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서로박: 만인의 자유와 평등. 1

필자 (匹子) 2020. 12. 3. 10:55

 

자연법은 만인의 자유와 평등을 지향한다.

 

 

- “법의 눈은 지배 계급의 얼굴에 박혀 있다.” (블로흐)

- “법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교회 (성당)의 유리창과 같다. (박설호)

- “자연법의 정신은 행하는 규범 (norma agendi = 공권력)가 아니라, 행하는 능력 (facultas agendi = 촛불집회)에서 발견된다.” (블로흐)

 

 

1.

친애하는 K, 감옥에는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이 거의 없습니다. 부자와 권력자들이 죄 짓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복마전에 머무는 경우는 잠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의 국가에 관하여 De civitas Dei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나는 배 한 척 가지고 도둑질하므로 해적이라 불리지만, 당신은 큰 함대를 가지고 도둑질하므로 황제라고 불립니다.” 어느 영혼은 살인죄로 인하여 사형선고를 받지만,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독재자는 무죄 방면됩니다.

 

주어진 법은 언제 어디서나 가진 자 그리고 지배자의 이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진정한 법은 과거든, 지금이든 간에 만인에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만인의 자유와 평등을 진정한 법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요? 

 

2.

본서는 에른스트 블로흐의 학술 명저 가운데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 Naturrecht und menschliche Würde(1961)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22권의 블로흐의 문헌들 가운데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본서는 블로흐가 내세우는 핵심적 자세인 인간의 의연한 기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의연한 기개는 무엇보다도 불법에 대한 저항정신에서 비롯합니다. 카이사르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브루투스를 생각해 보세요.

 

둘째로 지금까지 인류는 블로흐에 의하면 법적 정의를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법의 기준이 되는 정의는 처음부터 계층 사회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만인에게 자신의 것을 행하게 하라. Suum cuique.”라는 기본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가야 한다.”는 체념과 굴종의 세계관에 근거하는 말이지요.

 

정의는 오직 동등한 계급 내에서만 유효했을 뿐, 계급 차이를 지닌 두 인간 사이에서는 처음부터 적용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이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의 개념 그리고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의 수직 구도의 계층 사회 이론에서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블로흐는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라는 울피아누스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렇지만 이 말은 이어지는 문장을 위해서 끌어들인 허사에 불과합니다. 즉 노예 제도는 시민의 권한을 보충해주는 수단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로마법은 채권법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인간의 역사를 고찰해 보세요. 그것은 만인이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법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돈이 있었지요. Ubi ius, ibi pecunia 흔히 법을 말할 때 정의의 여신을 예로 들곤 합니다. 친애하는 K, 당신은 그미가 들고 있는 천칭이 바로 판관의 공평함을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드러난 판단일 뿐입니다. 블로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습니다. 천칭은 점성술의 “수대 獣帯” 가운데 하나로서, 하늘 위로 향하고 있습니다. 마치 천칭이 상부의 영향을 받아서 지상으로 영향을 끼치듯이, 법은 당국의 상명하달의 정신을 충직하게 따릅니다.

 

친애하는 K, 블로흐는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자연의 법칙이 이성의 법칙으로 대치되는 것을 지적합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 제기된 자유, 평등 그리고 동지애는 시토이앙의 이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성장하는 부르주아의 이권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알투스, 루소 그리고 흐로티위스의 자연법사상은 나중에 칸트, 피히테 그리고 헤겔 등에 법철학적 단초를 제공하였습니다. 칸트와 헤겔은 블로흐에 의하면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의 보복 이론을 계승함으로써 자연법의 이상에 접근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칸트의 법철학은 주어진 경험의 현실을 외면하며, 보복을 추상적으로 규정하였습니다,

 

헤겔은 예컨대 베카리아의 사형 철폐 이론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물론 헤겔의 변증법 사상은 마르크스 사상의 발전에 기여하였지만, 그의 완고하고 근엄한 법철학적 견해는 셸링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나중에 사비니를 필두로 한 “역사 법학파”에 보수 반동주의에게 이론적 빌미를 제공하였습니다. 블로흐는 19세기의 자연법 학자 가운데 토마지우스 그리고 안젤름 포이어바흐의 입장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체제 옹호적인 입장을 개진한 푸펜도르프 그리고 볼프와는 반대로- 권력과 금력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의 인권을 옹호함으로써 자유주의의 자연법의 초석을 쌓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