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클라이스트의 'O 후작부인' (2)

필자 (匹子) 2023. 11. 23. 11:01

9. 어째서 마르키스 O는 신문에 기이한 기사를 게재했는가?: 혹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지 모릅니다. 어떻게 성폭력을 사랑으로 포장할 수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물론 성폭력은 당연히 사랑으로 포장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클라이스트는 오로지 도덕적 잣대을 강조하기 위해서 소설을 집필했을까요? 작품을 근본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다음의 사항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마르키스 O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신문에 게재합니다. “나는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임신하게 되었는데, 아기의 아버지는 즉시 자신에게 연락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처지를 고려하여 그와 결혼하려고 합니다.”

 

독자는 여기서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두 가지 사항을 발견할 것입니다. 과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치욕적 사실을 공공연하게 밝힐 수 있을까요? 나아가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자신을 가해한 사내와 과연 결혼하고 싶을까요? 게다가 피해자 마르키스 O는 그 사내를 전혀 알지 못하지 않는가요? 한마디로 마르키스 O의 신문 기사는 우리에게 어떠한 리얼리티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마르키스 O는 신문에 기이한 기사를 게재해야 했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신문 광고의 내용에서 발견됩니다.

 

10. 문제는 마르키스 O를 쫓아낸 아버지 그리고 그의 시민 사회의 성윤리에 있다.: 신문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임신하게 되었는데, 아기의 아버지는 즉시 자신에게 연락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처지를 고려하여 그와 결혼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가족들의 처지를 고려하여”라는 표현입니다. 마르키스 O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본의 아니게 임신하여, 미혼모가 될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미의 어머니는 이를 이해하고 어떻게 해서든 딸을 도와주려고 하지만, 그미의 아버지는 임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의 딸을 몸을 함부로 굴리는 더러운 여자라고 매도하고, 그미를 집에서 쫓아냅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태어나지 않은 아기가 “시민 사회의 오점 덩어리Schandfleck in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로 비치고 있습니다.

 

마르키스 O의 아버지에게는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지니고 있는, 딸을 귀하게 여기는 부성애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부장주의의 폭력 내지 여성을 하나의 결혼 상품으로 취급하는 시민 사회에서 통용되는 여성 비하의 시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것은 딸에 대한 아버지의 묘한 질투심 내지 딸 (여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근친상간 욕망, 바로 그것입니다. 요약하건대 딸에게 신문광고라는 어처구니없는 해결책을 강요한 사람은 바로 그미의 아버지이며, 우리는 여기서 가부장주의의 위선에 대한 클라이스트의 통렬한 비판을 읽을 수 있습니다.

 

 

11. 마르키스 O의 혼란스러움: 마르키스 O는 작품 내에서 피해자이며 희생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미는 자신의 임신을 부끄러워하는 등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르키스 O의 혼란스러움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사랑하게 된 F 백작의 모순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성폭력을 사랑으로 포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구원자로서의 F백작은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닙니다. 그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긴장 속에 뒤엉켜 있는 인물입니다. 그의 심성 속에는 선과 악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당시의 현실이 전쟁이라는 한계상황 송에 처해 있음을 일차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당시 오스트리아, 영국 그리고 러시아는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는 프랑스의 식민지 상태에 처해 있었으므로, 러시아 장교인 F 백작은 북부 이탈리아를 침공했던 것입니다. 전쟁은 참으로 끔찍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질서를 모조리 무너뜨리게 하며, 정상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전쟁은 F백작으로 하여금 수호자로서의 휴머니즘 그리고 유혹자로서의 사악한 충동을 구분하게 못하도록 작용합니다.

 

이 와중에서 백작은 마르키스 O가 군인들에 의해 겁탈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미를 구출해줍니다. 그는 정신을 잃은 마르키스 O의 몸을 탐했지만, 그미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마르키스 O에 대한 F백작의 사랑은 자신에 대한 시민 사회의 비난보다도 강하고 견고합니다. 그것은 나아가 자신의 성을 마구 유린한 불한당에 대한 마르키스 O의 증오심보다도 더 큰 것이었습니다.

 

12. 피해자 마르키스 O를 치유해주는 것은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가해자 ,F 백작의 깊은 참회와 사랑, 바로 그것이다.: 어쨌든 마르키스 O는 성폭력으로 인해 태어난 자식에 대해 깊은 사랑의 감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미의 부모, 특히 그미의 아버지는 시민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방식의 사랑과 성에 대해 어떠한 동정심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남성 중심적 시민 사회는 이런 식으로 여성에게 끔찍하고 가혹한 시련을 안겨주지만, 정작 비난의 방향은 잔인하게도 여성 한 사람에게로 향하고 있습니다.

 

여주인공 마르키스 O가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임신했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미는 사회적 인습의 피해자입니다. 그렇지만 마르키스 O는 이러한 괴로움 그리고 모순을 오로지 아기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스스로 극복해내고 있습니다. 마르키스 O는 어머니로서의 애틋한 사랑 그리고 지어미로서의 역겨운 혐오감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그미의 모성애 그리고 남편에 대한 증오심 사이의 모순을 해결해주는 장본인은 F 백작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임에게 바치고, 이를 실천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