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어리석음이 어찌 덕이랴". (2) 박태일의 시 「낙타 눈물」

필자 (匹子) 2021. 5. 16. 11:19

(앞에서 계속됩니다.)

 

겨우내 낭떠러지 추위에 떠밀려

기우뚱 뒤뚱 기름 녹고 접힌 두 등봉

털 빠져 헐거운 뱃가죽

짝과 새끼가 죽었을 때 낙타는 운다지만

오늘은 주인이 켜는 마두금* 소리에

소금보다 짠 눈물을 끓이며

새끼에게 물릴 젖을 내어준다

 

나: 제 2연에서 시인은 자신이 만나 낙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낙타는 인간으로 치면 장년의 나이에 이른 암컷입니다.

너: 낙타가 걸어가는 모습은 분명히 벼랑 사이의 길인 것 같습니다. “낭떠러지”에서 “기우뚱 기우뚱” 걷게 하는 자극하는 것은 “추위”라고 서술하네요.

나: 이미 언급했듯이 낙타의 등에는 기름덩어리가 있어서 일주일 먹지 않고도 버틸 수 있습니다. 이 동안 낙타는 “등봉” 속의 굳기름으로 영양을 공급해 나갑니다.

 

너: 놀라운 것은 이어지는 시구입니다. “짝과 새끼가 죽었을 때 낙타는 운다지만”. 실제로 낙타가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지요?

나: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시구는 감정 이입으로 이해해야 좋을 듯합니다. 시인은 어쩌면 인간의 불행을 낙타에 빗대어 묘사하려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우리가 가장 끔찍한 불행으로 여기는 것은 사랑하는 임과 영원히 이별했을 때, 아니면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었을 때가 아니겠습니까?

 

너: 그런데 낙타가 마두금 연주를 들을 때 눈물을 흘리는 것은 사실이라고 합니다. SBS의 『TV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은 대부분의 낙타가 마두금 연주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방영한 적이 있어요.

나: 연구에 의하면 마두금 소리의 주파수는 낙타의 울음소리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낙타는 마두금 연주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한지는 몰라도,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시인은 이러한 모습을 “소금보다 짠 눈물을 끓”인다고 표현합니다.

 

어리석음이 어찌 덕이랴

낙타구름 떠가는 봄날

낙타는 사람을 배워 사람처럼 흐느끼고

나는 낙타를 배워

무릎을 꿇는다

 

너: 제 3연은 “낙타와 시인 사이의 서로 교차되는 공감 (상상)”을 가장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나: 그렇습니다. 낙타구름 떠가는 봄날 시인은 자신이 살아온 삶과 낙타의 삶을 반추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너: 시인이 첨부한 각주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네요. “어리석음이 어찌하여/ 어진 것이 되느냐?” (김종길의 「소).」

나: 김종길의 시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 커다란 검은 눈에는/ 슬픈 하늘이 비치고/ 그 하늘 속에 내가 있구나// 어리석음이 어찌하여 어진 것이 되느냐// 때로 지그시 눈을 감는 버릇을/ 너와 더불어/ 오래 익히었구나

 

너: 김종길의 시는 소에게서 배우는 어진 마음으로 요약될 수 있을까요?

나:: “”는 어리석고, 소는 어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어리석은 “”가 소에게서 어진 것을 배운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이중섭의 그림 「소」는 이러한 감정 이입을 극대화시켜 보여줍니다. 그런데 박태일 시인의 시구는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김종길의 「소」의 경우와는 동일하게 해석될 수 있으면서도, 동일하게 해석되지 않습니다.

너: 무슨 뜻이지요?

나: 박태일의 시에서 “어리석음이 어찌 덕이랴”라는 구절은 어리석은 자아가 어진 소의 마음을 배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일종의 “형용모순Oxymoron”에 대한 패러디입니다. 얼핏 보기에 어리석음은 덕과는 반대되는 개념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어리석음은 멍청함 (愚)이 아니라, 순진무구 (純真無垢)를 지칭하지요. 자고로 현자는 겉모습에 있어서는 대체로 어리석게 보입니다. 참다운 빛은 빛나지 않듯이 말이지요.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낙타는 항상 타자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손해 당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너: 그렇다면 낙타에게서 드러나는 희생과 헌신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눈물겨운 이타주의라는 말씀이지요?

나: 그렇습니다. 마지막 3행은 사람과 동물 사이의 그야말로 놀라운 교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낙타는 사람을 배워 사람처럼 흐느끼고/ 나는 낙타를 배워/ 무릎을 꿇는다”. 낙타는 사람에게서 흐느끼는 것을 배우는 동안, 시인은 낙타에게서 어리숙함 그리고 겸허함을 배우고 있습니다.

너: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