술을 받고 있는 사람이 일곱 명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현재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상태에서 어정쩡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주치의가 서독으로 떠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레오는 세 번째 기사를 완성하려고 하지만, 집필의 의무감으로 인한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레나의 오빠가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이전과는 다른 문체로 조심스럽게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이로써 완성된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자비네 부세라는 맹인 여자에 관한 기사입니다.
(19) 과거는 모조리 끔찍했으며, 현재는 마냥 멋진가?: 잡지사 편집국은 맹인 여자의 이야기는 통일의 열광적 분위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며 게재를 보류합니다. 그러나 기사는 끝내 잡지에 게재되는데, 레나는 부세의 이야기를 전화기 이후의 동독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레나는 자신의 르포에서 다음과 같이 논평합니다. “행복은 어느새 밋밋할 정도로 맛없게 되었다.”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사람들은 쉽사리 이에 대해 싫증을 내거나 듣기 싫다고 짜증을 낸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레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묘하게 드러냅니다. 즉 사람들은 흔히 과거는 끔찍했고, 현재는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구동독의 과거사와 통일 이후의 현재 이야기는 그런 식의 흑백논리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게 브루시히의 지론입니다.
(20) 불빛의 세 가지 의미: 여기서 우리는 브루시히의 시각이 『우리 같은 영웅들』에 나타난 직설적이고 완강한 특성과는 달리 훨씬 원숙하고 부드러워졌음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가령 제목 『불빛은 어떻게 비치는가?』는 세 가지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불빛은 실제 사건에 대한, 거짓 없는 증언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브루시히의 인물 묘사 속에는 작가의 주관적 견해가 처음부터 배제되어 있습니다.
둘째로 불빛은 동독 사람들을 한 명씩 감시하던 서치라이트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어두운 저녁 캄캄한 시가지를 비추는 하나의 거대한 불빛을 생각해 보세요. 이것은 모든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권력의 폭력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불빛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변화의 열망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 교회에서 촛불을 피우며 기도하던 사람들의 “변화의 바람 Wind of Change”을 생각해 보세요. 요악하건대 불빛은 감시와 통제의 빛으로부터 자율과 인권의 빛으로 달리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독일의 그룹사운드 “스콜피온스 The Scorpions”가 노래한 변화의 바람의 의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브루시히는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순간적 장면을 포착하여 작품을 형상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작품은 변화의 순간들을 하나씩 모아둔 퍼즐 작품으로 명명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1) 나비 효과: 변화의 순간을 촉구하는 바람 - 레나는 이것을 나비 효과로 명명합니다. 이를테면 타일랜드에 사는 나비가 자신의 날개를 퍼덕이면, 이 바람들은 서로 모여서 거대한 허리케인을 형성하여, 미국 본토를 쓸어갈 수 있습니다. (53쪽) 어떤 움직임이 존재하게 되면, 이것은 나중에 과거의 사회구조를 완전히 변화시키게 한다는 것입니다. 레나는 수년이 지난 뒤에 이러한 진리를 알아차립니다.
구동독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몇몇 사람들은 헝가리 국경이 개방된 뒤에 서방세계로 떠나지만, 다른 사람들은 광장에 앉아서 국가 시스템에 저항하였습니다. 물론 데모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루츠 노이슈타인은 나무 벤치에 앉아서 현재의 상황을 골똘히 분석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구체적 작전에 관해서만 골몰할 뿐, 데모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합니다. 호텔의 대표 알프레트 분추바이트는 처음에는 사태를 분명히 파악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이를 서서히 알아차립니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경영권을 빼앗기고 결국 주유소의 직원으로 살아갑니다. 개인적 삶의 역사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과 평행을 이룬 채 이어집니다. 검열의 철폐, 1990년 3월 18일에 치러진 자유선거, 1990년 7월 1일에 시행된 화폐 통합 등의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러한 구체적 사건들은 소설 속의 사적인 이야기와 묘하게 얽혀 있습니다.
(22) 나비의 환생: 마지막 장 「나비의 출발」에서 나비에 관한 비유는 다시 등장합니다. 위르겐 바르테가 마지막 삶을 보내기 위하여 타일랜드로 떠납니다. 그는 결국 그곳에서 사망하는데, 바르테 부인은 그의 시신을 땅에 묻게 됩니다. 이때 그미는 나비 한 마리를 바라봅니다. 나비는 자신의 날개를 퍼덕이면서 비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나비는 고통 없는 삶, 자유를 향한 인간의 의미를 상징하는 개관적 상관물입니다. 바르테는 동독의 감옥에서 스타지에 의해 수차례 전자파 광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는 백혈병으로 사망했지만, 발병 원인은 당시에 은밀히 자행되던 고문 후유증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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