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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클라이스트의 '홈부르크 왕자'

필자 (匹子) 2022. 12. 20. 12:47

친애하는 H, 오늘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홈부르크 왕자」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작품은 5막으로 이루어진 비극으로서 1809년에서 1811년 사이에 완성되었습니다. 클라이스트가 1811년 베를린의 반호숫가에서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가 생전에 공연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작품은 클라이스트가 죽은 뒤 10년 후인 1821년에 빈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클라이스트의 모습

 

사건은 1618년 페어벨린 전투가 발발하기 하루 전날의 왕궁에서 사건이 발생합니다. 홈부르크 왕자는 몽유병자입니다. 잠자다가 벌떡 깨어나서, 페어벨린의 정원에서 월계수를 쓴 채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전쟁의 승리자로 자처하며, 헛소리를 중얼거린다는 사실입니다. 먼발치에서 선제후는 시종과 함께 그의 기이한 행동을 바라봅니다.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왕자에게 다가가서, 월계수를 빼앗고, 장난삼아 그의 목걸이를 갈취합니다. 선제후는 자신의 곁에 있던 질녀, 나탈리에게 월계수와 목걸이를 건네줍니다.

 

왕자의 눈길은 일순간 그미에게 향하고, 정신 나간 왕자는 나탈리가 마치 자신의 아내라도 되는 것처럼 “부인”하고 호칭합니다. 왕자는 그미에게 다가가 손을 잡으려고 합니다. 기이한 해프닝을 바라보던 주위의 사람들은 깜짝 놀란 뒤에 자리를 뜨게 되고, 선제후는 왕자를 제지합니다. 비몽사몽의 상태에 처한 왕자의 손에는 나탈리의 장갑이 뎅그렁 쥐어져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되르플링 장군은 장교들에게 내일 아침의 전략을 설명합니다. 그는 왕자에게 다가가서, 선제후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는 절대로 공격 대열에 가담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왕자는 이에 대해 개의치 않고, 오로지 나탈리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날 아침 장성이 부하들에게 스웨덴 침공의 계획을 설명하고 있을 무렵에, 왕자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의 손에는 나탈리 공주의 장갑이 주어져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분명히 몽유하다가 그미의 장갑을 잡아당긴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미가 나의 청혼을 수락했단 말인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게 되자 왕자는 너무나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말을 타고 전쟁터로 달렸습니다. 마치 자신이 나탈리 공주에 의해서 선택받은 남자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꿈에 그리던 나탈리가 자신을 애인으로 받아들인다면, 이 세상에서 자신을 가로막을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왕자는 언덕에서 군대를 관찰하다가 공격 명령의 신호를 보냅니다. 아직 선제후의 시종이 공격 명령을 전하지 않았는데, 왕자는 그러한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문제는 공국이 그에게 공격 명령을 금지했는데도, 왕자가 이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성급하게 전투에 참가했던 사실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시종을 통해서 참전 명령서를 전했을 때 왕자는 이미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상관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전투에 참가한 것은 분명히 그의 잘못이었습니다. 절차야 어쨌든 간에 왕자의 열정적인 사투로 인하여 브란덴부르크 공국은 인접 국가에게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나중의 대화에서 밝혀지지만 왕자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뒤에 은밀하게 만나 나탈리와의 약혼에 서약합니다.)

 

선제후는 왕자의 돌출행동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페어벨린의 영웅”을 전범 재판에 회부합니다. 왕자는 재판 과정에서 명령불복종의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이러한 판결을 형식적인 것이라고 여기며, 거의 무시합니다. 그러나 선제후는 진지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가급적이면 빨리 왕자의 사형을 집행하려고 합니다.

 

왕자는 자신에게 들이닥친 불행에 대해서 처음에는 당혹스러워 합니다. 그렇지만 사태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왕자는 선제후부인에게 자신의 사면을 부탁하려고 그미를 찾아갑니다. 도중에 자신이 묻히게 될 묘지가 눈에 띄는 게 아니겠습니까? 왕자는 그제야 자신의 처형을 끔찍하게 여기고, 죽음에 대해 몹시 두려워합니다. 그는 선제후부인과 나탈리 앞에서 목숨을 구걸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만을 구해준다면 나탈리에 대한 결혼 약속마저 취소하겠노라고 말합니다.

 

체포되는 홈부르크 왕자

 

나탈리 역시 왕자가 처형당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백방으로 노력합니다. 마침내 선제후는 한 가지 조건 하에 그에게 사면 명령을 내리려고 작심합니다. 한 가지 조건이란 다름 아니라 판결받은 자가 전쟁 재판소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선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자는 이러한 내용이 적힌 편지를 나탈리를 통해서 건네받습니다. 바로 이때 그는 전쟁 재판소의 결정이 법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합니다. 바로 이때 많은 장교들은 왕자의 집 앞에 집결하여, 선제후에게 사면해줄 것을 요구하라고 종용하고 있었습니다. 왕자는 이들 앞에서 자신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노라고 공언합니다. 법의 권위를 존중하는 왕자의 태도는 결국 선제후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리하여 선제후는 왕자를 사면하기로 결심합니다.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꿈속의 장면은 실제 현실로 변하게 됩니다. 결국 왕자는 명예의 화환, 영광스러운 제후로서의 목걸이 그리고 꿈에 그리던 신부를 얻게 됩니다.

 

작품의 긴장감은 과연 왕자가 처형당할까? 아니면 사면 받을까? 하는 의문으로 인하여 발생합니다. 친애하는 H, 그렇다면 홈부르크 왕자의 무엇이 문제일까요? 선제후가 전쟁에 임의로 참가하지 말라고 경고한 까닭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왕자는 이전에 치른 두 번의 전쟁에서 공국의 군사작전을 망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치르는 전쟁에서 결코 경망스럽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왕자는 함부로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선제후는 법에 복종해야 한다고 완강하게 주장합니다. 사형 선고가 내려졌을 때, 왕자는 이를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단순히 형식적인 규정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선제후는 왕자의 바로 이러한 태도를 잘못으로 간주하고, 그를 처형시키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왕자가 군인으로서의 의무감을 중시하고, 명령을 어긴 죗값을 치르려고 했을 때 선제후는 그를 사면합니다. 극중에서 진행되는 사건은 사형 선고가 과연 정당한가, 아니면 부당한가? 에 관한 결정이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바로 그 순간 정반대로 전환됩니다. 다시 말해서 왕자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죄가 있다고 확신하고, 처벌 받을 준비가 되는 바로 그 순간에 선제후는 그를 사면합니다. 왕자가 자신의 죄를 인지하는 순간에 놀랍게도 이전에 왕자가 고수했던 자아중심주의 내지 자아에 대한 집착 그리고 죽음에 대한 끔찍한 두려움 또한 사라지고 맙니다.

 

이러한 순화의 과정은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작품을 비극이 아니라 희극적인 결과로 치닫도록 작용합니다. 제 4장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긴장감과 진지함은 마지막에 이르러 사라집니다. 마지막에 코트비츠 장군이 등장할 때 극중의 분위기는 일순간 즐겁고 흥겹게 변하게 됩니다. 선제후 역시 이전의 근엄하고 집요한 자세를 더 이상 취하지 않고, 승리를 축하하면서 느긋한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그는 모든 것을 속속들이 간파하는 자로서 마치 전지적인 신과 같은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왕자에 대해 동정심을 지니고 있으나, 군인으로서의 보편적 덕목을 따질 때에 선제후는 근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한마디로 왕자는 주어진 법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이를 따르는 순간에 비로소 죄로부터 사면됩니다.

 

함 Hamm에 있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전시관 (Heinrich von Kleist Forum) 천재 작가들은 대부분의 경우 후세 사람들을 위해서 명작을 남기고, 스스로 불행한 삶을 보내야 한다.

 

친애하는 H, 「홈부르크 왕자」는 오랫동안 반동적이며 보수적인 세계관을 옹호하는 작품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실제로 왕자가 접하게 되는 사면은 실정법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클라이스트의 작품이 프로이센의 국가 정책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해석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품을 깊이 파고들면 우리는 작품에 대한 그러한 정치적 해석이 작품의 표면만을 고려한 것임을 간파하게 됩니다. 극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마디로 모순의 상황입니다. 홈부르크 왕자의 개인적 자유 그리고 군인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국가의 명령 사이에는 어떤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깊은 골이 파여 있습니다.

 

클라이스트는 어쩌면 바로 이 점을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또 한 가지 정확히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홈부르크 왕자가 몽유병자라는 사실입니다. 왕자가 몽유하던 세계는 극이 진행되는 동안 정반대의 국면으로 치닫다가, 결국에는 현실로 화합니다. 다시 말해 왕자는 오로지 몽유하는 행위를 통해서 군인으로서의 의지 그리고 사내로서의 애정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렇지만 이는 주어진 현실적 조건 (군인으로서의 명령 복종에 관한 문제 그리고 상류층 사이의 복잡하게 얽힌 혼인 절차상의 문제 등)과 대립합니다. 그런데 왕자가 처음에 갈구하던 순수한 자기 의지 내지 사랑의 감정은 외부의 현실적 장애물에 의해 차단되지만, 주인공이 자아 중심적 의지를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완전히 극복됩니다.

 

왕자는 자신이 맨 처음에 갈구한 환영이 현실로 화한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이게 하나의 꿈인가요?” 하고 묻습니다. 이때 코트비츠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하나의 꿈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무엇일까요?” 아니나 다를까, 클라이스트의 유사비극은 -극작품은 희극적 요소가 은폐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사비극으로 명명될 수 있습니다- 어떤 꿈과 같은 갈망 내지 희망의 상으로 끝납니다. 마지막 장면은 마력적인 요소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북소리가 뒤섞인 죽음의 행진곡이 울려 퍼질 때, 찬란한 마지막 장면은 환하게 비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