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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니 에르펜베크의 소설 "가다, 갔다, 간"

필자 (匹子) 2021. 8. 12. 10:14

동독 출신의 작가 예니 에르펜베크 (Jenny Erpenbeck, 1967 - )은 근자에 서울 은평구에서 주관하는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하게 되어 5000만원의 상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고향을 상실한 사람들의 애환을 지속적으로 작품 속에 다루는 등 에르펜베크의 문학적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기분은 그다지 좋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장래가 촉망되는 가난한 한국 작가가 즐비한데, 그미에게 거액을 상금으로 건네주는 게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젊은 작가들은 좋은 작품이 있어도, 출판사를 찾지 못해서, 혹은 출판비를 마련할 수 없어서 쩔쩔 매지 않습니까? 예니 에르펜베크는 2015년 독일 출판상을 수상했고,  2018년 세계적으로 알려진 맨 부커 문학상을 수상하여 이전에 이미 많은 상금을 받았습니다. 어쨌든 그미의 수상작 "가다, 갔다, 간"을 간략하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제목은 "gehen, ging, gegangen" 인데, 독일어를 배울 때 접하게 되는 동사의 3단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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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리하르트는 고대어를 가르치는 교수이다. 그는 최근에 정년퇴직하여 혼자 살고 있다. 그의 부인은 5년 전에 유명을 달리하였다. 그에게는 젊은 연인이 있었는데, 그와 마찰을 빚고 어디론가 떠나고 없다. 그의 연금은 두둑하여 생계의 걱정은 없다. 장벽이 무너진 다음에 베를린 근교에 집을 구했는데, 그곳에서 편안히 지내고 있다. 그의 집앞에 호수가 있는데, 여름날 누군가 그곳에서 익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베를린 한 복판에 있는 알렉산더 광장에서 누군가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10명의 흑인남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저녁 TV 뉴스를 접한 다음에 리하르트는 흑인 사내들의 행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단식 투쟁하는 사람들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때 그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차린다. 말하자면 흑인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노동의 허가를 강렬히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아무런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자신의 끔찍한 과거의 기억으로 고통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흔히 사람들은 임금 노동을 "어쩔 수 없이 행해야 하는 필요악의 고통"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때로는 잡념을 떨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임금 노동을 모조건 나쁘다고 단언할 수 없다.) 

 

우선 그들과 오라니엔 가에서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오라니엔 가에는 2년 전에 저항 캠프가 마련되어 있었다. 누군가 유럽의 망명 정책의 문제점 그리고 하자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캠프를 설치했던 것이다. 베를린 시의회의 협의 하에서 그들은 각자 다른 곳에서 숙식을 제공받고 있었다. 소설 속에는 그냥 “기숙사”라고 언급되고 있다. 이곳에 머문 지 3개월 정도 지나면, 그들은 개별적으로 심사를 받은 다음에 이탈리아로 송치될 예정이었다. 그들이 맨 처음 발을 디딘 나라가 이탈리아였기 때문이었다. 듣자하니 10명의 흑인들은 독일로 이송되기 전에 이탈리아에서 노동 허가를 얻어서 일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 당국은 그들을 독일로 이송하고 말았다.

 

리하르트는 약 1년 동안 난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노동 허가를 받아서 독일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때 자신의 일과를 빠짐없이 수기에 기록해 둔다. 처음에는 흑인들의 이름을 그리스어 그리고 독일어 방식으로 “아폴론”, “트리스탄” 등으로 명명하였다. 이는 그들의 직업과 유사하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몇몇 다른 사람에게는 아프리카 식으로 “알리”, “카론”, “오사로보”, “라시드”, “루푸”등으로 명명되었다. 리하르트는 아프리카 사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일상적으로 그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그들이 변호사를 면담하고, 어학코스에 등록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들을 위해서 관공서 용의 편지를 번역해준다. 10명의 흑인들이 간간이 일할 수 있도록 작은 일감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때로는 직접 그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쳐준다. 그들 가운에 한 사람에게는 초급자를 위한 피아노 연주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성탄절에는 그들 모두를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남자들의 지금까지의 삶을 접하고, 그들에 관해서 알아가는 동안, 흑인들은 주인공의 친구가 된다. 리하르트는 서서히 그들의 고향인 서부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리적 정치적 상황을 알게 된다. 어째서 그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를 서서히 깨닫게 된다.

 

결국 리하르트는 적극적 자세로 정치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난생 처음으로 거대한 데모에 가담한다. 이들을 가로막는 자들은 베를린의 공무원 그리고 경찰들이었다. 그들은 흑인들을 강제로 가옥에서 쫓아내고 폭력을 가하기도 하였다. 리하르트는 무언가 실천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가나에서 살고 있는 흑인 가족들을 돕기 위해서 3.000 유로에 해당하는 가나의 토지를 매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베를린 사람들은 여전히 흑인에 대한 편견을 품고 있다. 근본적인 대책을 취하지 않으면, 흑인들은 유럽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편안히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리하르트는 오라니엔 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접촉하게 된다. 그는 10명의 흑인들과 함께 몇몇 고통을 당하는 난민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일단 사무실이든 가게든 간에 최소한 그들에게 잠잘 공간 하나는 마련되어야 했던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리하르트는 자신의 생일날에 친구들을 자신의 정원으로 초대한다. 이때 흑인들은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끼던 외로움을 토로한다. 젊은 흑인 친구들은 과거에 그들의 식구들과 화목하게 지내던 그들의 삶을 떠올리며, 이를 애틋하게 여기고 있었다.

 

이 순간에 리하르트는 자신의 가정적 삶이 수많은 오류로 점철되었음을 공개적으로 털어놓는다. "친구들을 통해서 나는 알게된다. 내가 감내하던 무엇은 그저 내가 감내하지 못하던 무엇의 피상적인 일부에 불과했다는 사실 말이다." 고향을 떠나온 사내들은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해주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삶의 고통을 감내하지 못해서 리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향해 묵숨 걸고 지중해를 건넜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보트를 타고 람페두자에서 스스로를 구출한 셈이다. 허나 심연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지중해에 대한 두려움은 지금도 생생하게 그들의 가슴 속에 상처로 박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