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살아 한 번도
집을 지니지 못한 일이
무슨 자랑이라는 눈빛이시지만
일찍부터 너른 마당에 고방에
그대 한 커다란 집이었느니
밀양 사람 다 알지 밀양 땅 좁아
밀양강 줄기는 다시 한 번
용두목에서 꺾였던 것을
밀양강 없이 살아온 그대
밀양이 언제 기억했던가 그래
그대마저 그대를 기억했던가
세월 흘렀다고
시절 흘렀다고
이제는 늙어 희어 고요히 입 다무시나
먼 산 돌길 단풍단풍 구르는 날
두 딸을 앞세우고
찬찬히 찬찬 걷는 그대 뒤 따르면
영남루 대바람 소리
가슴을 찬다.
너: 박태일 시인의 문체에는 조금이라도 가식적인 면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나: 시집 『옥비의 달』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대신에 시적 상상 내지 주제상의 심층성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고 할까요? 시인이 과연 언제 표문태 작가와 만난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추측컨대 시인과 표문태 작가가 밀양에서 개최된 문학 축제에 참가한 듯 보입니다.
너: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모든 것을 말하지요?
나: 박태일 시인은 백발이 성성한 노작가를 대하면서, 그에게서 어떤 놀라움과 새로움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아마도 표문태 작가에게서 어떠한 권위의식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데 놀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완강한 지조와 타협할 줄 모르는 의인의 힘없는 모습을 새롭게 접하고 있습니다.
너: 시는 4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 그렇습니다. 앞의 두 연과 뒤의 두 연은 내용과 주제 상으로 서로 다릅니다. 우리는 이를 고대 그리스의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특징인 “양분구성 Diptychon”이라고 하지요. 앞부분은 표문태 작가의 삶과 문학을 다루고 있다면, 뒷부분은 노인의 형형한 눈빛과 지조를 서술합니다.
너: 제 1연은 재산과 소유와 관련되지요?
나: 그렇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가난을 자랑으로 말하는 분은 무척 드뭅니다. 작가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집을 소유한 적이 없는 작가는 시인의 눈에 하나의 “커다란 집”으로 각인되고 있습니다. 나라의 안녕을 자신의 안녕으로 간주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개인 재산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겠습니까? 죽은 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의 (寿衣)에는 호주머니가 없지요.
너: 제 2연에서 “밀양”이라는 시어가 다섯 차례 반복되고 있습니다.
나: 표문태는 고향에 집착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고향에서의 편안한 삶을 마다해야 했으니까요? 그는 그저 “용두목에서” 꺾이는 “밀양강 줄기”를 떠올리면서, 외지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이방인으로 배척하곤 했지요.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거나 눈앞의 이득을 제공하는 자가 아니라, 의로움을 택하며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밀양”이 그를 “기억”했을 리 만무합니다.
너: 표문태는 작품 발표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지요? 여기에는 문단의 폐쇄적 이기주의가 묘하게 작용한다고 했습니다.
나: 오늘날에도 문단의 편 가르기는 매우 심각하지요. 표문태 역시 서울에서 활동할 때 이름 있는 작가와 평론가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고 합니다. 가령 『현대문학』을 간행했던 친일 평론가 조연현은 표문태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작품 활동을 방해했지요. 사람들은 1945년에 발표된 표문태의 희곡 「역사의 죄인들」을 문제로 삼았습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민족의 이익보다 자신과 분파의 이익을 앞세우는 기회주의를 통렬히 비판했거든요.
너: 아, 그 때문에 조연현, 백철, 김동리 등과 같은 순수 문학을 지향하는 평론가들이 그를 경원시했군요.
나: 그렇지만 표문태는 자신의 이름을 떨치는 데에는 추호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대마저 그대를 기억했던가”라는 시구는 이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너: 말년에 표문태는 안산에 사는 딸에게 노구를 의탁했다고 전해지는데요?
나: 표문태의 말년의 삶과 문학에 관해서 우리는 더욱 밝혀나가야 하겠지요. 중요한 것은 시인의 순간적 깨달음입니다.
너: 시인은 백발이 성성한 그분에게서 무슨 말을 듣고 싶지만, 노작가는 별 말이 없습니다. 시인의 순간적 깨달음은 무엇일까요?
나: 시인은 나이든 작가의 힘없는 모습에서 어떤 “대바람 소리”를 청취합니다. 대바람 소리는 어쩌면 작가의 카랑카랑한 지조와 자세를 가리키는지 모릅니다. 어떠한 불의에도 타협하지 않은 채 통일 운동과 반핵 운동의 신념을 죽는 그 순간까지 놓지 않았던 작가의 모습은 일순간 시인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너: 시인 박태일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망각된 작가의 결코 망각될 수 없는 문학 정신을 다시 한 번 소환해내고 있네요.
나: 나중에 표문태 문학의 가치가 재조명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작가 표문태가 이름 없이 사망한 죽은 젊은이 다섯 명을 양자로 삼아서 “향과 초”를 피웠듯이, 오늘날 뜻있는 젊은 작가는 소주병을 들고 표문태의 무덤을 찾아가서 큰 절 올리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말씀 감사드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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