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고대 문헌

서로박: 에우리피데스의 "헬레나" (1)

필자 (匹子) 2021. 12. 11. 09:41

친애하는 J, 나는 오늘 당신을 위해 에우리피데스의 “헬레나” 이야기를 들려줄까 합니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헬레나”는 기원전 412년 디오니소스 축제의 해에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극작가는 고대 시인, 스테시코로스 (Stesichoros)의 시에서 유래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원래 전해 내려오는 신화 내용을 약간 바꾸어놓았습니다. 스테시코로스에 의하면 헬레나는 아주 매력적이지만, 정조를 지키지 않았던 여자라고 합니다. 그미는 불륜을 저지른 이유로 눈이 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에우리피데스는 한 가지 버전을 완성시킵니다.

 

트로야의 왕자, 파리스는 헬레나를 납치하는 데 성공을 거두지만, 그미와 함께 이집트까지만 여행했다고 합니다. 그곳의 왕 프로테우스는 그미를 안전하게 보호해주었고, 파리스는 헬레나의 망령만 데리고 트로야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메넬라오스의 부인인 헬레나는 어느 누구에 의해 능욕당하지 않은 채 트로야에 머물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망령을 되찾기 위하여, 다시 말해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되찾아오기 위하여 그리스인들은 트로야를 공격하였고, 결국 10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트로야 전쟁을 치렀던 것입니다.) 작품을 통해서 에우리피데스는 헬레나에게서 “간통죄”의 혐의를 벗겨주고 싶었습니다.

 

헬레나가 옷을 갈아입는 모습. 오른쪽에서 파리스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친애하는 J, 세상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신체의 겉모습으로 평가합니다. 이 경우 인간의 눈은 우상 숭배를 위한 어떤 도구에 불과합니다. 신의 아름다움도 유한하다고 하는데, 하물며 인간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이라, 당신의 아름다움 역시 안타깝게도 열흘간 지속될 뿐입니다.

 

각설, 에우리피데스는 극작품의 첫 부분에서 여주인공으로 하여금 독백하게 합니다. 즉 헬레나는 신들의 간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파리스와 정사 (情事)를 치를 뻔했다고 말합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다른 두 명의 여신들과 미모를 놓고 경쟁했는데, 파리스가 아프로디테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인정할 경우 그리스 최고의 미녀를 선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파리스가 이를 따르게 되자,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에게 헬레나를 마치 하나의 물건인 양 “선물”하게 된 것입니다.

 

결혼의 여신, 헤라는 노여움을 감내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미모가 아프로디테에 뒤진다고 결정된 데 대해서 분함을 금치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헤라는 헤르메스를 시켜서 헬레나를 이집트로 옮겨두었고, 파리스로 하여금 처음부터 하나의 망령을 사랑하도록 조처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헬레나는 파리스와 실제로 살을 섞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우스는 헬레나를 둘러싼 인간의 갈등이 실제 현실에서 이행되도록 그냥 수수방관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지상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친애하는 J, 에우리피데스가 극작품을 쓸 당시에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에우리피데스는 헬레나의 잘못된 상을 수정하기 위하여 그리고 전쟁의 끔찍함을 지적하기 위하여 이 작품을 쓰게 되었을 게 분명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은 신들에 의해서 꾸며놓은 간계에 휘말려, 오로지 망령 한 사람을 구출하기 위하여 피비린내 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한 “헬레나”는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위대한 작품이며, 아름다운 여성이 치러야 하는 비극적 삶을 동정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