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고 오르가슴을 느끼려면,
우선 시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하려고 하고, 이에 애착을 느낍니다.
또한 그 말은 자신의 그릇 내에서 모든 것을 인식하는 한계성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괴테 역시 어느 시에서 그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시를 읽기 전에 우리 자신의 그릇을 크고 순수하게 가꾸어야 합니다.
리영희 교수는 감옥의 똥통을 닦으며, 더럽다는 느낌을 씻으려 했습니다.
똥통이 더럽게 보이는 것은 우리의 눈이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깨끗하게 해야 하는 것은 똥통이 아니라, 선입견으로 가득 찬, 제한된 우리의 오관입니다.
플로티노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약 인간의 눈이 태양과 같지 않으면, 눈은 결코 태양을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혼이 스스로 아름답지 않으면, 영혼은 결코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Ου γαρ πωποτε ειδεν οφθαλμος ηλιον ηλιοειδης μη γεγενημενος,
ουδε το καλον αν ιδοι ψυχη μη καλη γενομενη."
어쩌면 아름다움을 속속들이 바라보는 영혼은 시인보다도 더 깊이 그리고 더 넓게 시를 이해할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개 눈에 똥으로 비치지만,
(개를 모독하여 죄송.)^^
순수한 영혼의 눈에는 천국의 사물로 영롱하게 비칩니다.
신플라톤주의 사상을 활성화시킨 플로티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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