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1944)에서 시장 경제가 인류에게 가장 자연스런 제도가 아니며, 인위적 조작에 의해서 작동된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아담 스미스는 경제적 물물교환 내지 매매행위가 자발적으로 이어져왔다고 말하면서,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본성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시장 그리고 화폐는 폴라니에 의하면 인위적으로 작동되는 근대적 산물이라고 한다. 폴라니는 교역과 거래의 발전을 통해 시장경제가 출현했다는 진화론적 관점을 비판하면서 시장경제가 주된 경제 제도로 자리 잡은 것은 국가의 중상주의의 정책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자유방임이라는 신화 뒤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의 폭력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시장 경제의 근본적 성향이 세인의 눈에 띄지 않은 것은 자유주의 시정 경제에 인위적으로 기입한 국가의 시정 조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폴라니는 이에 대한 예로서 1795년 영국에 도입된 “스핀햄랜드 법speenhamland law”을 언급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 경제 활동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행해졌다. 그런데 국가는 경제 성장, 국력 신장을 위해 국내 시장을 더욱 확장하려고 했는데, 이는 부동산, 노동 그리고 화폐를 상품으로 변질시키게 하였다. 초기 자본주의 이전에는 토지가 거래의 대상이 아니었고, 노동하는 사람은 자신의 노동의 대가로 화폐를 수령한 적이 없었다.
물론 시장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물물교환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물품과 물품은 필요성에 따라 때로는 작게, 때로는 대규모로 교환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산업 혁명이 발발한 이후로 시장은 더 이상 자기 조정적인 기능을 행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가치의 교환 대신에 이윤추구로 인한 축적의 가치가 융성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토지, 노동 그리고 화폐가 그 자체 상품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노동이 상품으로 변질되고, 부동산이 거래의 대상으로 바뀌었으며, 화폐 역시 상품으로 전락하여 축적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사회적 삶의 행위는 시장 경제로 인하여 물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시장(市場)은 한마디로 “악마의 방앗간satanic mills” (윌리엄 블레이크)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폴라니는 시장의 기능으로 인한 이러한 물화와 소외의 현상을 인류의 역사에서 나타난 첫 번째 거대한 변환으로 평가한다.
시장 경제는 필연적으로 무소불위의 국가권력을 보장해주고, 국가 역시 막강한 이윤을 거두는 재벌과 거대 자본가들에게 규제를 가하기는커녕 뒤에서 보조한다. 20세기 초에 출현한 파시즘 그리고 전쟁은 어쩌면 이러한 시장 경제의 작동 원리의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류의 비극은 폴라니에 의하면 영국의 산업 혁명 그리고 리카도의 경제 이론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시장 경제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파편화되고, 붕괴의 위험을 지닌다. 이때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중적 관점의 어떤 정책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자의 정당의 활동을 가리킨다. “토지는 더 이상 시장의 법칙에 의해 운영될 수 없다.”라든가, “노동자에게는 최소한의 임금 지불 그리고 인간적인 노동 조건이 필요하다.”라는 슬로건이 여기서 말하는 이중의 정책을 지칭한다. 나아가 화폐 시장에서 금 본위제가 문제로 제기되고, 통화량에 대한 중앙은행의 개입 등 역시 이중의 정책에 해당한다. 폴라니는 이러한 이중적인 정책이 반드시 노동자 계급의 저항 운동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바로 이 점이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이론과 구별되는 것이다.
시장의 규모가 엄청난 범위로 확대되면, 사회 조직은 전체적으로 휘청거리고 거대한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거대한 메가 시스템 속에서 자발적으로 작동되는 시장에 반발하고, 시장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주체는 폴라니에 의하면 무산계급 뿐 아니라, 계몽된 반동세력 그리고 다양한 집단들이라고 한다. 폴라니는 스스로 영위되는 자유주의의 시장 경제에 사회적으로 제동을 거는 일련의 행위를 “두 번째 거대한 전환”이라고 규정한다. 가령 1929년에는 세계 대공황이 발생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으로 이러한 사태는 진정 국면에 이르렀는데, 그 후에 파시즘과 스탈린주의가 유럽 전역에 창궐하기 시작했다.
파시즘은 폴라니에 의하면 시장 경제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첫 번째 해결책이었으나, 야만으로 수행되고 말았다. 가령 독일의 파시스트들은 산업과 정치의 영역에서 모든 민주적 제도를 파괴하면서 시장경제를 개혁했다는 것이다. 폴라니는 파시즘에 대항하려면 노동자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그렇다고 그가 노동해방을 위한 마르크스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폴라니에게 시장경제의 위기에 대한 두 번째 해결책이 바로 뉴딜 정책이다. 그는 금본위제를 포기한 루스벨트의 정책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면서도 세계 시장의 영향으로부터 국민경제를 지킬 수 있는 희망을 보았다. 즉 뉴딜 정책이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억제하고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재촉할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폴라니가 이런 결론에 이른 것은 자신이 격렬하게 비판했던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으로 보인다. 폴라니는 시장은 항상 균형을 이룬다는 고전파의 시장 이데올로기에 대한 케인스의 비판을 넘어서 잉여가치와 착취의 문제로까지 사고를 발전시키지 않았다. 폴라니는 제2인터내셔널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접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를 “경제주의의 오류”라고 비판했다. 그는 마르크스의 「경제학 철학 수고」를 높이 평가했고 루카치의 저작물을 통해 물신화나 노동소외를 접하기도 했다. 그러나 폴라니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은 리카도와 마찬가지로 경제 결정론이이라는 이유로 수용하지 않았다.
폴라니는 1930년대의 위기에 대한 세 번째 해결책으로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 이론에 관심을 기울였다. 폴라니가 보기에, 일국 사회주의 이론은 세계적 경제 위기에 대한 지역적 계획경제의 한 모델이었다. 사실 스탈린은 냉전의 시기에 소련을 방어해야 한다고 노동자 농민에게 호소했다. 폴라니는 1930년대의 세계경제 위기로 인해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유토피아는 파산했고 19세기의 시장경제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그가 불가역적이라고 보았던 현상이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나서, 현대 사회에 하나의 위기를 제공하고 있다.
폴라니는 말년에 전(前)자본주의 사회의 특징들을 집중 연구했다. 이는 시장경제를 대체할 어떤 바람직한 원리를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폴라니가 몰두한 것은 시장 경제 이전의 원시 고대 사회의 인류학적 연구였다. 원시·고대 사회에는 스스로를 조절하는 시장이 아니라, 세 가지 경제 형태가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것은 호혜, 재분배, 교환이라는 세 가지 형태를 가리킨다. 오늘날 폴라니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현 사회에서도 호혜는 기부 문화로, 재분배는 적십자 활동으로, 교환은 공정무역으로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것들을 대안 사회의 기본 원리로 채택하기에는 너무 불투명하다.
폴라니는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에서 고대의 경제 체제의 범례를 고증을 통해서 서술하였지만, 자신도 원시·고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런 특징들이 사회 경제적 동인과 어떻게 연동되는지를 정확하게 구명해내지 못했다. 폴라니는 처음부터 경제적 동인이 사회적 메커니즘 속에 포함돼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논리로 그는 아담 스미스의 일반적 경제의 논리를 비판했다. 경제의 변화 과정은 따로 독립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 과정에 언제나 연동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경제의 토대가 근본적으로 사회로부터 일탈될 경우에도 그것은 자신과 어느 정도 일치되는 사회 구조를 형성하고 확립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조절의 시장경제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사회 구조가 마련되는 것은 그야말로 필수적인 논리이다. 따라서 폴라니는 시장 경제가 확립될 때 사회의 토대가 경제의 토대로부터 일탈된다고 주장하며, 거대한 전환 이후에 사회가 안정성을 회복한다는 논리는 단순한 기계적 설명에 불과하다.
분명한 것은 폴라니가 대안으로 제시한 “지역의 계획경제”는 현대 사회에 다양하게 출현한다는 사실이다. 생활 협동조합이나 노동조합 또는 지역공동체 등이 바로 그 본보기들이다. 하지만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역주의에 입각한 대안 추구의 노력은 지금까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폴라니의 이론은 오늘날 무시될 수 없다. 왜냐하면 폴리니만큼 시장경제의 허구를 본질적으로 비판한 학자는 유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통찰하려면 우리는 폴라니의 “허구적 상품”, “실체로서의 경제”, “이중운동” 등과 같은 독창적 개념을 일차적으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 경제에 대한 그의 비판은 잉여가치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와의 관련성 속에서 수용될 필요가 있다.
칼 폴라니 (2006): 거대한 전환, 홍기빈 역,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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