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박: 라인하르트 이르글의 '미완성의 사람들' (3)

 

소설의 제 3부는 “쫓아라, 쫓아라.”입니다. 이는 남아 있는 삶이 얼마 되지 않는 불치의 환자의 비명 소리와 같습니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아나의 아들, 라이너 K입니다. 갓 50세의 생일을 맞은 “나”는 현재 위암을 앓고 있습니다. 라이너의 몸 상태는 너무나 심각하여, 종양 제거 수술이 거의 불가능할 뿐 아니라, 더 이상 어떠한 화학 요법도 사용할 수 없는 형국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조만간 병원을 떠나야 합니다.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나”는 아내에게 모든 것을 편지 형식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나”는 구동독에서 치과 의사로서 살았습니다. 전환기 이후에 이르러 너무나 역겨웠던 이빨 치료의 일을 때려치우고, 출판사 및 서점을 경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이 순간부터 악성 종양이 내 몸속에서 자라나기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직업을 바꾼 데 대해서는 어떠한 후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시도는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는 낯선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164쪽) 가장 중요한 것은 꿈을 찾아서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행복은 자연스럽게 뒤따를 뿐이며, 정체된 삶을 계속 유지하는 인간은 불행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나”는 구동독에서 간행되지 못했던 책을 간행하고 싶었습니다. 어둠 속에 머물렀던 책은 이제 자신의 서점에 비치되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책을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고객은 없으며, 아내만이 먼지 묻은 서점의 책들을 정리하러 잠깐 들를 뿐입니다.

 

 

 

소설의 서점이 위치한 베를린 제네펠더 거리

 

화자인 “나”는 자신의 지나간 삶을 회상합니다. 그는 가장 행복한 시기로서 비르크하임에서 보낸 유년기를 떠올립니다. 증조할머니는 주인공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미는 주인공이 여덟 살 때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화자는 할머니 하나와의 애틋한 관계를 언급합니다. 할머니가 성탄절에 토끼를 잡을 때의 일, 소 도축의 끔찍한 경험 등은 할머니의 기억과 병행하여 묘사됩니다. 5학년 때에 주인공은 베를린으로 전학하여 어머니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아나는 한 남자를 사귀에 결혼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흔히 말하는 “올바른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182쪽. 206쪽). 말하자면 주인공에게 아빠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사위를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나보다 여덟 살이나 나이 어렸으며, 베를린에 정착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혼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딸이 결혼하면 자신의 손자인 “내”가 그의 이름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역시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특히 그의 교육 방법은 너무도 철저하고 권위적이었습니다. 즉 주인공이 사회주의 통일 당에 절대적으로 충성해야 하며, 서구의 타락한 문화에 감염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몇 년 후에 어머니는 그와 이혼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남자는 갈 곳이 없어서 우리 집에 그대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빨래 줄에 이불을 걸어두고 그와 방을 따로 사용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그는 위험한 도서를 소장하고 있다는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우리와의 인연은 끝나고 말았습니다.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아빠의 존재는 아이들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189쪽), 그러기 위해서 아빠 역시 자녀 교육을 아내에게 일임할 게 아니라, 직접 시간을 내어서 자녀들과 사랑과 관심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주인공은 할머니를 몹시 사랑했으나, 정작 어머니에 대해 어떠한 애착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몰인정과 차가움으로 인하여 주인공의 마음속에서는 어머니를 때려죽이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곤 하였습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에리히만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그게 아니라면 새 아빠와 성격이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간에 어머니가 느끼던 사랑의 삶에 있어서의 불만은 자식인 주인공에게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아이 달린 여자와 결혼하지 않을 거야. 어떠한 경우에도 자식을 낳지 않을 거야. 설령 결혼한 뒤에 아내가 말다툼 끝에 아이를 낳자고 제안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그미와 살을 섞지 않을 거야. (196쪽) 18살이 되었을 때 “나”는 따로 방을 구해서, 어머니로부터 독립하게 됩니다. 어느 날 저녁 주인공은 어느 처녀와 처음으로 사귀게 됩니다. 혹시 이 여자와 깊이 사귀다가 나 역시 싸늘하게 버림받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하니 겁이 덜컹 납니다. 주인공은 치과 보조 간호사를 만나 결혼합니다.

 

하나와 마리아는 1988년에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르크하임은 주인공과 아나에게는 그저 과거의 도시일 뿐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을 베를린의 묘지에 이장하기로 결심합니다. 안나는 그 이후로 고양이 한 마리와 고독하게 살아갑니다. 주인공은 그저 살아 있다는 흔적만 남기기 위해서 어머니를 드물게 찾아갈 뿐입니다. 그의 서점은 프렌츨라우어 베르크 지역의 제네펠더 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어제 밤에 주인공은 잠시 병원을 나와서 서점을 찾습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책들의 냄새를 맡기 위함이었습니다.

 

서점을 떠나기 전에 주인공은 커피를 끓이기 위한 가스난로를 작동시킵니다. 그러자 서점 내부는 음습한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퍼져, 서점 안을 가득 채웁니다.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주인공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내에게 한 가지 당부의 말을 남깁니다. 아내가 내일 오전 여덟시에 퇴원 수속을 밟기 전에 버릇대로 서점에 들르게 되면, 절대로 불을 켜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이날 아침 온 도시는 유독가스의 검은 연기로 뒤덮이게 될” 테니까 말입니다. 그의 마지막 편지는 여덟시 삼십분을 맴돌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 그의 서점은 아마도 가스 연기로 뒤덮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시점에 그의 육체 역시 암 세포들에 의해서 장악되어 어떠한 인위적인 방어 체계도 이를 막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