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스트 13

서로박: 클라이스트의 'O 후작부인' (2)

9. 어째서 마르키스 O는 신문에 기이한 기사를 게재했는가?: 혹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지 모릅니다. 어떻게 성폭력을 사랑으로 포장할 수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물론 성폭력은 당연히 사랑으로 포장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클라이스트는 오로지 도덕적 잣대을 강조하기 위해서 소설을 집필했을까요? 작품을 근본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다음의 사항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마르키스 O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신문에 게재합니다. “나는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임신하게 되었는데, 아기의 아버지는 즉시 자신에게 연락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처지를 고려하여 그와 결혼하려고 합니다.” 독자는 여기서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두 가지 사항을 발견할 것입니다. 과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아무..

40 근대독문헌 2023.11.23

서로박: 클라이스트의 'O 후작부인' (1)

1. 기이한 신문광고, “나를 임신시킨 사내를 찾습니다.”: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천재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중편소설 「O 후작부인Die Marquis von O.」은 1808년 2월에 잡지 『푀부스Phöbus』에 처음으로 발표되었습니다. 2년 후인 1810년에 클라이스트는 약간 수정을 가하여, 자신의 『소설집 Erzählungen』에 수정판을 공개했습니다. 클라이스트는 미셀 드 몽테뉴의 「알코올 중독에 관한 에세이」(1588)를 참고한 것 같습니다. 몽테뉴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어느 여자 농부가 꿈속에서 술 취한 노예에게 성폭력을 당하는데, 나중에 노예가 자신의 죄를 고해하자, 여자 농부는 그와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클라이스트의 소설의 놀라운 내용은 작품의 첫 문장에..

40 근대독문헌 2023.11.23

서로박: 클라이스트의 '인형극에 관하여'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H. v. Kleist, 1777 - 1811)의 「인형극에 관하여 (Über das Ma- rionettentheater)」는 1810년 네 번에 걸쳐 베를린 석간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이 논문은 예술 이론에 관한 극작가, 클라이스트의 아주 상세한 작업이다. 클라이스트는 고아함 (Grazie)의 이론을 개진한다. 여기서 고아함이란 당대의 개념과는 아주 벗어난 뜻을 지니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우아함을 자연과 자유 그리고 감각성과 이성 사이의 화해로 이해하고 있었다] 클라이스트는 전통적 역사철학적 구상 내지는 어떤 구원사적인 약속 등의 의미에서 고아함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인형극에 관하여」는 세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 부분은 고아함의 상태 [비구분 (非区分)이라는 역..

40 근대독문헌 2023.11.02

서로박: 클라이스트의 '홈부르크 왕자'

친애하는 H, 오늘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홈부르크 왕자」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작품은 5막으로 이루어진 비극으로서 1809년에서 1811년 사이에 완성되었습니다. 클라이스트가 1811년 베를린의 반호숫가에서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가 생전에 공연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작품은 클라이스트가 죽은 뒤 10년 후인 1821년에 빈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클라이스트의 모습 사건은 1618년 페어벨린 전투가 발발하기 하루 전날의 왕궁에서 사건이 발생합니다. 홈부르크 왕자는 몽유병자입니다. 잠자다가 벌떡 깨어나서, 페어벨린의 정원에서 월계수를 쓴 채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전쟁의 승리자로 자처하며, 헛소리를 중얼거린다는..

41 19전독문헌 2022.12.20

박설호: 견유 문학론 (3)

본문에서 "당신"은 필자 자신을 지칭한다. ...................... 보충 사항 1: 부디 명심하십시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라는 속뜻을. 똥개는 짖지만, 명견은 함부로 짖지 않습니다. 명견은 가만히 있다가 자신의 판단을 실행하는 개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명견과 똥개를 구별하게 할까요? 똥개는 남을 의식하는 개입니다. 행여나 남들이 자신의 약점을 알아 차릴까봐 전전긍긍하지요. 똥개의 모든 행위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제일인자가 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이에 비하면 명견은 남을 의식하지 않는 개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고 마치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지요. 명견의 모든 행위는 자신을 감춘 채 타인을 돕고, 감추어진 진리를 전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2 나의 글 2022.06.26

귄터 쿠네르트

귄터 쿠네르트 (1929 - )는 구동독 출신의 작가 가운데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작가입니다. 그는 시작으로 출발하였으나, 나중에는 산문을 많이 썼습니다. 그의 작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시보다도 산문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그의 수많은 작품은 오늘날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시인 고은이 만인보를 집필하지만, 그 역시 아마도 만 편의 시를 족히 썼을 것입니다. 귄터 쿠네르트는 1929년 베를린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 혈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1940년에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의 전쟁 체험은 소설 "모자들의 이름으로 Im Namen der Hüte" 에 자세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사진은 브..

9 문학 이야기 2021.10.29

서로박: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2)

친애하는 L, 작품의 전개 과정을 고찰하면 “오이디푸스 왕”은 범죄 문학의 어떤 유형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 왕”은 서양의 범죄 문학의 유형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존재와 가상의 현실을 교차시키기 때문이지요. 비밀스러운 관련성을 도입하여 극적 긴장을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오이디푸스 왕”은 분석극의 원조에 해당합니다. 등장인물 뿐 아니라 전개 과정에서도 소포클레스의 아이러니가 온통 배여 있습니다. 가령 맨 처음 도시에는 전염병이 창궐하지만, 왕인 오이디푸스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도시 테베는 건강해지지만, 정작 지배자는 몰락을 맞이하며, 도시를 떠납니다. 말하자면 의사이자 조력자로 살아온 인간이 어떤 의사 내지 조력자를 필요로 하는 그러한 신세로 전락한 ..

37 고대 문헌 2021.06.09

서로박: 클라이스트의 암피트리온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알크메네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며 동시에 영특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미는 암피트리온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는데, 제우스는 알크메네를 바라보며 군침을 삼켰습니다. 암피트리온이 출타한 틈을 이용해서 암피트리온으로 변신하여 몰래 안방으로 잠입한 제우스는 살며시 알크메네를 끌어안습니다. 알크메네는 “아이, 당신, 조금 전에 사랑을 나누었는데, 다시 내 몸을 원하나요?” 하고 말하면서, 옷을 벗습니다. 제우스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아름다운 알크메네의 살결을 더듬으면서 정을 오래 통합니다. 알크메네의 기분은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탐하는 사내는 남편이 분명한데, 남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움직임에 힘이 넘치고, 지칠 줄 모르는 성욕을 자신의 몸속으로 들이 붓는 것 같았..

41 19전독문헌 2021.05.31

서로박: 클라이스트의 홈부르크 왕자

친애하는 H, 오늘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홈부르크 왕자」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작품은 5막으로 이루어진 비극으로서 1809년에서 1811년 사이에 완성되었습니다. 클라이스트가 1811년 베를린의 반호숫가에서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가 생전에 공연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작품은 클라이스트가 죽은 뒤 10년 후인 1821년에 빈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사건은 1618년 페어벨린 전투가 발발하기 하루 전날의 왕궁에서 사건이 발생합니다. 홈부르크 왕자는 몽유병자입니다. 잠자다가 벌떡 깨어나서, 페어벨린의 정원에서 월계수를 쓴 채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전쟁의 승리자로 자처하며, 헛소리를 중얼거린다는 사실입니다. 먼발..

40 근대독문헌 2020.10.14

서로박: (2) 클라이스트의 '깨어진 항아리'

(앞에서 계속됩니다.) 8. 작품의 줄거리 (4) 이때 브리기테 부인이 결정적 증거물을 들고 법정에 나타납니다. 부인은 이브의 창 밑에 찍힌 퉁퉁 부은 발의 발자국을 말했을 뿐 아니라,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가발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법률 고문관이 판결을 독촉하자, 당황하던 아담은 황급히 루프레히트에게 유죄를 선고합니다. 바로 이 순간 이브는 마침내 큰소리로 “항아리를 깬 범인은 바로 재판관 아담이야.” 하고 소리칩니다. 이때 아담은 쏜살같이 도주합니다. 어느 누구도 그를 붙잡지 못합니다. 이브는 발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오 하늘이여, 사악한 인간이 어찌 날 속였는지요./ 끔찍한 술수를 사용하여 그는/ 나의 심장을 괴롭혔어요. 그날 밤/ 루프레히트의 서류를 내밀었어요./ 거짓된 진단서가 그를 병..

40 근대독문헌 2019.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