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클라이스트의 'O 후작부인' (1)

필자 (匹子) 2023. 11. 23. 11:01

1. 기이한 신문광고, “나를 임신시킨 사내를 찾습니다.”: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천재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중편소설 「O 후작부인Die Marquis von O.」은 1808년 2월에 잡지 『푀부스Phöbus』에 처음으로 발표되었습니다. 2년 후인 1810년에 클라이스트는 약간 수정을 가하여, 자신의 『소설집 Erzählungen』에 수정판을 공개했습니다. 클라이스트는 미셀 드 몽테뉴의 「알코올 중독에 관한 에세이」(1588)를 참고한 것 같습니다. 몽테뉴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어느 여자 농부가 꿈속에서 술 취한 노예에게 성폭력을 당하는데, 나중에 노예가 자신의 죄를 고해하자, 여자 농부는 그와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클라이스트의 소설의 놀라운 내용은 작품의 첫 문장에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유명한 도시 M에서 과부로 살고 있는 O 후작부인은 탁월한 직업을 지녔으며, 이미 여러 명의 아이를 훌륭하게 키운 바 있는데, 신문에 다음과 같은 광고를 게재하게 하였다. ‘나는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임신하게 되었는데, 아기의 아버지는 즉시 자신에게 연락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처지를 고려하여 그와 결혼하려고 합니다.’”

 

2. 무의식의 상태에서 성폭력을 당한 다음에 임신하다니 ㅠㅠ: 클라이스트는 참으로 놀라운 사실적 정황을 소설의 맨 처음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술적 방식은 클라이스트 문학에서 유형적으로 드러나는 모순 구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인 O 후작부인이 의식을 잃은 채 임신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클라이스트는 마치 범죄 소설을 집필하듯이 도저히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독자들의 긴장감을 서서히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그의 소설 「미하엘 콜하스」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클라이스트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극대화시키면서 사건을 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작가는 낯설기 이를 데 없는 후작부인의 기막힌 이야기를 서서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3. 고결한 구원자가 자신을 겁탈한 사내로 판명되다.: 사건은 러시아 군대가 북부 이탈리아의 지역의 진지를 점령했을 때 발생합니다. 당시에 러시아 장교는 이곳 지역의 사령관의 딸인 마르키스 O가 러시아 군인들에 의해 끌려가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미가 겁탈당하기 전에 장교는 마르키스 O를 구출해줍니다. “그는 마르키스 부인에게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보였다.” 그러나 러시아 장교는 구출한 여인의 성을 유린해버립니다. 마르키스 O는 완전히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방에서 의식을 되찾은 그미는 자신을 구조해준 러시아 장교, 즉 F. 백작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습니다.

 

러시아 군에게 요새가 점령당한 다음에, 마르키스 O의 가족들은 커다란 피해를 당하지 않고, 시내의 다른 집으로 이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마르키스 O는 자신의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합니다. 역겨움 때문인지는 몰라도 헛구역질을 반복합니다. 자신의 몸이 -그미의 우스운 표현에 의하면- 마치 “축복받은 상태”에 처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마르키스 O는 다음과 같이 술회합니다. “여성으로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아요.” 여기서 우리는 그미가 심정적으로 진실을 은폐하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미의 기억 속에는 F 백작은 “고결한 구원자”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4. 아버지는 임신한 딸을 집밖으로 쫓아낸다.: 마르키스 O의 가족들은 처음에는 그미의 성폭력 사건에 관해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의 요새를 점령한 러시아 장교가 총에 맞아서 사망했다는 소문을 접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F 백작은 중상을 입었을 뿐 사망한 게 아니었습니다. 치료를 받은 다음에 그는 다시 사령관의 집으로 되돌아옵니다. F 백작은 지체하지 않고 마르키스 O를 찾아가서, 혼인의 뜻을 은근히 밝힙니다. 그미의 가족은 러시아 장교에 대해 커다란 반감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마르키스 O의 부모는 F 백작에게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야 F 백작의 인간됨됨이가 어떤지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상부의 중요한 명령을 수행해야 했으므로, 마르키스 O의 가족들의 부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한편 마르키스 O는 몸 상태가 이상해서 의사 그리고 산파를 찾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임신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마르키스 O는 자신의 임신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도 어느 사내와의 통정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딸의 부도덕한 행동을 질타하면서, 마르키스 O를 집밖으로 쫓아냅니다.

 

5. F 백작, 신문 기사를 읽고 마르키스 O에게 청혼하다: 나아가 아버지는 도시 G에 삼림조합장으로 일하는 아들을 시켜서, 아기가 태어날 경우 손자를 딸에게서 강제로 빼앗아오라고 명령합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마르키스 O는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차라리 부녀간의 관계를 끊어버릴까 하고 숙고합니다. 거의 절망적인 상태 속에서 과거에 살던 집으로 되돌아갑니다. 뒤이어 마르키스 O는 소설의 서두에 언급한 바 있는 내용을 신문 광고로 발표합니다. “나는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임신하게 되었는데, 아기의 아버지는 즉시 자신에게 연락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처지를 고려하여 그와 결혼하려고 합니다.”

 

바로 이 시기에 F 백작은 나폴리에서 도시 M으로 귀환합니다. 이때 그는 마르키스 O가 더 이상 아버지의 집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접하게 됩니다. 러시아 장교는 그미에게 청혼하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동침에 관한 언급 없이 마르키스 O에게 청혼했을 때, 그미는 열광하기는커녕 깜짝 놀라서, 거칠게 그의 청혼을 거절합니다.

 

6. 어머니는 딸이 어떻게 임신했는지 알게 되자, 딸의 무죄를 받아들인다.: 다른 한편 마르키스 O의 모친은 남편의 거친 행동을 비난합니다. 모친은 세부적 정황을 제대로 모르면서 딸을 밖으로 내친 아비를 원망합니다. 이 무렵에 신문에는 또 다른 기사가 실리게 됩니다. 거기에는 “아기의 친부가 모습을 드러내어 마르키스 O의 아버지의 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기사를 읽은 마르키스 O의 어머니는 일순간 어떤 의혹에 사로잡힙니다. 혹시 자신의 딸이 잠결에 성폭력을 당했는가? 하고 생각한 것이지요.

 

뒤이어 그미는 어떤 유도심문의 계략을 꾸밉니다. 모친은 마르키스 O를 찾아가서, 아기의 친부가 사냥꾼, 레오파르도가 아닌가? 하고 은근히 묻습니다. 이때 마르키스 O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늘어놓는 어머니를 심하게 질타합니다. 모친은 마르키스 O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음을 간파하고, 자신의 딸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던 모친은 딸을 믿지 못한 데 대해 용서를 구한 다음에, 마르키스 O를 데리고 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7. F백작, 사랑하는 여인의 집 앞에서 사죄하다: 그런데 마르키스 O의 가족들은 극도로 긴장하면서 집에서 그미를 임신시킨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다름 아니라 최근에 마르키스 O에게 청혼한 F 백작이었습니다. 백작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었습니다. F 백작의 등장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사람은 마르키스 O였습니다. 자신을 겁탈한 장본인이 다름 아니라 F백작이라니, 이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조용히 눈물짓던 마르키스 O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그미의 부모는 백작의 행동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F백작이 마르키스 O의 눈에 구원자로 비쳤다는 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신경 발작의 해프닝이 지나간 다음에 마르키스 O는 결국 F 백작과의 결혼에 동의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혼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습니다. 말하자면 첫 번째 비밀이 모조리 해결된 뒤에 두 번째 비밀이 출현하여 당사자들의 마음을 혼란시키게 만듭니다. 즉 마르키스 O가 부모와 화해한 다음에도 F 백작에 대한 증오심 내지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그와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백작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마르키스 O의 마음을 바꾸어놓습니다. 즉 그는 그미의 부모님 앞에서 남편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오로지 남편으로서의 의무에만 충실하면서 살겠다고 맹세한 것이었습니다.

 

8. 해피엔딩, 사랑과 성은 천사와 악마의 뒤섞인 욕구인가? 결혼식을 치른 다음에 F백작은 근처에 집을 구한 뒤에 그곳으로 혼자 이사합니다. 마르키스 O는 부모님 집에서 머물면서 출산을 준비합니다. 신랑은 가급적이면 마르키스 O와 그미의 부모를 찾아가지도 않습니다. 백작의 이러한 공손한 태도는 마르키스 O 그리고 그미의 부모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기가 태어나, 성당에서 세례를 받게 됩니다.

 

세례성사가 끝난 다음에 F백작은 아기와 마르키스 O에게 거액의 돈 그리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마르키스 O에게 유산으로 남긴다는 증서를 건네줍니다. 이때 F 백작은 아내에게 함께 살자고 제안합니다. 마르키스 O는 이러한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몇 년 후에 백작은 아내에게 어째서 당시에 자신의 청혼을 그렇게 완강하게 거절했는가? 하고 묻습니다. 이때 마르키스 O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만약 당신이 맨 처음 천사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어떤 악마처럼 비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