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일 7

(명저 소개) 박태일의 시집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

박태일의 시는 지금까지 발표된 일련의 시집에서 서정성 그리고 언어 구사의 측면에서 탁월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지역 문학 연구자로서 오랫동안 많은 국내외의 지역을 탐색하면서 도서관과 책방을 뒤지는 수집가이기도 합니다. 청년 시절 그가 등단하지 않았을 때 그의 집에 우연히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의 서재에는 이미 천 권의 시집이 꽂혀 있었습니다. 박태일 시인은 평생 시를 위해서 살아온, 수십년 동안 시에 침잠해 온 영혼입니다. 이번에 간행된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 (산지니, 2023)는 그가 북간도 지역을 여러 번 답사하고 여러 도서관에서 북한 문학 그리고 역사 자료를 수집하는 와중에 집필된 100편의 시 작품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나그네”는 연변 말로 남편이라는 뜻을 지니고, “안까이”는 아내를..

1 알림 (명저) 2023.12.17

(명시 소개) (2) 의로운 작가에 대한 기억. 박태일의 시 「두 딸을 앞세우고」

(앞에서 계속됩니다.) 살아 한 번도 집을 지니지 못한 일이 무슨 자랑이라는 눈빛이시지만 일찍부터 너른 마당에 고방에 그대 한 커다란 집이었느니 밀양 사람 다 알지 밀양 땅 좁아 밀양강 줄기는 다시 한 번 용두목에서 꺾였던 것을 밀양강 없이 살아온 그대 밀양이 언제 기억했던가 그래 그대마저 그대를 기억했던가 세월 흘렀다고 시절 흘렀다고 이제는 늙어 희어 고요히 입 다무시나 먼 산 돌길 단풍단풍 구르는 날 두 딸을 앞세우고 찬찬히 찬찬 걷는 그대 뒤 따르면 영남루 대바람 소리 가슴을 찬다. 너: 박태일 시인의 문체에는 조금이라도 가식적인 면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나: 시집 『옥비의 달』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대신에 시적 상상 내지 주제상의 심층성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고 할까요? 시인이 과연 언..

19 한국 문학 2023.05.26

(명시 소개) (1) 의로운 작가에 대한 기억. 박태일의 시 「두 딸을 앞세우고」

너: 시인, 고은의 『만인보 (万人譜)』에는 다음과 같은 시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 4월 19일이면/ 해마다/ 그들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 무덤 저만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무덤 다섯/ 무연고 묘지/ 누구의 자식일지 모를/ 그 혁명의 거리에서/ 쓰러진/ 이름 없는 젊은이의 무덤 다섯// 바로 그 무덤 속의 젊은이를/ 그의 양자로 삼아/ 해마다/ 향과 초/ 떡과 소주를 가지고 와/ 제사지내는 사람이 있다// 표문태 (...)” 나: 네. 고은의 시구를 읽으면, 표문태가 어떠한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민주화 운동의 영웅들을 혼자 기리는 분이 바로 작가 표문태 (1914 - 2007)였습니다, 쉰에 가까운 그에게는 20대의 다섯 청년들은 아들과 다름이 없..

19 한국 문학 2023.05.26

(명시 소개) 박태일의 시「들개 신공」

나: 오늘은 박태일의 명시 「들개 신공」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2013년 문학동네에서 간행된 시집 『달래는 몽골말로 바다』에 실려 있습니다. 지금까지 발표된 박태일의 시집 가운데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지요. 너: 일단 작품에 등장하는 몇 가지 난해한 시어를 해설해 주시지요? 나: “신공”이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 듯합니다. 첫째로. 신공神功은 기도드리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흔히 가톨릭에서 묵상 신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해 보세요. 둘째로. 신공申供은 정성들여 소원을 비는 행위를 지칭합니다. 너: 벅뜨항, 게르, 어워, 잉걸불 등의 시어가 낯설게 다가오네요. 나: “벅뜨항”은 울란바트르의 산 이름이며, “게르”는 몽골의 이동식 집을 뜻합니다. “어워”는 몽골..

19 한국 문학 2021.12.24

(명시 소개) "어리석음이 어찌 덕이랴". (2) 박태일의 시 「낙타 눈물」

(앞에서 계속됩니다.) 겨우내 낭떠러지 추위에 떠밀려 기우뚱 뒤뚱 기름 녹고 접힌 두 등봉 털 빠져 헐거운 뱃가죽 짝과 새끼가 죽었을 때 낙타는 운다지만 오늘은 주인이 켜는 마두금* 소리에 소금보다 짠 눈물을 끓이며 새끼에게 물릴 젖을 내어준다 나: 제 2연에서 시인은 자신이 만나 낙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낙타는 인간으로 치면 장년의 나이에 이른 암컷입니다. 너: 낙타가 걸어가는 모습은 분명히 벼랑 사이의 길인 것 같습니다. “낭떠러지”에서 “기우뚱 기우뚱” 걷게 하는 자극하는 것은 “추위”라고 서술하네요. 나: 이미 언급했듯이 낙타의 등에는 기름덩어리가 있어서 일주일 먹지 않고도 버틸 수 있습니다. 이 동안 낙타는 “등봉” 속의 굳기름으로 영양을 공급해 나갑니다. 너: 놀라운 것은 이어..

19 한국 문학 2021.05.16

(명시 소개) “어리석음이 어찌 덕이랴”. (1) 박태일의 시 , 「낙타 눈물」

나: 오늘은 박태일 시인의 시 한 편을 논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작품 「낙타 눈물」은 2013년에 발표된 시집 『달래는 몽골말로 바다』(문학동네)에 실려 있습니다. 너: 어째서 이 작품을 선정하였는지요? 나: 박태일 시집 『달래는 몽골말로 바다』에는 명시가 많이 실려 있습니다. 이 작품 외에도 「동행」, 「붉은 여우」, 「말」, 「들개 신공」등은 깊이 천착해야할 필요성을 지닌 작품들로서, 예술과 사상의 측면에서 어떤 심원함을 드러냅니다. 재미있는 것은 상기한 시 작품의 소재가 모두 동물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너: 네, 감정이입이 돋보이는 시편들입니다. 낯선 곳에서 조우한 생명체는 모두 시적 자아의 또 다른 존재가 의인화되어 있는 동물들이지요. 부언하건대 박태일 시인은 2006년에서 2007년까..

19 한국 문학 2021.05.16

(명시 소개) 박태일의 시 "레닌의 외투"

아침 저녁 오갈 때마다 혹 당신일까 길 건너로 지나치다 울란바타르에 머문 셋째 주인 오늘 울란바타르호텔 앞에 선 당신을 처음 만난다 옆구리에 무거운 외투를 낀 채 익은 듯했던 모습은 동상 앞쪽에 새긴 레닌 레닌 막 배우기 시작한 몽골어로 확인하며 나는 눈인사를 보낸다 레닌 당신보다 먼저 알았던 동지 카우츠키 1970년대 초반 어린 대학생 시절 나에게 그의 책 계급투쟁 복사본을 건네주었던 친구는 서독으로 흘러가 동독 문학을 배우고 독일인 아내와 돌아왔지만 그가 처음 말아주었던 대마초 매운 연기처럼 울란바타르 겨울 공기는 낮고 어둡다 그 카우츠키가 어떻게 살았는지 나는 잊었고 또 당신이 어떻게 그를 다루었는지 희미하지만 징키스한과 자무하가 뿌린 넓은 땅 울란바타르 붉은 영웅의 도시에 영웅으로 와서 오래 즐거..

19 한국 문학 2020.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