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박설호: (1) 전쟁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필자 (匹子) 2023. 11. 18. 05:51

“어리석은 자가 전쟁을 치른다.”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1. 전쟁은 이권 싸움이다. 자고로 전쟁은 특정 국가의 국익을 위해서 전개되는 가장 사악한 정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문제는 일반 사람들이 국가의 이득을 위한 전쟁에 열광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전쟁의 총알받이가 되는 것을 모르고 국가가 애국이라는 미명으로 나라를 수호해야 한다는 전쟁 이데올로기에 기만당합니다. 참전을 거부하는 젊은이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비겁하고 나약한 겁쟁이라고 손가락질당합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남자라면 오로지 참전하여 나라를 수호해야 한다는 전쟁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로써 젊은 남자들은 총알받이가 되고, 여자들은 승리에 광분하여 미쳐 날뛰는 군인의 성 노리개로 전락하게 되지요.

 

핵무기 시대의 전쟁은 상호 파멸이라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진정한 용기는 전선으로 돌진하는 행위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집총을 거부하는 자세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원론적으로 이해될 사항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적 조건에 의해서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항인 것은 분명합니다. 어쨌든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는 –브레히트의 말대로 “등 뒤의 명령자가 바로 적”이라는 사실을 간파해야 합니다.

 

2. 팔레스티나와 이스라엘 전쟁: 1947년 이스라엘이 건국하게 된 것은 2000년 동안의 유대인의 숙원이 해결되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2천 년 동안 피해자로 살아온 유대인들은 이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억압하는 가해자로 돌변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서안 지구를 공격하여 그곳에 거주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다시 몰아내곤 하였습니다. 이제 서안지구는 서서히 이스라엘의 영토로 변화되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자신의 자금과 정치 권력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며, 이스라엘의 뒷배가 되었습니다. 어제도 이스라엘 군인들이 가자지구에 폭탄을 퍼부어 2,300명의 무고한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피해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복수는 다시 보복을 낳고, 보복은 다시금 참전과 전쟁 욕구에 기름을 붓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그리고 주위의 이슬람을 신봉하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요?

 

두 사람이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거기에 제삼자가 개입하여 화해하라고 말하면, 제삼자는 몰매 당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는 것이지요. "당신이라면 가족이 몰살당했는데, 원수에게 복수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하고 항변합니다. 그만큼 갈등의 골은 70년이 훌쩍 넘게 깊숙이 패여 왔습니다. 복수와 보복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요? 참담한 마음을 달래면서 레싱의 「현인 나탄」을 다시 꺼내 읽습니다. 당신이라면 아내와 일곱 자식을 죽인 원수의 딸을 양녀로 맞아들일 수 있겠는지요?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La vie devant soi"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발견되지 않는 뜬금없는 동화에 불과할까요?

 

3. 우크라이나 전쟁과 독일: 일단 우크라이나 전쟁을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 독일의 올라프 숄 총리는 오랫동안 무기 공급을 주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연정으로 활동하는 녹색당이 시종일관 주장하듯이- 유럽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독일이 핵심 방어 무기를 전쟁 발발 이전의 시점에 우크라이나로 보냈더라면, 러시아의 침공에 악재로 작용했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폴란드, 네덜란드 등의 인접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보급품 및 재정 지원은 물론이고 소형 전투기, 드론, 총기 등을 공급하였습니다. 그들은 독일의 수동적이고 미온적인 태도에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2022년 3월 말까지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생필품과 보조금 그리고 보호용 헬멧 등만을 공급했을 뿐입니다. 인접 국가들은 독일이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관 “Nordstream 2”을 염두에 두고) 무기 공급을 망설인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였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독일 에너지 의존도는 전쟁 발발 이후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천연가스는 55%에서 35%로, 석탄은 50%에서 8%로, 석유는 35%에서 12%로 제각기 감소하였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독일과 프랑스는 전쟁에 직접 개입하여 푸틴에게 침공의 빌미를 제공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올라프 숄은 무기 공급을 망설였습니다.

 

4. 우크라이나 침공 그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제이차세계대전 발발 당시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실례로 푸틴은 잃어버린 옛 땅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침공하였는데, 실제로 러시아 영토와 크림반도 사이에는 육로가 차단되어 있습니다. 이는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 당시 독일 땅과 동프로이센 사이의 육로가 차단되어 있었던 정황과 매우 흡사합니다.

 

러시아는 어떻게 해서든 간에 돈바스 지역과 남동부 마리우폴 항구를 차지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전쟁이 발발한 지 3개월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우크라이나의 남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끔찍한 전투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도시가 모조리 폐허로 변해버렸습니다. 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동안 사망한 러시아의 장성만 하더라도 16명을 상회할 정도입니다. 이는 현대의 정보 전략의 힘 때문에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정확한 군사 전략 시설을 타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장기전은 과연 어떻게 끝나게 될까요?

 

5. 유라시아 정치적 판도의 변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핵무기의 사용이 유럽 사람들과 제반 나라들을 초토화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푸틴이 눈이 뒤집히게 되면, 그가 핵무기를 사용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자기 파멸로 치닫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핵무기는 결코 사용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러시아의 군사전문가들도 잘 숙지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군사전문가가 아니고 미래를 예측하는 예언자도 아니므로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잘 모릅니다.

 

아마도 우크라이나는 남동부 일부의 땅을 할양하는 대가로, (핀란드의 경우처럼) 러시아와 불가침 협정을 체결하거나, NATO에 가입할 공산이 큽니다. 다만 한 가지 사항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까지 세계 경찰로 자처하던 미국이 서서히 국제적으로 세력을 잃어가게 된 과정에서 나타난 사건이라는 사항 말입니다. “거대한 체스판”(브레진스키)의 판도는 중국의 경제적 능력으로 인해서 대폭 변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기회를 등에 업고 푸틴은 우크라이나 교묘하게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