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루소의 에밀

필자 (匹子) 2021. 8. 11. 10:17

장 작 루소 (1712 - 1778)는 1762년에 자신의 교육 소설, "에밀 혹은 교육에 관하여 (Ẻmile ou de L'Ẻducation)"을 발표하였다. 이 책은 도합 5권으로서, 소설 형식의 반, 교육 철학 논문 형식의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루소는 성선설을 주장한 바 있는데, 이는 "에밀"에서 재확인되고 있다. 에밀은 소설의 주인공인데, 오로지 루소의 방식으로 교육받는 자이다. 루소는 교육자로서 두 가지 목표를 설정한다. 그 하나는 피교육자가 나중에 자신의 인성을 해치지 않은 채 문명사회에서 바람직하게 생활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그가 사회 계약을 체결할 능력을 함양시키는 일이다.

 

사회 계약은 정치적 질서를 보장해주어야 하고, 동시에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의 견해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 에밀은 우선 자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하나의 법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견해를 존중해야 한다. 법이란 만인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회 계약에 의해서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에밀은 결코 탐욕, 거짓된 충동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견해에 무조건 승복하는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게 루소의 지론이었다.

 

인간은 루소에 의하면 근본적으로 선한데, 문명과 사회에 의해서 더럽혀졌다. 그러므로 어떻게 죄악이 도래했는가를 기술하는 일을 통해서 인간 동물은 구제될 수 있다고 한다. 루소에 의하면 문명의 잘못된 발전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교육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교육의 개혁이야 말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업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루소에 의하면 해롭기 짝이 없는 전통적인 교육 방식을 팽개치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교육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존 로크가 주장한 바 있는 유아와 소년들의 존재 유형에 대해서 충분히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처음으로 태어나서 환경과 자연을 접할 때 지니는 자연스러운 본능, 첫 인상, 감정 그리고 최초의 자발적인 느낌은 과연 어떠한가? 등에 대한 연구이다. 환경에 대한 유아의 첫 번째 반응을 조절하고 정확한 행동으로 이끄는 것이 가장 훌륭한 교육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루소에 의하면 아이의 본능적 반응을 관찰하고, 이를 도와주며, 발전시키는 일이다.

 

루소는 강압적이고 인위적인 교육 방법을 철저히 부정하였다. 루소는 여러 가지 해로운 영향들에 대해서 처음부터 아이를 차단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18세기 유럽에서는 다음과 같은 교육 방식이 좋다고 간주되었다. 즉 아이들이 일찍이 교육받고, 어른의 의무를 수행하게 하는 교육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루소는 이에 대해 격렬히 항의하였다. 교육자들이 원하는 바를 피교육자들의 두뇌 속에 주입시키는 것은 교육 방법이어서는 안 된다. 피교육자는 배우려는 무엇을 스스로 찾아서 그것을 자발적으로 익혀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루소는 아이들로 하여금 “감각 기관의 정확한 연습을 통해서 이성으로 향하는 길을 터득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게 해야만 아이들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루소는 네 가지 사항의 바람직한 발전을 지적한다. 인간의 발전은 육체, 오관, 두뇌 그리고 심장의 발전을 통해서 병행된다고 한다. 첫 번째 단계 (1세 - 5세)에는 무엇보다도 어린이의 육체적 성장이 중요하다. 부모와 교육자는 유아들이 아무런 강요 없이 육체적으로 건장하게 자라도록 돌봐주어야 한다. 이때 정신적이고 도의적인 무엇을 강요하는 것은 절대로 금물이다. 두 번째 단계 (5세 - 10세)에 아이들은 주어진 환경과 대립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가급적이면 시골에서 자라남으로써 자연에 대한 친밀함, 오관 및 관찰력 등을 발전시켜야 한다.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 결론을 스스로 도출하는 등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오성의 능력을 훈련해야 한다.

 

세 번째 단계 (10세 - 15세)에 청소년들은 정신적 능력을 스스로 개발해 나가야 한다. 교사들은 그들에게 새로운 무엇에 대해 열광할 능력 및 수용 자세 등을 키워주어야 하며, 그들이 스스로 배우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 시기에 기계적 암기 행위는 절대로 행해서는 안 된다. (이 시기에는 많은 책은 그다지 필요 없다. 그렇지만 ?로빈슨 크루소?는 학생들 스스로 모든 것을 개척하게 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는 소설이라고 한다.) 지리학과 수학을 가르칠 때 교사는 수공 작업을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네 번째 단계 (15세 - 20)에서 청년들은 공동생활의 방식을 배우고 예절과 종교 의식을 지녀야 한다. 건전한 자기 인식은 주위 사람들을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종교적 감정은 루소에 의하면 자연을 관찰하는 데에서 얻어지는 무엇이어야 한다. 가령 루소는 에밀이 태양을 바라볼 때 무릎을 꿇고 창조주에게 자연스럽게 기도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경외심은 자연스럽게 고취되어야 하며, 종교적 이념은 18세 이후에 전달되어도 무방하다고 한다. 종교적 이념을 너무 일찍 접하게 되면, 사람들은 신앙의 추상성에 몰입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교회나 성당에서 수사들의 인위적 가르침은 아이의 마음속에 종교적 열광을 느끼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에밀은 이러한 네 가지 단계를 거쳐 사회에 발을 디뎌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에 주인공 에밀은 (그와 동일한 방법으로 교육받은) 처녀와 결혼식을 올린다.

 

요약하건대 루소의 교육 방식은 여섯 가지 사항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교육자는 아이의 친구 내지 동반자가 되어, 아이가 원하는 여러 가지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도록 도와야 한다. 2. 교육자는 아이들의 격렬한 열정을 승화시키도록 스포츠 사냥 그리고 걷기 등에 동행해야 한다. 3. 아이들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자기 사랑 그리고 동정심이다. 4. 교육자는 아이들이 실제 현실을 관찰하고, 이를 서술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과목은 문학과 사회 과목이다. 5.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세계 전체를 이해하고 이를 규정하며 설명하게 하는 일이다. 이로써 아이들은 종교를 어떤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 6. 교육자는 아이들로 하여금 연인의 상을 떠올리도록 조처해야 하고, 실제로 만나는 연인과 어떻게 다른지 스스로 깨닫게 조처해야 한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루소의 교육서적을 고찰하면, 두 가지 사항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 하나는 성교육이며, 다른 하나는 여성의 교육이다. 루소는 무조건 성에 관하여 은폐시키는 게 바람직하다고 못 박았다. 교육자는 근엄한 자세로 엄격한 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성은 자연스러운 사랑과 구분되고, 어떤 추악하고, 더러운 폭력으로 각인되었다. 미성년자에 대한 성생활을 금기시하는 강제적 성윤리는 빌헬름 라이히에 의하면 개개인의 욕구를 차단하고 사회적 질서를 지키려는 수단으로 암묵적으로 형성된 이데올로기라고 한다. 이 점을 고려하면 청소년의 성을 무조건 금기시하는 루소의 태도에는 하자가 도사리고 있다.

 

둘째로 제 5장에서 여성의 교육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소피는 에밀과 유사한 방식으로 교육받는다. 그렇지만 그미가 배우는 내용은 에밀의 그것과는 다르다. 가령 소피는 노래하기, 피아노 연주, 뜨개질 그리고 요리 기술을 익힌다. 미래의 남편이 그미를 사랑하도록, 남편의 삶을 편안하게 하도록 하는 게 여성 교육의 목적이다. 소녀 내지 처녀의 자연스러운 충동에 관한 궁금증은 처음부터 차단되어 있다. 왜냐하면 소피는 어른들이 감추는 비밀을 스스로 예측할 정도로 영리하고, 스스로 그것을 터득할 정도로 눈치 빠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루소의 에밀은 남녀 불평등을 전제로 하는 한, 완벽한 교육 서적으로 승격될 수는 없다.

 

상기한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에밀』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당시에는 과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19세기에 페스탈로치Pestalozzi, 헤어바르트J. F. Herbart, 프뢰벨F. W. A. Fröbel 등의 교육학자들은 루소의 교육 방식을 모범으로 삼고, 이상적 교육론을 추적해나가게 된다. 작품 『에밀』은 루소가 참회하는 마음으로 집필된 갈망의 교육서적이다. 참고로 루소는 1765년에서 1770년 사이에 집필한 『고백록 Les Confessions』에서 자신의 경제적 상황 때문에 자신의 다섯 아이를 고아원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남겼다.

 

실제로 그는 테레즈 르바쇠르Thérèse Levasseur라는 이름을 지닌, 세탁하는 하녀와 동거하면서 1746년부터 1753년까지 다섯 아이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시끄럽게 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다섯 아들을 고아원에 보낸 사람이 바로 루소였다. 세상의 어느 누구가 이러한 말에 어떻게 쉽사리 수긍할 수 있을까? 어쨌든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용인한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의문점은 남아 있다. 세상에서 가장 권위적이고 이기적인 아버지가 과연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 서적을 집필한다는 게 가능할까?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라. 이 물음은 아마도 우리가 쉽사리 납득할 수 없는 수수께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