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문학 이론

서로박: 몸젠의 로마사, 하이너 뮐러 (3)

필자 (匹子) 2021. 12. 12. 11:51

7. 『로마사』 4권은 1990년까지 책으로 완성된 바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 4권이 집필되지 않은 이유를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몸젠이 남긴 편지와 논문들을 추적하였습니다. 어딘가에 반드시 몸젠의 원고가 있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몸젠의 원고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후의 역사가들은 몸젠이 어떤 말 못할 이유로 『로마사』 제 4권을 완성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부의 원고를 초고로 기록해두었다는 것을 알아내었습니다. 이는 몸젠이 보낸 편지에서 그리고 그의 딸 아델하이트 몸젠의 책에서 부분적으로 암시되는 사항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즉 1880년 7월에 몸젠이 거주하던 베를린의 집에 불이 나서, 만권의 장서가 화염에 휩싸였는데, 이때 그의 원고가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사항입니다. 그후 몸젠은 더 이상 『로마사』 제 4권을 완성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테오도르 몸젠의 친필 원고를 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몸젠은 1863년부터 1888년 사이에 베를린에 있는 프로이센 왕립 대학교에서 거의 20학기 동안 『로마사』를 가르친 바 있습니다. 그것도 로마 황제의 등극 시기보터 로마의 몰락에 이르는 400년 동안의 역사가 당시의 강연을 통해서 전해졌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강연은 이제 더 이상 글로써 재구성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몸젠은 어째서 로마사 제 4권을 끝내 완성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8. 몸젠은 로마사 제 4권을 못 쓴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완성하지 않았다. 그의 학문적 열정과 부지런함을 고려할 때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즉 몸젠은 로마사 제 4권을 못 쓴 게 아니라, 안 쓴 것이라고, 왜 그는 로마사 제 4권의 집필을 그토록 꺼렸던 것이었을까요? 이는 나중에 독일의 극작가, 하이너 뮐러가 마음속에 품었던 질문이었습니다. 몸젠은 어느 편지에서 “왕궁의 잡다한 가십거리에 관해 왈가왈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하고 대꾸하였습니다.

 

또한 몸젠은 1885년 어느 저녁 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로마 황제의 역사 그리고 로마의 붕괴와 멸망에 관해 기술하려는 심리적 욕구가 솟아오르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몸젠은 집필에 더 이상 신명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프로이센은 그에게 연구비를 주며, 은근히 압박을 가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름 아니라 프로이센 국가를 마치 로마의 찬란한 제국으로 거론해주기를 명령하는 요구사항이었습니다. 몸젠은 당국이 요구하는 대로 “로마 황제 치하의 역사는 당시 유렵 사람들에게 가장 행복하고 찬란한 역사였다.”라고 기술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지식인으로서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되는 어용의 행위이며, 황제의 권력에 아첨하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9. 1992년에 세상에 나타난 몸젠의 로마사 제 4권: 몸젠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책을 완성시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일부 완성된 부분 원고는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로마사 제 4권을 더 이상 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992년 몸젠의 로마사 제 4권은 간행되었습니다. 그것은 알렉산더 데만트와 바르바라 데만트가 편찬한 테오도르 몸젠의 『로마 황제의 역사』였습니다. Theodor Mommsen: Römische Kaisergeschichte (hrsg. Alexander Demandt u. a. C. H. Beck 1992. 이 책은 로마사 제 4권으로 명명될 수 없지만, 적어도 역사학계에서 몸젠이 기술한 로마 황제의 역사의 내용으로는 합당한 것으로 인정 받게 됩니다.

 

10. 로마 황제의 역사: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1980년 독일의 문헌학자 알렉산더 데만트 (Alexander Demandt, 1937 -)는 우연한 기회에 고서점을 뒤지다가 놀라운 문헌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몸젠의 친구이자 제자였던 제바스티안 헨젤 그리고 그의 아들 파울 헨젤이 기술한, 로마사 제 4권에 관한 강의록,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몸젠은 거의 20년에 걸쳐 대학에서 로마사를 강의를 강의하였습니다.

 

그러나 몸젠의 강연을 들었던 몇몇 제자들은 자신의 강의록을 필사하였습니다. 제바스티안 헨젤은 로마사에 매우 관심을 기울였으며, 몸젠의 강의를 반복해서 수강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역시 로마사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심지어는 부자 (父子)가 개인적으로 강의해줄 것을 몸젠에게 별도로 부탁하기도 하였습니다. 강의록은 상당부분 생략된 사항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문헌학자 알렉산더 데만트는 빠진 부분을 보충하여 『로마사』 제 4권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