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8

(명저 소개) 완강함 속의 부드러움. 홍세화의『결: 거칢에 대하여』

2020년에 간행된 홍세화의 『결: 거칢에 대하여』 (한겨레 출판 2021)는 단순히 시대 비평을 넘어서, 인간 홍세화의 내적 성찰을 진솔하게 담고 있는 책입니다. 작가는 지금까지 프랑스와 한국에서 때로는 노동자로, 때로는 지식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국가보안법 그리고 반공법은 1970년대에 많은 사람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남민전”이라는 정치적 사건은 그를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보내게 했습니다. 귀국 후에 홍세화는 자신의 글과 칼럼을 공개했는데, 이는 많은 사람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언젠가 독일의 시인, 볼프 비어만은 서독으로 연주 여행을 떠났는데, 동독은 그의 입국을 거부했습니다. 망명 아닌 망명 작가가 된 그는 다음과 같이 일갈했습니다. “추방당한 자에 대한 차단..

1 알림 (명저) 2024.04.19

박설호: (1) 전쟁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어리석은 자가 전쟁을 치른다.”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1. 전쟁은 이권 싸움이다. 자고로 전쟁은 특정 국가의 국익을 위해서 전개되는 가장 사악한 정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문제는 일반 사람들이 국가의 이득을 위한 전쟁에 열광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전쟁의 총알받이가 되는 것을 모르고 국가가 애국이라는 미명으로 나라를 수호해야 한다는 전쟁 이데올로기에 기만당합니다. 참전을 거부하는 젊은이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비겁하고 나약한 겁쟁이라고 손가락질당합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남자라면 오로지 참전하여 나라를 수호해야 한다는 전쟁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로써 젊은 남자들은 총알받이가 되고, 여자들은 승리에 광분하여 미쳐 날뛰는 군인의 성 노리개로 전락하게 되지요. 핵무기 시대의 전쟁은 ..

2 나의 글 2023.11.18

서로박: 이성 국가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타자를 이해하려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취해야 한다.” (장 작 루소) 친애하는 J, 타자를 이해하려면, 타자에 가까이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타자와 무조건 동일시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판적 거리감이지요.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는 일이야 말로 학문 행위에 가장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판단하지 말고, 이를 견지하되 타자에 접근하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무엇을 깨닫고 자신의 태도를 어느 정도의 범위 내에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송두율: 불타는 얼음, 후마니타스 2017, 116쪽 이하.) 윤평중 교수의 책 『극단의 시대에 중심 잡기』 (생각의 나무 2008), 그리고 『국가의 철학. 한반도 현대사..

2 나의 글 2023.09.19

서로박: 이삭 바벨의 부조니의 기마대

친애하는 J,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는 당대에 대체로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그들이 현재에 주어진 극도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창조에 몰두하는 이유는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려는 거대한 의지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의지가 미래에 그들의 명성을 드높이게 해줍니다. 언젠가 천재 독일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 (Georg Büchner, 1813 - 1837)는 1834년 3월 자신의 신부 (新婦)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을의 시간을 상실한 생명들입니다. 그렇기에 겨울이 지나서야 비로소 씨를 여물게 할 수 있어요. (Wir sind wie die Herbstzeitlose, welche erst nach dem Winter Samen trägt.)” 뷔히너의 이 말은 역설적이..

31 동구러문헌 2021.10.06

가벼운 내가 떠나리라, 혹은 메타세쿼이아

승염이사 (僧厭離寺), 사염승거 (寺厭僧去) 중이 싫어 절을 떠날까, 아니면 절이 싫어 중을 떠날까? 이는 참으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1980년대 말에 김수행, 정운영 두분 교수님은 학교를 떠났습니다. 학교의 재정을 문제 삼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학교 당국은 "사표를 제출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일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두 분 교수님은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사표를 제출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사표를 수리한 다음에, 두 분 교수님을 강제로 퇴직시켰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실제로 존재했던 가장 치졸하고 가장 저열한 사기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수행 교수님은 다행히 S대에 자리를 잡았지만, 정운영 교수님은 오랜 기간 실직 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당시 학..

2 나의 글 2021.09.27

순수한 영혼의 눈 - 천국의 사물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시를 읽고 오르가슴을 느끼려면, 우선 시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하려고 하고, 이에 애착을 느낍니다. 또한 그 말은 자신의 그릇 내에서 모든 것을 인식하는 한계성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괴테 역시 어느 시에서 그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시를 읽기 전에 우리 자신의 그릇을 크고 순수하게 가꾸어야 합니다. 리영희 교수는 감옥의 똥통을 닦으며, 더럽다는 느낌을 씻으려 했습니다. 똥통이 더럽게 보이는 것은 우리의 눈이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깨끗하게 해야 하는 것은 똥통이 아니라, 선입견으로 가득 찬, 제한된 우리의 오관입니다. 플로티노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

22 외국시 2021.04.13

처음 투표하게 된 J에게

1. 친애하는 J, 이제 당신은 선거권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위해서 선거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주위에는 온갖 현수막이 나돌고, 아줌마들이 길가에 서서 90도 각도로 인사합니다. 이 무렵이면 행인들은 분에 넘치는 칙사 대접을 받습니다. 현수막에는 후보자의 이름만 뎅그렁 적혀 있습니다. 그가 어떠한 정책을 펴나가겠다는 말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다시 들러리 일회용품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해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2. 선거는 항상 평일에 치러집니다. 그렇기에 일하는 사람들은 일손을 놓고, 투표장에 가기가 어렵습니다. 일부 정치가들은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째서 우리는 수요일에 선거를 치러..

2 나의 글 2021.03.28

서로박: 나를 매료시킨 세 권의 책들

아래의 글은 약 20년 전에 집필된 것인데, 다시 읽어보니 무척 감회가 새롭습니다. ................................ 친애하는 K, 당신은 나에게 학창 시절에 감명 받았던 책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자칭 열정적인 문학도였던 나는 남들에 비해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으므로 무슨 책을 소개할까? 하고 오랫동안 망설여야 했습니다. 당시에 나는 교지, 대학신문 가리지 않고, 잡문, 평문을 발표하여 원고료를 타먹곤 하였습니다. 너무 자주 글을 발표하게 되자, 학우들에게 “독식 (独食)한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하여 “池高元” (거꾸로 쓰면 “원고지”라는 뜻^^)이라는 가명으로 글을 발표했으니까요. 고료가 나오면 나는 그 돈으로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잡지 혹은 단행본 몇 권을 구..

2 나의 글 2021.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