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서로박: 만인의 자유와 평등. 2.

필자 (匹子) 2020. 12. 3. 10:57

3.

블로흐는 바흐오펜 의 『모권 Das Meteriarchat을 언급합니다. 모권 속에 담긴 고대의 자연법의 요소는 다시 한 번 강조되고 있습니다. 엘레우시스 축제를 치르던 혼음 사회에서는 (아프로디테 여신으로 암시되는) 무녀들의 자유로운 사랑의 삶이, 태초의 농경 사회에 이르러서는 (데메터 여신으로 암시되는) 수확하고 포용하는 모성의 삶이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는 가부장주의 사회 이전의 삶의 패턴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블로흐는 계급 없는 사회에서의 진정한 평등 사회의 조건을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녀평등에 바탕을 둔 삶입니다.

 

블로흐는 실정법이 계급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지적합니다. 법은 권력”으로서, 지금까지 권력자와 가진 자의 이권을 옹호해 왔습니다. 검찰과 경찰 역시 권력의 하수인의 역할을 행했습니다. 검찰은 종교 재판소가 국가 체제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며, 경찰 조직은 중세에 빵을 훔치던 방랑자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국익을 대변하는 권력자와 재벌은 공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사실 말입니다.

 

검찰과 경찰에게 봉록을 주며 명령하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법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는 국가의 폭력입니다. 블로흐는 “계급 없는 사회가 도래하면 국가는 저절로 사멸할 것이다.”라는 엥겔스의 말에 다음과 같이 첨가합니다. 법학 역시 시민의 계층 사회에서 권력 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로 기능하는데, 자유의 나라가 도래하면, 철폐될 대상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발언은 동서고금의 실정법 내지 법실증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블로흐의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은 현대의 법철학적 조류를 고려한다면, 비주류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현대의 법 철학자들은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 블로흐의 견해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철학 자체가 보수적이고 권력 지향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9세기의 역사 법학파의 영향은 결국 카를 슈미트의 법 결정주의로 이어졌으며, 파시즘 국가에 이론적 논거를 제공하였습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물론 19세기 법학자들 가운데 안젤름 포이어바흐와 같이 진보적 보호 이론을 표방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현대의 법 철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흐로티위스의 진보적 성향을 따르는) 법적 자유주의 견해를 추종하는 반면, 일부는 (홉스와 마키아벨리의 보수적 성향을 따르는) 역사 법학파의 실정법적 견해에 동감을 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가지 조류는 약간의 차이만을 드러낼 뿐이며, 이른바 자유주의라는 공통분모를 지닙니다.

 

이에 비하면 마르크스의 법철학사상은 소련의 법 철학자, 파슈카니스가 정치적으로 제거된 이후로 거의 명맥이 끊겨 있었습니다. 블로흐의 책은 자연법의 역사를 고려할 때 바로 이러한 명맥을 이어주는 문헌임에 틀림없습니다. 한마디로 블로흐의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은 법학 내부에서 모든 것을 고찰하지 않고, 법학 바깥에서 법과 법 유토피아를 조감하는 참으로 귀중한 문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