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젠 7

서로박: 몸젠의 로마사, 하이너 뮐러 (3)

7. 『로마사』 4권은 1990년까지 책으로 완성된 바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 4권이 집필되지 않은 이유를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몸젠이 남긴 편지와 논문들을 추적하였습니다. 어딘가에 반드시 몸젠의 원고가 있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몸젠의 원고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후의 역사가들은 몸젠이 어떤 말 못할 이유로 『로마사』 제 4권을 완성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부의 원고를 초고로 기록해두었다는 것을 알아내었습니다. 이는 몸젠이 보낸 편지에서 그리고 그의 딸 아델하이트 몸젠의 책에서 부분적으로 암시되는 사항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즉 1880년 7월에 몸젠이 거주하던 베를린의 집에 불이 나서, 만권의 장서가 화염에 휩싸였는데..

25 문학 이론 2021.12.12

서로박: 몸젠의 로마사, 하이너 뮐러 (2)

4. 로마사 제 4권은 결본이다. 테오도르 몸젠은 역사 연구가로서 오랫동안 활약하다가, 1902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노벨 문학상이 음악 미술 문학의 차원에서 이해되는 예술로서의 “문학”이 아니라, 문헌학으로서의 문학 (文学)임을 자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독어독문학은 독일어와 독문학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독일어로 구성된 문헌학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수상작은 그의 평생의 역작 『로마사』였습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다섯 권으로 집필될 예정이었는데, 제 4권의 작품 소재는 로마 황제의 시대에서 로마의 몰락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1권부터 3권까지의 내용은 로마의 건국부터 공화정이 끝날 때까지의 역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 5권의 작품 소재는 ..

25 문학 이론 2021.12.12

서로박: 몸젠의 로마사, 하이너 뮐러 (1)

1. 몸젠의 삶 (1): 테오도르 몸젠은 (1817 – 1913) 1821년부터 북독의 올데스로에 지역의 목사로 일하는 큰아들로 태어나, 다섯 동생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아이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버지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주했지만, 테오도르 몸젠은 가톨릭에 대해서 거부감을 지닌 자유로운 프로테스탄트로 고향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비록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옌스 몸젠은 자식들을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 라틴어, 그리스어 그리고 고전 문학에 눈을 뜨게 하였습니다. 몸젠은 처음에는 1838년 킬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습니다. 1839년 그는 킬 대학교에서 나중에 독일의 유명한 작가로 거듭나게 될 테오도르 슈토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몸젠은 슈토름과 자신의 동생 티코 몸젠과 함께 시선집을 간행..

25 문학 이론 2021.12.12

테오도르 슈토름

테오도르 슈토름 (1817 - 1888)은 북부 독일의 소설가입니다. 1817년 그는 북독의 후줌에서 법률가 요한 C 슈토름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집은 부유한 편이라서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슈토름은 단편 장편 등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는 법학을 공부하여 1842년부터 1853년까지 후줌에서 변호사로 일했습니다. 후줌은 북독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이곳에는 휴양 시설이 즐비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서해처럼 갯벌이 유명합니다. 후줌에 있는 테오도르 슈토름의 생가. 1층에는 상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년이 되어 슈토름은 평생 생활비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일곱명의 자식을 키웠기 때문입니다.1864년부터 1880년까지 독일 덴마크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여, 그는 ..

9 문학 이야기 2021.11.08

미완의 로마사

1. 몇 년 전 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왜 자주 거짓말하니?” - ... - “양치는 소년과 늑대에 관한 이야기 알지?” - “응.” - “그런데도 거짓말할래?” - “시시콜콜 대답하기 싫어서...” - “그럼 침묵하면 되지 않니?” 나는 아들에게 침묵의 권한이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얼마나 귀중한 무기가 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세상은 때로는 우리에게서 묵비권을 빼앗아간다. 한계 상황을 생각해 보라. 총칼 앞에서 침묵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저항 행위이지만, 위험하지 않는가? 2. 며칠 전 신문에 친일 행각을 저지른 자의 명단이 일제히 공개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역사는 공정하지만, 어째서 그렇게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일순 역사가, 테오도르..

2 나의 글 2021.08.08

서로박: 몸젠과 뮐러 (2)

8. 몸젠은 로마사 제 4권을 못 쓴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완성하지 않았다. 그의 학문적 열정과 부지런함을 고려할 때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즉 몸젠은 로마사 제 4권을 못 쓴 게 아니라, 안 쓴 것이라고, 왜 그는 로마사 제 4권의 집필을 그토록 꺼렸던 것이었을까요? 이는 나중에 독일의 극작가, 하이너 뮐러가 마음속에 품었던 질문이었습니다. 몸젠은 어느 편지에서 “왕궁의 잡다한 가십거리에 관해 왈가왈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하고 대꾸하였습니다. 또한 몸젠은 1885년 어느 저녁 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로마 황제의 역사 그리고 로마의 붕괴와 멸망에 관해 기술하려는 심리적 욕구가 솟아오르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몸젠은 집필에 더 이상 신명을 느끼지 못했습니..

45 동독문학 2021.06.22

서로박: 몸젠과 뮐러 (1)

1. 몸젠의 삶 (1): 테오도르 몸젠은 (1817 – 1913) 1821년부터 북독의 올데스로에 지역의 목사로 일하는 큰아들로 태어나, 다섯 동생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아이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버지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주했지만, 테오도르 몸젠은 가톨릭에 대해서 거부감을 지닌 자유로운 프로테스탄트로 고향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비록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옌스 몸젠은 자식들을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 라틴어, 그리스어 그리고 고전 문학에 눈을 뜨게 하였습니다. 몸젠은 처음에는 1838년 킬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습니다. 1839년 그는 킬 대학교에서 나중에 독일의 유명한 작가로 거듭나게 될 테오도르 슈토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몸젠은 슈토름과 자신의 동생 티코 몸젠과 함께 시선집을 간행..

45 동독문학 2021.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