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9

(명저 소개) 완강함 속의 부드러움. 홍세화의『결: 거칢에 대하여』

2020년에 간행된 홍세화의 『결: 거칢에 대하여』 (한겨레 출판 2021)는 단순히 시대 비평을 넘어서, 인간 홍세화의 내적 성찰을 진솔하게 담고 있는 책입니다. 작가는 지금까지 프랑스와 한국에서 때로는 노동자로, 때로는 지식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국가보안법 그리고 반공법은 1970년대에 많은 사람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남민전”이라는 정치적 사건은 그를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보내게 했습니다. 귀국 후에 홍세화는 자신의 글과 칼럼을 공개했는데, 이는 많은 사람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언젠가 독일의 시인, 볼프 비어만은 서독으로 연주 여행을 떠났는데, 동독은 그의 입국을 거부했습니다. 망명 아닌 망명 작가가 된 그는 다음과 같이 일갈했습니다. “추방당한 자에 대한 차단..

1 알림 (명저) 2024.04.19

박설호: (4) 캄파넬라의 옥중 시편

(앞에서 계속됩니다.) 너: 마지막으로 한 편의 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의 시는 캄파넬라의 대표작인가요? 나: 네, 「나라를 지닌 자가 왕이 아니라, 다스릴 줄 아는 자가 왕이다. Non è re chi ha regno, ma chi sa reggere」를 대표작으로 꼽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권력의 본질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붓과 물감을 가진 자가 괴발개발 그림 그려 벽과 먹지 더럽힌다면, 그는 화가가 아니리. 설령 먹, 펜, 필통이 없더라도, 그림 그릴 능력을 지니면 그가 참다운 화가이리라. 삭발한 머리, 성의가 성직자를 만들지 않듯이 거대한 왕국과 땅을 지닌 자는 왕이라 할 수 없지 예수와 같이 천한 노예 출신이라도 마치 혹성, 팔라스와 화성처럼 그는 차제에 반드시 왕이 되겠지. ..

22 외국시 2022.12.15

박설호: 견유 문학론 (3)

본문에서 "당신"은 필자 자신을 지칭한다. ...................... 보충 사항 1: 부디 명심하십시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라는 속뜻을. 똥개는 짖지만, 명견은 함부로 짖지 않습니다. 명견은 가만히 있다가 자신의 판단을 실행하는 개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명견과 똥개를 구별하게 할까요? 똥개는 남을 의식하는 개입니다. 행여나 남들이 자신의 약점을 알아 차릴까봐 전전긍긍하지요. 똥개의 모든 행위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제일인자가 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이에 비하면 명견은 남을 의식하지 않는 개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고 마치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지요. 명견의 모든 행위는 자신을 감춘 채 타인을 돕고, 감추어진 진리를 전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2 나의 글 2022.06.26

서로박: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2)

양피지에 기록된 보카치오의 글 특히 놀라운 것은 서클의 참가자들이 첫 번째와 아홉 번째의 날에 아무런 특정한 주제 없이 자유분방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입니다. 이 대목에서는 디오네오 Dioneo라는 거친 악동 한 명이 등장하여, 앞으로의 진행 과정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디오네오는 마치 모임에서의 사회를 맡듯이, 참석자들에게 앞으로의 진행과정을 알려줍니다. 그는 저자인 보카치오를 대변하는 인물인 셈이지요. 디오네오는 자신의 본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매일 서클의 분위기가 즐겁고 안온하게 자리하도록 노력합니다. 여기서 나타나듯이, 보카치오는 비판적 리얼리스트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주어진 현실을 치밀하게 관찰하여, 모든 것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중세 말기의 기사들..

34 이탈스파냐 2021.08.06

(명저 소개)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친애하는 J, 비 내리는 저녁 토요일 내 앞에는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하워드 제어의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손진 역) KAP (쇄) 2015 이라는 책입니다.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번역서를 간행한 나로서는 보복의 법에 입각한 정의가 얼마나 가진 자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해 왔는가? 하는 점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아직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지 못했으나, 이 책이 지향하는 바에 관해서는 이도흠 교수의 책,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에서 접한 바 있습니다. 보복의 정의는 법원 내지 법관에 의한 처벌이라는 점에서 제 3자의 평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회복적 정의는 가해자가 진심 어린 태도로 피해자에게 눈물로 사죄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과거에 우리 나라의 두레 ..

1 알림 (명저) 2021.07.10

서로박: 캄파넬라의 철학시편 (4)

나: 마지막으로 한 편의 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의 시는 캄파넬라의 대표작인가요? 너: 네, 「나라를 지닌 자가 왕이 아니라, 다스릴 줄 아는 자가 왕이다. Non è re chi ha regno, ma chi sa reggere」를 대표작으로 꼽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권력의 본질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붓과 물감을 가진 자가 괴발개발 그림 그려 벽과 먹지 더럽힌다면, 그는 화가가 아니리. 설령 먹, 펜, 필통이 없더라도, 그림 그릴 능력을 지니면 그가 참다운 화가이리라. 삭발한 머리, 성의가 성직자를 만들지 않듯이 거대한 왕국과 땅을 지닌 자는 왕이라 할 수 없지 예수와 같이 천한 노예 출신이라도 마치 혹성 팔라스와 화성처럼 그들은 차제에 반드시 왕이 되겠지. 현명함의 관을 쓰고 세상..

34 이탈스파냐 2021.06.30

(명저 소개) 신영복: 냇물아 흘러서 어디로 가니

필자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신영복 선생님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자주 소개해주곤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분이 유고집 "냇물아 흘러서 어디로 가니"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김창남 교수의 서문: "어떻게 20년 간이나 감옥 생활을 한 한 분의 글에 신산한 고통이나 증오의 흔적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가? 언젠가 거기에 대해 선생은, 이 편지들은 가족에게 보내는 것이었고, 검열을 전제한 글이었다는 점을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자신이 겪어야 하는 영어 (囹圄)의 고통과 세상에 대한 노여움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일차적으로 검열을 의식해야 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 감옥 바깥에 계시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서 더욱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글을 써내려가신 게 분명합니다.그..

1 알림 (명저) 2020.04.05

서로박: 캄파넬라의 옥중 시선 (5)

원래 감옥에 갇힌 사람이 비밀리에 옆방에 갇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행동을 “통방 Kassiber”이라고 합니다. 감옥에 갇힌 시인이 간수의 김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옷고름에 혹은 종잇조각에 시를 새기는 것을 통방을 위한 문학적 작업이라고 하지요. 토마소 캄파넬라도 그렇게 비밀리에 문학적으로 통방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종잇조각에 철학 시를 기록하였습니다. 감옥에 갇힌 지 10년이 지나니까 원고 뭉치가 제법 두툼해졌습니다. 1600년은 유럽의 중세사에서 참으로 끔찍한 일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조르다노 브루노는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화형당해야 했습니다. 죽기 전에 그는 "기도를 원하는가?"하는 가톨릭 수사의 질문에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고 합니다. 토마소 캄파넬라는 1600년경에 ..

22 외국시 2015.11.11

(명저) 신영복의 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담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였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변방을 찾아서, 엽서, 강의 등 신영복 선생의 책이라면 거의 모조리 읽었지만, 이처럼 커다란 충격과 감동을 받은 적은 없었다. 책은 두 개의 장으로 나누어진다. 앞의 장은 신영복 선생이 감옥에서 읽었던 동양의 사상에 관한 강의이며, 뒤의 장은 감옥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형수 그리고 수인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동양학에 무지한 나로서는 틈틈이 시난 날 때마다 앞부분을 읽었는데, 그 내용과 깊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나의 마음을 충격에 빠뜨린 것은 두 번째 장의 내용이다. 과연 우리가 죄를 저지른 인간을 처벌할 수 있는가? 누구라 하더라도 자신의 존재를 인간 이하가 아니라, 무로 취급하는 사악한 존재들을 극도의 ..

1 알림 (명저) 2015.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