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S, 다시 루키아노스의 작품을 거론하기로 합니다. 루키아노스의 풍자적 대화록에 해당하는 “향연 혹은 라피트에 모인 철학자들 (συμποσιον ή Λαπιθαι)”은 기원후 160년에서 165년 사이에 그리스어로 씌어진 작품입니다. 뤼키노스의 대화에 참여한 사람은 헤르모티모스 (Hermotimos)인데, 작가 역시 작품에 직접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루키아노스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철학 학파를 첨예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전통적 철학자를 비아냥거리는 태도는 루키아노스가 주로 애용하던 모티브이기도 합니다. 루키아노스의 이 작품만큼 신랄한 독설을 퍼붓는 작품도 없을 것입니다.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틀이라든가 세부적 사항을 고려할 때 루키아노스의 이 작품은 플라톤 (Platon)의 “향연 (Symposion)”을 연상시킵니다. 그밖에 부분적으로 플라톤의 “파이드로스 (Phaidros)” 그리고 크세노폰 (Xenophon)의 “향연”, 플루타르코스 (Plutarch)의 “향연” 등도 이 작품에서 거론되고 있습니다. 고대 작가들이 “향연”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까닭은 그게 플라톤 이후로 즐겨 사용되던 문학적 유형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친애하는 S, 이제 작품에 관해서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철학자 필론 (Philon)은 친구인 뤼키노스를 만나, 한 가지 사항을 부탁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얼마 전에 개최된 만찬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의 갑부, 아리스타이네토스는 유명 인사를 초대했는데, 필론은 다른 일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참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뤼키노스는 수치스러운 사건에 관해 발설한다는 게 겸연쩍어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나중에는 마음을 돌립니다. 뤼키노스의 말에 의하면 실제로 만찬은 개최되었다고 합니다. 아리스타이네토스는 더 나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부유한 고리대금업자, 에우크리토스와 정략적으로 사돈 관계를 맺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만찬을 통해 자신의 딸, 클레안티스를 에우크리토스의 아들과 결혼시키기 위해서 성대한 저녁식사를 개최했습니다.
친애하는 S, 세상에는 부모의 뜻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말아야 할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배우자 선택이며, 다른 하나는 직업의 선택이랍니다. 부모가 당신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요구 사항을 막무가내로 거절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주위로부터 허락받지 못한 결혼 생활은 대부분의 경우 원만하지 않습니다. 각설, 에우크리토스의 아들, “샤이레아스”는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만찬에 초대된 사람들은 여러 학파의 철학자들이었습니다.
친애하는 S, 그리스 철학자들의 이름은 기억되기 어렵지만, 그래도 생략될 수 없으니, 차례로 열거해보겠습니다. 스토아학파의 제노테미스 (Zenothemis)와 디필로스 (Diphilos), 소요학파의 클레오데모스 (Kleodemos), 에피큐리언 학파의 헤르몬 (Hermon), 플라톤주의자 이온 (Ion), 문법학자 히스티아이토스 (Histiaios), 웅변가 디오니소도로스 (Dionysodoros) 등이 참석자들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헤르몬이 등장하자, 두 사람의 스토아학파 사람들은 못내 불쾌함을 드러냅니다. 이는 스토아학파와 에피큐리언 학파 사이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견유학파의 알키다마스 (Alkidamas)가 초대받지 않았는데도 뻔뻔스럽게 연회장 안으로 들어와, 착석합니다.
연회장에는 주인이 의도와는 달리 처음부터 조화롭고도 즐거운 분위기가 흘러넘치지 않습니다. 자리 배정 문제로 각 학파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집니다. 스토아학파의 제노테미스는 헤르몬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자, 즉시 언성을 높여 연회장을 떠나라고 협박합니다. 뒤이어 견유학자 알키다마스가 난리를 쳤습니다. 그는 쩝쩝 소리 내며 음식을 입 안에 털어 넣으면서, 미덕에 관해 일장 연설을 터뜨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연설 도중에 그의 입에서 음식물이 튀어나와, 순식간에 식탁이 더렵혀집니다. 그 정도는 약과였습니다. 알키다마스는 음탕한 말로써 아름다운 신부, 클레안티스를 집적거렸습니다. “결혼 전에 나에게 몸을 맡겨야지. 초야권 (ius primae noctis)이 내게도 있으니까. 적어도 남자 물건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해.”하고 말하면서, 성큼성큼 옷을 벗는 게 아니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달려들었고, 주위는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맙니다.
이러한 와중에서 의사인 디오니코스 (Dionikos)가 등장합니다. 지금까지 미친 병자를 치료하느라고 뒤늦게 도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어느 낯선 노예의 등장으로 시작됩니다. 노예는 스토아학파의 헤토이모클레스 (Hetoimokles)의 편지를 주인장인 아리스타이네토스에게 전해줍니다. 편지는 어떤 항의를 담고 있었습니다. 편지의 발신인은 과연 어떠한 이유에서 스토아학파 사람들 가운데 일부만이 초청되었으며, 자신과 같은 중요한 인물들이 배제되었는가? 하고 따졌습니다. 유명 학자로서 연회에 초대받지 못하는 것은 그자체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편지가 큰 소리로 낭송되자, 스토아학파 사람들과 다른 학파 사람들 사이에 다시 거대한 언쟁이 벌어집니다. 소요학파의 클레오데모스는 분함을 참지 못하고 스토아학파의 두 사람에게 포도주를 끼얹습니다. 그러자 클레오데모스는 조만간 보복당하여 그의 옷은 술에 흠뻑 젖습니다. 이윽고 고함 소리가 커지고, 학자들 사이에 주먹질이 다시 시작됩니다. 좌중이 이처럼 떠들썩한데도 변태 가운데에서 골수 변태에 해당하는 견유학파의 알키다마스는 조용히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는 여자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남근을 꺼내 오줌을 갈깁니다.
주인만이 난장판을 중재하지만, 그것도 일시적일 뿐입니다. 제노테미스와 헤르몬은 통닭 한 마리를 차지하려고 하다 머리카락을 서로 잡아당깁니다. 전자는 알키다마스에게, 후자는 디오니코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자 디오니코스는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식탁을 뒤엎고, 통닭들이 이리저리 날아가, 사람들의 머리통을 맞추게 됩니다. 그러다 누군가 통닭을 담아두었던 접시를 던져, 아무 죄 없는 신랑의 머리가 깨어져, 신랑의 머리에서는 피가 줄줄 흐릅니다. 이 순간 알키다마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견유학자들의 막대기로 헤르몬과 그의 두 노예의 턱을 날립니다. 소요학파 클레오데모스는 손가락으로 스토아학파의 제노테미스의 눈을 찌르고, 그의 코를 물어뜯습니다. 문법학자 히스티아이토스는 자리를 떠나려고 하다가 클레오데모스에게 밟혀 그의 모든 이빨이 짓이겨집니다.
친애하는 S, 근엄한 체 하는 철학자들이 이러한 난리를 벌릴 수 있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시겠지요? 그렇지만 이와 유사한 사건은 실제로 있었다고 합니다. 루키아노스는 겉 다르고 속 다른 거짓 철학자들을 비아냥거리기 위해서 이 글을 집필하였습니다.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합시다. 엉망이 된 향연은 어떤 우연에 의해 중단됩니다. 알키다마스는 실수로 램프를 넘어뜨려, 주위는 온통 암흑천지로 변합니다. 잠시 후 다시 램프 불이 켜졌을 때,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알키다마스는 플루트 연주하는 여자의 옷을 벗긴 뒤에 그미의 몸을 탐하려 하는 게 아니었겠습니까?. 불이 조금만 늦게 켜졌어도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웅변학자 디오니소도로스는 난리법석을 틈타서 값비싼 술잔 하나를 자신의 주머니에 슬쩍 쑤셔 넣었습니다.
모든 사태가 진정기미를 보이자 그곳에 모였던 철학자들은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만 만취한 알키다마스만이 소파에 드러누워 골아 떨어져 있었습니다. 뤼키노스는 구석에 숨어서 화를 면했다고 합니다. 그는 친구 필론에게 상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현인들과 교우하는 일은 무척 위험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친애하는 S, 루키아노스의 이야기는 거짓 반, 진실 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후세에 사는 우리로서는 어느 정도 사실이며, 어느 정도 거짓인지를 밝힐 수 없습니다. 만약 오늘날 루키아노스의 스승인 메니포스 (Meniphos)의 문헌이 현존했더라면, 이는 아마도 가능했을지 모릅니다.
친애하는 S,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학자들도 오욕칠정을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몇몇은 자신의 불행한 삶을 보상받기 위해서 과도한 명예욕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과도한 명예욕은 그들을 학문적 토론이라는 보이지 않는 사각의 링 위로 올려 보냅니다. 실제로 서양 학문의 역사는 특정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투쟁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강하고 올바른 이론이 약하고 그릇된 이론을 물리친다는 사실 그리고 이에 대한 판정이 공정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학자들이 내적으로 어떠한 심리적 동기를 지니고 있든 간에 그들의 이론은 서로 부딪쳐 승리와 패배를 낳습니다. 그렇기에 서양 학문의 역사는 비정하지만, 그래도 공정한 게임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지요?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판가름이 납니다. 동양, 특히 남한에서는 학자와 학자들 사이의 부딪침이 없었으며, 지금도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한의 학문적 풍토는 전근대적, 아니 심하게 말하면 봉건적일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스승과 제자라는 이유로, 장유유서라는 이유로, 혹은 세부 전공분야가 다르다는 이유로 옳고 그름이 가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남한의 학자는 서양의 학자들보다 학문적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문제점이 있습니다. 즉 올바르고 강한 이론이 잘못되고 약한 이론을 물리칠 방도가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동창, 학맥 등의 인간관계로 결정되기 때문에, 기득권을 누리는 학자는 얼마든지 기득권을 누릴 수 있고, 그렇지 못한 학자는 변방에서 헤매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가 낫다고 말할 수 있는지요? 한 번 곰곰이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 문헌
- 배수찬 (2017): 서양 고전 읽기 1, 지만지.
- Walter Jens (2001): Kindlers neues Literaturlexikon, Muenchen.
- Hans Gärtner: Lukianos 1. In: Der Neue Pauly (DNP). Band 3, Metzler, Stuttgart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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