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최신독문헌

서로박: 브루시히의 '불빛은 어떻게 비치는가?' (3)

필자 (匹子) 2021. 9. 22. 09:32

(12) 구동독의 상류층에 속하는 헬프리트 슈라이터: 여덟 번째 인물은 헬프리트 슈라이터입니다. 그는 츠비카우에 있는 자동차 공급회사인 “작센 링”의 대표직을 맡고 있는 사장입니다. “작센 링”은 주로 동독의 자동차 트라반터를 생산하는 회사였습니다. 헬프리트는 1989년 여름에 아내와 함께 헝가리로 휴가 여행을 떠났는데, 자신의 딸, 카롤라와 작별하게 됩니다. 카롤라는 여행지에서 틸로라는 사내를 만나 사랑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틸로는 카롤라와 함께 자신의 고향인 라인란트에서 함께 살고 싶어 합니다.

 

카롤라가 당국의 허가 없이 국경을 넘게 되자, 슈라이터 부부는 헝가리 주재 동독 대사관 앞에서 항의하는 수많은 동독인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사태를 심상치 않게 생각한 두 사람은 즉시 평소에 안면이 있는 동독 내무부 장관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냅니다. 자신의 아들은 동독의 전투 경찰로 군복무중인데, 데모 진압의 일에서 제외시켜달라는 게 편지의 요지였습니다. 슈라이터 부인은 지금까지 모든 것을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그미는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13) 호텔 경영주 알프레트 분추바이트: 아홉 번째 인물은 알프레트 분추바이트입니다. 그는 동베를린에 있는 팔라스트 호텔의 총 책임자입니다. 호텔의 여직원 유디트 스포르츠는 호텔 내에서 상점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호텔 내에서 세상이 순식간에 변화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호텔은 “노동자 농민을 위한 국가”의 소유물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자본주의의 경쟁 체제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수많은 자본가들이 서독에서 이곳으로 건너와서 호텔을 매입하려고 한 것입니다.

 

알프레트는 국가의 관료와 사적으로 묘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관료란 다름 아니라 발렌틴 아이히라는 사내로서 경제 분야의 막강한 힘을 지닌 관료였습니다. 알프레트는 그에게 매달 일정의 감자가루를 보내주었는데, 발렌틴은 그 대가로서 호텔의 맥주를 구매해주곤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각자의 이익을 위하여 공생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입니다. 알프레트는 발렌틴이 정말 자신의 친구인지 의심하면서, 이제 더 이상 그와 거래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심합니다. 발렌틴 아이히는 실제 인물 알렉산더 샬크-골로트코프스키 Alexander Schalk- Golodkowski를 연상시킵니다. 이 사람은 1932년생으로서 오랫동안 사회주의 통일당 SED에서 경제 문화 관료로서 활약하였습니다.

 

(14) 권력의 개, 검사 마티아스 랑게 그리고 맹인여자 자비네 부세: 열 번째 인물은 검사 마티아스 랑게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국익을 위하여 많은 일을 수행해 왔는데, 참으로 까다로운 난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데모하던 사람들이 무력으로 대응하는 전투 경찰을 법적으로 고소해왔기 때문입니다. 그의 부인, 베레나 랑게 역시도 어처구니없는 일을 직접 목격해야했습니다. 그미는 정부의 미술관에서 일해 왔는데, 어느 날 맹인 여자가 미술관에 구직 신청서를 제출하여 관람객들에게 막스 리버만 Max Liebermann의 그림들을 설명하려고 하였습니다. 맹인 여자는 자비네 부세라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미는 오랫동안 맹인으로 살아왔는데, 통독 이후에 서독에서 안과 수술을 받아서 실명의 처지를 벗어나게 됩니다.

 

수술 경과는 매우 좋았습니다. 결국 자비네는 색깔과 명암을 인지하고, 사물을 어느 정도 바라보게 되었지만, 사물의 윤곽을 분명하게 인지하지는 못합니다. 눈앞의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은 그야말로 뿌옇게 투영될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자비네의 건강 상태는 레오 라트케의 잡지 표지 모델로 서방세계에 자세하게 알려지게 됩니다. 브루시히는 맹인 여자의 이야기를 통하여 독자에게 어떤 놀라운 진리를 암시해줍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통일이 동독인에게 행복의 빛을 안겨준 게 아니라, 자본주의의 고통스러울 정도로 흐릿한 빛을 선사해주었다는 진리를 가리킵니다.

 

(15) 체제옹호적인 장교 루츠 노인슈타인: 열한 번째 인물은 루츠 노인슈타인입니다. 그는 전투 경찰을 선두에서 지휘하는 장교입니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이 데모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모습을 관망하고 있습니다. 데모가 절정에 이르게 되자 전투 경찰은 곤봉으로 데모대를 가로 막는데, 대로에는 미처 피신하지 못한 여자가 쓰러져 있습니다. 루츠는 이 여인에게 달려가서 곤봉으로 마구 내리칩니다. 위르겐 바르테는 나중에 사건 심의 위원회에 이 사건을 주도하면서 루츠 노인슈타인을 심문합니다. 대위는 법정에서 자신의 폭력 행위에 대해 무언가 발언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러한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관한 물적 증거물은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예리하게 알아차린 루츠는 스스로 어떠한 범행도 저지른 적이 없다고 발뺌합니다.

 

(16) 사기꾼 베르너 슈니텔: 열두 번째 인물은 베르너 슈니텔입니다. 그는 서독의 니더작센 출신의 19세 청년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알비노”라고 부릅니다. 베르너는 서독의 유명한 자동차 회사인 폴크스바겐의 대표와 이름이 같아서 본의 아니게 여러 번 해프닝을 연출합니다. 이에 맛을 들였는지는 몰라도 베르너는 정말로 폴크스바겐의 대표 이사로 행세합니다. 그는 여러 번에 걸쳐 비싸고 화려한 호텔에서 무전취식하곤 합니다. 베르너 슈니텔의 이야기는 토마스만 Thomas Mann의 장편 소설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 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1954)을 방불케 합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베르너는 이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서 동베를린으로 갑니다. 그래서 그는 동베를린의 팔라스트 호텔에 투숙하게 됩니다. 알프레트 분추바이트는 서독의 젊은 재벌이 왕림했다는 소식을 듣고 베르너를 마치 칙사처럼 정중하게 모십니다. 당시에 폴크스바겐 회사의 대표인 에른스트 슈니텔은 구동독 지역에 있는 작센 링 회사를 인수하여, 모든 공장 시설을 서독의 폴크스바겐 공장의 시설로 대체하는 중이었습니다. 알프레트는 사장의 아들이 자신의 호텔에 묵게 되었다는 것을 자랑하면서, 베르너를 헬프리트 슈라이터와 만나도록 주선해줍니다.

 

베르너는 헬프리트와 함께 구동독의 자동차 공장 시설을 시찰합니다. 사람들은 젊은 사기꾼을 정말로 폴크스바겐의 사장 아들로 생각하고, 그에게 “거대 재벌의 특사”라는 명칭을 부여합니다. 작센 링의 공장에서 베르너는 아름다운 몸매를 지닌 처녀, 카트린 브로인리히를 사귀게 됩니다. 그는 카트린을 베를린으로 자신의 여비서로 고용하여 베를린으로 데리고 갈까 하고 잠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베르너는 쉽사리 이에 관해서 분명하게 결정내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카트린은 예쁘지도 않고, 두뇌 회전이 느려서, 비서로서의 순발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