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13. 로크바이롤, 죽음을 연습하다.: 로크바이롤은 어둠 속에서 린다를 만납니다. 그렇지만 그는 린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알바노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신이 먼저 권총으로 자살할 테니, 뒤이어 자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순간 로크바이롤은 실제 현실에서 자신의 극작품을 연기한 셈입니다. 린다는 야맹증 환자였지만, 귀마지 어두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미는 어둠 속의 남자가 알바노가 아니라는 사실을 예리하게 간파합니다.
로크바이롤은 권총으로 자살하는 흉내를 내려고 방아쇠를 당깁니다. 이때 그는 즉사하고 맙니다. 안타깝게도 육혈포에 총알이 하나 박혀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린다는 이 순간 경악에 사로잡힙니다. 친애하는 P, 설령 아무런 잘못이 없더라도 당신의 존재 때문에 한 인간이 목숨을 잃게 된 경우를 상정해 보세요. 이 경우 당신은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겠습니까? 린다가 그러했습니다. 자신으로 인해서 애꿎은 한 인간의 생명이 사라진 데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미는 영원히 알바노의 곁을 떠납니다.
14. 어째서 돈과 권력은 인간을 사악하게 만드는가?: 루이기는 왕위 계승자가 되었으나, 여전히 유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심지어 하르하르의 나이 많은 공주가 그를 모욕해도, 루이기는 이를 그냥 받아들일 뿐입니다. 결국 루이기는 병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는 성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권력을 탐하는 어느 신하가 그를 꼬드겨 홍등가에서 여러 명의 여성들과 살을 섞게 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이 무렵 프랑스에서는 작은 무장봉기가 발발합니다. 알바노는 이에 동참하려고 프랑스로 떠나려고 합니다. 그는 가급적이면 자신의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차례로 목숨을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그는 무척 서글퍼 합니다.
이때 도서관 사서이자 주인공의 은사인 쇼페는 일부러 미친 척하고 병원에 입원합니다. 말하자면 쇼페는 알바노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차렸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아픈 척하고 병원에 입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농성진 (仮弄成真)이라고, 장난삼아 벌인 일이 정말로 끔찍한 질병으로 비화될 줄 그는 몰았습니다. 쇼페는 병원에서 정말로 정신 착란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쇼페는 마지막으로 알바노를 만난 뒤 쓸쓸히 병원에서 사망합니다. 알바노는 죽어가는 쇼페로부터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전해 듣습니다. 결국 알바노는 프랑스 여행을 포기합니다. 나중에 주인공은 소공국 호엔플리스의 권력을 계승합니다. 왕좌에 오른 알바노는 이도이네라는 조신한 처녀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바이로이트에 있는 장 파울의 동상
15. 사악한 거인의 술수와 음모를 비판하다. 장 파울은 편지에서 자신의 작품의 제목이 “반-거인”이어야 한다고 토로했습니다. 천국을 파괴하려고 획책하는 자는 반드시 지옥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가 소설을 쓰게 된 것은 두 가지 사항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작품은 한편으로는 세속적 교육과 가르침이 얼마나 오류에 빠져 있는지를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아가 자신의 고유한 내면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동떨어져 있는지 드러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장 파울의 '거인'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작품은 한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하나의 각본대로 움직일 수 있으며, 이로 인해서 인간성이 기계적 반대 세력에 의해 파괴될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둘째로 작품은 귀족 내지 제후들의 잘못된 “거인주의”를 예리하게 질타하고 있습니다. 알바노는 평생 체자라 백작의 사악한 연출에 의해 이끌려 이리저리 끌려다니지만, 결국 타인의 술수, 수동적 행위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되찾게 됩니다.
16. 다섯 명의 거인들 그리고 알바노 (1): 셋째로 작품은 알바노의 고매한 인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알바노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의 삶을 살아가면서, 따뜻한 감정과 현실 감각을 겸비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에 비하면 다른 작중 인물들은 자신의 편협한 판단으로 인하여 삶에서의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이를테면 작중인물들은 여러 사람들을 연상시킵니다. 첫째로 쇼페는 철학적 이기주의를 맹신하며 분열의 성격을 지닌 이상주의 철학자 피히테를 연상시킵니다. 그는 자아의 이상을 추구하다가, 동시대 사람들과의 소통을 등한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자기 자신의 이상에 골몰하고 말았습니다. 둘째로 로크바이롤은 당시 바이마르에 머물던 괴테와 같은 인물을 떠올립니다. 그는 사회적 혁명을 간과하고 오로지 예술 지상주의를 추구했던 유미주의 작가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주어진 세상의 걔혁에 있어서 괴테는 언제나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셋째로 카스파르 체자라 백작은 냉철하고 정치적 야망을 지닌 인간형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부분적으로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를 매우 닮았습니다. 그는 냉혹하고 계산적 술수만을 품고 있기 때문에, 카스파르 백작에게는 어떠한 인간적 따뜻함 내지 중후함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17. 다섯 명의 거인들 그리고 알바노 (2) 넷째로 리안네는 열광적 신앙에 자신을 던지는 인간의 전형입니다. 그미는 이를테면 강렬한 자기 파괴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슈바벤 지방의 경건주의 신앙인들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를테면 자살로 삶을 마감한 낭만주의 여성 작가, 카롤리네 귄더로데를 우리는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다섯째로 이에 비하면 린다는 정열적 여성으로서 자유롭게 살며, 많은 문인들을 도와주었던, 사를로테 폰 칼프 부인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칼프 부인은 실러 그리고 횔덜린 등에게 가정교사 직을 내어주면서 작가와 철학자들에게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후원했습니다.
린다는 모든 죄악으로부터 벗어나 있지만, 그미의 진보적 입장은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미는 세계의 변화에 대해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입니다. 상기한 다섯 유형의 사람들은 장 파울의 견해에 의하면 모두 비판의 대상이 되는 시대적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건대 『거인』은 장 파울이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가장 탁월한 시대 비판의 서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18. 이중인격: 아, 한 가지 사항만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문학 치료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장 파울의 작품 속에는 이중인격의 모티프가 발견됩니다. 가령 알바노와 로크바이롤을 생각해 보세요. 두 사람은 사로 다른 유형이지만, 완전무결한 무엇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몹시 닮았습니다. 주위 여건이 자유롭지 못할 때 인간은 누구든 간에 자신의 몸에 묶여 있는 보이지 않는 질곡을 끊어버리고 싶어 합니다. 알바노는 선을 추구하는 고결한 인간이지만, 친구의 모습에서 자신의 은폐 욕구 내지는 파괴 욕구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완전히 선한 사람도, 완전히 악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바노를 통해서 인지할 수 있습니다. 주위의 압박감은 심리적으로 유약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의 탈출구를 마련하도록 부추깁니다. 문신을 즐기든가 가면을 쓰는 기이한 돌출 행동 역시 외부에 대한 저항과 은폐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가령 작가 E. T. A. 호프만도 그러했으며, 지킬 박사도 그러했습니다.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에 나오는 창녀, 셴테도 어쩔 수 없이 파렴치한 수이타로 변장해야 했습니다. 이중인격의 현상은 심리적으로 추적되어야 하겠지만, 강력하고 살벌한 외부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피적 행동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끝)
참고 문헌:
- 황승환: 자아의 분열인가, 통일성에 대한 욕망인가? : 패러다임 변환기의 문화 현상으로서 도플갱어 연구.1, in: 독일언어문학, 63권, 2014, 305 -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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