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인간을 자신의 과거와 함께 살게 하고,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면서 경험한 것들을 소화시킨다.” (Brussig)
(1) 거침없는 작가, 토마스 브루시히: 친애하는 B, 오늘은 1965년의 작가 토마스 브루시히 Thomas Brussig의 『불빛은 어떻게 비치는가? Wie es leuchtet?』를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1996년에『우리 같은 영웅들 Helden wie wir』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놀라운 풍자와 아이러니를 동원하여 구동독의 국가시스템을 적나라하고도 통렬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후의 작품에서는 작가의 음색이 비교적 부드럽습니다. 이를테면 『존넨 알레의 무척 짧은 끝에서 Am kürzesten Ende der Sonnenallee』(1999)라는 작품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잘못된 국가 속에서 헛되게 살아왔다는 것을 자인하면서, 잃어버린 과거를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써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는 “기억은 인간을 그들의 과거와 함께 살게 하고,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면서 경험한 것들을 소화시킨다.”는 사실을 문학 작품을 통해서 증명해내고 있습니다. (브루시히의 두 작품, 『우리 같은 영웅들 Helden wie wir』 그리고 『존넨 알레』는 제각기 허영재, 이미선 교수의 번역으로 유로서적에서 간행된 바 있습니다.)
(2) 오랜 쓰라림 속에 도사린 순간적 행복의 편린 찾기: 브루시히가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작업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독특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정치, 학문 그리고 이데올로기 등 모든 기존의 권위에 굴하지 않으려는 새로운 세대의 당당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작가의 톤은 밝고 적극적인 풍자를 담고 있으며, 묘사 방식은 과감하고도 솔직합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이를테면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헤매는 작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프루스트의 작품에서는 이미 사라진 오래 전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주인공의 정조가 우수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브루시히의 주인공이 흔적 찾기 작업은 생동감 넘치고 명확한 분위기를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줍니다. 이와 관련하여 브루시히의 글쓰기는 프루스트의 그것과는 출발부터가 다릅니다. 프루스트가 아련한 과거의 옛 기억을 동경하며 그 흔적 내지 징후 등을 추출해내려고 한다면, 브루시히는 아직 뇌리에 남아 있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한 번 반추하려고 합니다. 그렇기에 과거의 흔적을 더듬는 브루시히의 작업은 “오랜 쓰라림 속에 도사린 순간적 행복의 편린 찾기”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전환기 소설: 브루시히는 2004년에 소설, 『불빛은 어떻게 비치는가? Wie es leuchtet?』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607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소설입니다. 그것은 귄터 그라스의 전환기 소설, 『어떤 미지의 영역 ein weites Feld』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과거 시대의 청산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지만, 전환기 시대의 형상화 방식에 있어서 차이점을 드러냅니다. 그라스는 이 작품에서 은폐된 역사의 고통과 미래 삶의 두려움을 나이든 두 남자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호프탈러라는 이름을 지닌 사내가 등장하는데, 그는 한스 요아힘 세트리히 Hans Joachim Schädlich의 소설 『탈호버』의 주인공처럼 국가기관의 정보원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로써 작가는 스타지 연루의 문제를 은근히 비판하려고 했습니다. 이와는 달리 브루시히는 전환기의 시점에서 살아가던 다양한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작가를 대변하는 등장인물을 꼭 짚어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품 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병렬적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89년 여름 직후의 동베를린, 라이프치히와 같은 대도시의 퍼즐을 짜 맞추고 있습니다.
(4) 네트워크를 이루는 등장인물들, 퍼즐 풀기: 이와 관련하여 브루시히의 소설은 한 가지 특성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주인공이 한 두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대체로 팔라스트 호텔을 배경으로 전개되지만, 우리는 몇몇의 주인공을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어쩌면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주인공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인물들은 제각기 다양한 세계관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작가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의 진정한 의미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독자 스스로 이를 추론하도록 조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불빛은 어떻게 비치는가?』는 하나의 놀라운 네트워크를 연상시키는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직선적인 줄거리를 개진하는 것보다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작품의 내용을 재구성하는 게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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