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어리석음이 어찌 덕이랴”. (1) 박태일의 시 , 「낙타 눈물」

필자 (匹子) 2021. 5. 16. 11:14

나: 오늘은 박태일 시인의 시 한 편을 논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작품 「낙타 눈물」은 2013년에 발표된 시집 『달래는 몽골말로 바다』(문학동네)에 실려 있습니다.

너: 어째서 이 작품을 선정하였는지요?

나: 박태일 시집 『달래는 몽골말로 바다』에는 명시가 많이 실려 있습니다. 이 작품 외에도 「동행」, 「붉은 여우」, 「말」, 「들개 신공」등은 깊이 천착해야할 필요성을 지닌 작품들로서, 예술과 사상의 측면에서 어떤 심원함을 드러냅니다. 재미있는 것은 상기한 시 작품의 소재가 모두 동물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너: 네, 감정이입이 돋보이는 시편들입니다. 낯선 곳에서 조우한 생명체는 모두 시적 자아의 또 다른 존재가 의인화되어 있는 동물들이지요. 부언하건대 박태일 시인은 2006년에서 2007년까지 약 1년 동안 몽골에서 체류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체험은 『몽골에서 보낸 네 철』이라는 여행기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나: 그렇다면 몽골은 시인에게 어떠한 장소인가요?

 

너: 우리는 그의 여행기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시집을 바탕으로 세 가지 사항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몽골은 처음에는 오지의 땅으로 각인되었습니다. 과거의 찬란한 영화로움을 간직해 있지만. 이제는 세상사에서 망각된 영역이 바로 몽골입니다. 시인은 이곳을 검은 슬픔을 안겨주는 곳이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세계의 역사에서 소외되고 은폐된 지역이 바로 몽골이지요.

나: 몽골로 향하는 길은 어쩌면 시인이 추구한 학문적 예술적 방향과 병행하는 것 같아요. 시인은 체질적으로 학문적 예술적 전체주의적 분위기에 반기를 들지 않았나요?

 

너: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부터 시인은 중앙집권적인 전체주의적 폭력에 거부감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는 개별성과 차별성에서 어떤 독특한 의미를 발견하려는 의지와도 관련되지요. 그런데 나머지 두 가지 사항은 무엇인가요?

나: 몽골은 시인에게 가장 오래된 고향, 시원의 영역으로 이해됩니다. 가령 만주 지역과 중국 북부에는 흉노, 동호, 오한, 선비, 거란, 몽골, 숙신, 읍루, 말갈, 여진 그리고 만주족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의 뿌리는 혈연적으로 일부 고대의 동이족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들은 중국 본토의 민족들과는 근본적으로 차이점을 보여줍니다.

 

너: 그렇지만 박태일 시인이 민족의 원형Archetyp을 찾으려는 의도를 강하게 드러내지는 않는 것 같은데요?

나: 동의합니다. 시인은 민족의 동질성을 찾기보다는 인간 삶의 일반적 근원을 더듬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소박한 몽고인들에게서 동이족의 흔적을 발하게 됩니다. 셋째로 몽골은 시인에게는 낯선 장소, 주변의 지역으로 투영되고 있습니다. 원래 여행이란 낯선 무엇을 발견하려는 목적보다는 망각된 자아를 찾기 위한 적절한 방법이지요. 시인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변방에서 새로움을 찾을 뿐 아니라, 낯선 환경에서 자신의 고유한 존재와 조우하려고 시도합니다.

 

너: 낙타는 참으로 슬픈 동물인 것 같습니다. 신체구조가 사막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되어 있어요. 발가락은 두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막을 횡단하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모래바람이 불면 낙타는 콧구멍을 스스로 막을 수 있어요. 등에 붙은 혹에는 기름덩어리가 가득 있어서 일주일 동안 먹지 않아도, 3일 동안 물을 섭취하지 않아도 거뜬히 생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나: 낙타는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의 전형이지요. 황지우 시인도 「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낙타」라는 시를 발표했어요.

너: 실제로 낙타는 마치 소처럼 인간의 관점에서 고찰하면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유익한 동물이지요. 사막에서는 탈것으로, 고기는 음식으로, 젖은 음료로, 털은 옷으로 활용되는 게 낙타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동물이 낙타입니다.

 

사막이 주저앉아

회리리 회오리 밟아

그 서슬에 허파 찢긴 듯

털썩 따가운 사랑이 있었던가

성냥개비 불붙는 첫 순간

유황불 젊은 날 다 보내고

능선에 능선을 지고 선 낙타를 본다

 

나: 작품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작품은 세 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 1연: 사막에서 살아온 낙타의 역정 (과거), 제 2연: 낙타의 모습과 눈물 (현재) 제 3연: 낙타와 시인 사이의 서로 교차되는 공감 (상상).

너: 어쩌면 제 3연은 시작 자아의 공감 내지 깨달음을 통한 이후의 삶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미래의 영역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는데요?

나: 거친 “회오리” 바람은 낙타의 삶을 힘들게 했습니다. 바람 속의 모래는 낙타의 “허파”를 “찢기게” 할 정도로 놈을 괴롭혀 왔지요. 고난 속에서도 낙타를 버티게 해준 것은 “따가운 사랑”이었습니다.

너: “성냥개비 불붙는 첫 순간”은 언제를 가리키는 시점일까요? 아마도 주위의 참혹한 현실을 망각하게 해줄 정도로 황홀한 순간의 행복이 아닐까요? 시인은 아마도 젊은 날 “유황불” 아래의 사랑을 기억 속에서 소환하면서, 낙타 역시 자신의 청춘 시절을 그렇게 보냈으리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나: 동감할 수 있네요. 시인은 “능선에 능선을” 지나온 낙타를 바라보며, 자신의 지나간 “유황불” 청춘을 떠올립니다.

너: 한 생명체의 생을 이처럼 간결하고도 거칠게 요약한 시구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