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에른스트 블로흐의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 내용 소개 (5)

필자 (匹子) 2020. 7. 19. 08:52

VI. 로고스냐, 코스모스냐?

 

36. 문 앞에서의 외침 .

 

37. 오르페우스와 세이렌들.

 

(이 장에서 블로흐는 고대 그리스의 문화적 유산 속에 담겨 있는 기독교적 특성을 찾아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가령 오르페우스 종교는 육체와 무덤을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다시 도래하는 세계를 갈망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오르페우스 종교는 고대 그리스 후기에 나타난 영지주의의 특성을 보여준다.)

 

38. 벗어나기, 스토아사상 그리고 영지주의 등에 의해 보존된 우주.

 

(이 장에서 블로흐는 스토아 사상과 영지주의 속에서 보존된 “우주”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스토아 사상이 내면과 우주의 합일을 추구한다면,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입장에서 천국으로 향하는 영혼의 욕구를 추적한다. 후자의 경우 우리는 점성술의 신화의 특성이 기독교에 가미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는 점성술의 신화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은 점성술이 지니고 있는 운명에 대한 믿음을 떨치고, 사악한 악령들을 배척할 수 있다고 믿었다.)

 

39. 점성술의 신화 그리고 성서 속에 첨가된, 이집트 바빌로니아의 지구적 삶과 천체로 화한 천국의 상.

 

(이 장에서 블로흐는 우주와 로고스의 상관관계를 구명하고 있다. 예컨대 점성술의 신화를 중시하던 바빌로니아의 문화는 부분적으로 인간 내면으로서의 로고스 신화를 중시하는 기독교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블로흐에 의하면 자연과 인간이 서로 대립되는 카테고리가 아니듯이, 점성술의 신화와 로고스 신화는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은 끊임없이 아우르고 조우하며, 제각기의 특성을 주고받고 있다.)

 

40. 부설: 아르카디아와 유토피아. (영어판에는 완전히 생략되어 있음)

 

(이 장에서 블로흐는 예술사와 문학의 지식을 동원하여 아르카디아와 유토피아의 상관관계를 밝히고 있다. 아르카디아는 블로흐에 의하면 수구적 낭만주의자가 과거 지향적으로 동경한 황금의 시대에 관한 기억으로 이해될 수는 없으며, 그 자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하나의 수정사항으로서의 범례 역할을 담당한다고 한다.)

 

41. 부설: 고매한 쌍, 혹은 사랑과 그 유토피아 속에서의 해와 달의 삭망 (朔望) (영어판에는 완전히 생략되어 있음)

 

(이 장에서 블로흐는 해와 달 사이의 우주적인 짝짓기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남자 (가부장) 그리고 여자 (창녀) 사이의 짝짓기는 고대 바빌로니아 점성술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교도의 예식으로 전해 내려왔다. 이러한 전통은 그노시스 종파의 영지주의에서 일시적으로 출현했고 (시몬 마구스), 유대교 카발라 사상에서 드러난 바 있다. (사바타이 체비). 그런데 기독교는“그리스도의 몸” (corpus Christi, 남성)과 “공동체” (Gemeinde, 여성) 사이의 결혼을 강조함으로써, 해와 달 사이의 우주적인 짝짓기를 파기시켰다. 이로써 우주의 척도와 목표는 기독교적으로 변화되었다.)

 

42. 다시 로고스 신화 혹은 인간과 정신, 포이어바흐의 이론: 신은 어째서 인간인가? (Cur Deus homo?), 기독교 신비주의.

 

(1) 그래도 우리의 것은 희미하게 빛난다, (2) 포이어바흐 그리고 인간학적인 무엇, (3) 인간학적인 비판의 신화학적인 것과의 만남,

 

(이 장에서 블로흐는 포이어바흐의 무신론 그리고 독일 시인 앙겔루스 실레지우스의 신비주의적 관점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아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두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신이자 신으로서의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순수하게 추구했다는 공통점이다.)

 

(4) 기독교 신비주의의 객관적 의향 속에 담긴 “자유로운 정신”, “강한 정신”.

 

(이 장에서 블로흐는 신비주의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적 요소, 즉 자유로운 정신을 지적하려고 한다. 신비주의가 지향하는 바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내면으로 파고듦으로써 궁극적으로 영혼의 불꽃 내지 섬광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가령 에크하르트 선사는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신앙인 내면에서 찾으려고 애를 씀으로써, 천상에 머무는 권력의 신으로부터 일탈하였다.)

 

43. 로고스 신화로 계속 작용하는 결과들: 강림의 축제, “창조주 영혼이여 오세요. (Veni creator spiritus)”, 자연 없는 하늘나라의 모습

 

(1) 조상들 그리고 목표, (2) 시작, 과정 그리고 결말에 관한 준비된 긴장감 (제 15장과 비교하라),

 

(이 장에서 블로흐는 신정론에 근거한 창세기 (알파) 중심주의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메시아사상 속에 담긴 종말론 사상 (오메가)을 강조하고 있다.)

 

(3) 강림의 축제, “창조주 영혼이여 오세요.”로 전달된 창조,

 

(이 장에서 블로흐는 성서의 미래지향적 특성을 “성령 (Paraklet)”에서 발견하려 한다. 진정한 시작은 처음부터 창세기로 확정된 게 아니라, 세계 출현의 근본 이유와 접목됨으로써 목표를 향해 개방된 과정의 길을 밟는다고 한다.)

 

(4) 다시금 황량하고 공허한 것으로서의 “세계의 시작 (Alpha mun-di)”, 계시적인 “드러남” 속에는 해도, 달도 없다, 그리스도의 형체로 이루어진 하늘나라의 상.

 

(이 장에서 블로흐는 처음을 강조하는 운명적 폐쇄적인 “점성술의 신화” 대신에, 마지막을 강조하는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기독교 로고스 신화의 특성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44. 반론: 점성술의 신화는 이 세상의 것이다. 스피노자 (Spinoza)의 범신론, “신 혹은 자연 (Deus sive natura)” 속에 담긴 반박할 수 없는 유산. “하늘나라”의 유토피아 속에 담긴, 기독교 사상으로 함께 작용하는 자연의 문제.

 

(이 장에서 블로흐는 로고스 신화와 자연 사이의 일견 멀어진 관계 그리고 점성술의 신화의 마지막 잔여물을 담고 있는 스피노자의 범신론 등을 설명한다. 이로써 조심스럽게 추적되는 것은 이른바 새로운 자연을 포괄할 수 있는 기독교 유토피아의 가능성이다.)

 

45. 공통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이할 정도로 분명한 특성: 인간학과 유물론은 모두 “신적인 초월” 속으로 잠입하며, 신의 자리를 차지한다.

 

(주지하다시피 영혼은 인간학과 관계되고, 질료는 유물론과 관계된다. 그렇지만 영혼과 질료를 통상적으로 구분하는 태도는 블로흐에 의하면 온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연 속에도 주체로서의 영혼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블로흐는 다음과 같은 논의를 도출하려고 한다. 즉 인간학과 유물론은 서로 일치되지 않지만,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여, 신정론에 입각한 신의 권좌를 탈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