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bloch 대화 26

블로흐: 이 시대의 유산 (2)

유산에 관한 이러한 문제는 나의 책 『이 시대의 유산』에서 하나의 중요한 관건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책에서 나는 유산의 문제를 네 개의 작은 시기로 구분한 바 있습니다. 우선 제시되는 것은 분산의 경향입니다. 직장 고용인들의 산만한 의식이라고 할까요, 세상은 우스꽝스럽고 긴장감 넘치며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지요. 이러한 문화는 특히 영화에서 주로 나타납니다. 어떤 붉은 감정의 덩어리가 출몰합니다. 혁명의 광채 내지 이른 광채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아침 여명, 혹은 저녁의 황혼이 도래했는지 정확히 모릅니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는 1920년대 베를린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기가 바로 분산의 시기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물음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문화적으..

30 bloch 대화 2021.09.13

블로흐: 이 시대의 유산 (1)

나: 당신의 책 『이 시대의 유산』은 1920년대 독일 사회를 심도 넘치게 분석하고 있는데, 1935년 당신에 스위스에 망명할 당시에 뒤늦게 간행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당신의 문헌을 어떻게 수용했는지요? 너: 그야말로 다양하게 수용되었습니다. 호평과 악평이 공존했다고 할까요? 이러한 모순적인 반응은 가장 중요한 명제인 유산의 문제 때문에 나타난 현상인 것 같습니다. 유산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라든가 경제 숙명론과 같은 특성을 유추하게 합니다. 그렇기에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개념 자체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내지요. 나는 유산을 이후 세대에게 부여하는 문화적 상속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적 상속으로서의 유산의 문제는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 고찰할 때..

30 bloch 대화 2021.09.13

블로흐와 아도르노의 유토피아 논쟁 (5)

크뤼거: 블로흐씨, 다시 한 번 조금 전의 질문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유토피아의 요소는 오늘날 동구에 횡행하는 사회주의로 인해서 급진적으로 사라지고 말았다.”는 아도르노의 견해를 용인하시는지요? 블로흐: 그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발언이 첨부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서구에서도 사라졌으며, 이와 유사한 경향은 존속되고 있어요. 시대적 일원성은 비록 거대한 대립이 존재하지만 동구와 서구 모든 지역에서 새로 정립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도르노: 동의합니다. 블로흐: 서구와 동구는 같은 시대정신 속에 처해 있어요. 한 가지 점에서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보아야지요. 즉 어떠한 유토피아적인 것도 용납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유토피아의 고유한 특성에 무언가를 덧칠하여, 그것을 파괴하는..

30 bloch 대화 2021.09.09

블로흐와 아도르노의 유토피아 논쟁 (4)

(계속 이어집니다.) 블로흐: 바로 이러한 까닭에 유토피아의 사고는 두 가지 의향으로 발전되었습니다. 그 하나는 유토피아 사회상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법사상입니다. 전자는 더 이상 힘들게, 무거운 짐을 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적 상태를 재구성하고 있다면, 후자는 자연법을 주창하는 자들의 의연한 기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사항을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에서 자세히 천착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 번째 사항이 문제로 제기되는군요.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죽음을 가리킵니다. 죽음은 흔히 신앙인들이 즐겨 다루는 “사랑스러운 아이”로 이해되곤 합니다. 그렇지만 죽음을 떨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기적이겠지요. 흔히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강조..

30 bloch 대화 2021.09.08

블로흐와 아도르노의 유토피아 논쟁 (3)

아도르노: 헤겔은 가능성의 개념을 나쁘게 언급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블로흐: 가능성의 개념은 헤겔에 의해서도 나쁘게 다루어졌지요. 헤겔은 가능성에 대한 종래의 견해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하면서 가능성을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개념으로 취급하고 말았지요. 실재하지 않는 것은 어떠한 가능한 무엇도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가능한 것은 헤겔의 견해에 의하면 현실적인 것으로 직결되었으니까요, 말하자면 그것이 현실적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다고 헤겔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가능성의 카테고리는 헤겔의 경우 하나의 주관적 성찰의 카테고리였습니다. 아도르노: 가능성이란 개념이 그냥 지붕 꼭대기 위로 올라간 셈이로군요. 블로흐: 그런 셈이지요 가능성의 개념은 처마위로 올라갔지만, 지붕 밖으로 돌출해 나오지는 못했..

30 bloch 대화 2021.09.07

블로흐와 아도르노의 유토피아 논쟁 (2)

아도르노: 나 역시 당신의 주장에 부분적으로만 수긍합니다. 당신이 암시한 바 있는 사항을 동원하여 몇 가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단 여기서 분명히 규정할 게 있어요. 앞에서 과학 기술에 관한 말씀은 유토피아에 관한 나의 본래의 입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과학 기술과 관련된 냉정함 때문에 오늘날 유토피아의 의식이 축소되고 폄하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다음과 같은 물음입니다. 즉 과학 기술이 이룩해낸 놀라운 발명이라든가 개별적인 혁신이 전체성, 사회 전체의 문제점을 고려할 때 어떠한 방식으로 하나의 대립각을 형성시키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세요. 유토피아라는 무엇 내지 유토피아라고 생각될 수 있는..

30 bloch 대화 2021.08.31

블로흐와 아도르노의 유토피아 논쟁 (1)

인터뷰는 1964년에 이루어졌다. 참석자는 문화 저널리스트이자 독일 작가인 호르스트 크뤼거 (Horst Krüger, 1919 - 1999), 테오도르 아도르노 (Theodor Adorno, 1903 - 1969) 그리고 에른스트 블로흐 (Ernst Bloch, 1885 - 1977)이다. 본 원고는 1964년 5월 6일 바덴바덴 지역에서 남서부 라디오 방송으로 알려진 바 있다. 출전: Rainer Traub u.a. (hrsg.): Gespräche mit Ernst Bloch, Edition Suhrkamp: Frankfurt a. M. 1980. S. 58 - 77. .................................................... 크뤼거: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오늘날 그..

30 bloch 대화 2021.08.29

블로흐: 나의 청년 시절의 친구, 루카치

여기서 "나"는 장 미셀 팔미어를 가리키고. "너"는 에른스트 블로흐를 가리킨다. 이하의 인터뷰는 1976년에 행해졌는데, 다음의 문헌에 실려 있다. Arno Münster (hrsg.): Tagträume vom aufrechten Gang, Suhrkamp: Frankfurt a. M. 1977. S. 102 - 106. ........................... 나: 교수님은 어떤 외적 조건에서 루카치를 알게 되었으며, 어떠한 계기로 우정을 쌓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너: 언젠가 짐멜은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누군가가 세미나에 참석하고 싶은 헝가리 출신의 철학자를 소개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바로 죄르지 루카치라고 했어요, 당시에 나는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짐멜도 그를 잘 몰랐지요..

30 bloch 대화 2021.08.04

블로흐: 기독교 속에는 반란이 담겨 있다. (4)

질문: 마지막 질문을 허용해 주세요, 블로흐 교수님. 최근에 뉴욕의 「헤르더 그리고 헤르더」 출판사는 영어판 블로흐 선집을 간행했습니다. 이 서문에서 가톨릭 신학자 하비 콕스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블로흐는 최근 신학의 관심사가 부상한 까닭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할까? 블로흐가 직접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하게 되면, 그는 무척 즐거워할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을 당신에게 청해도 될까요? 블로흐: 이러한 질문은 -콕스의 추측에도 불구하고-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완전히 일치되지 않아요. 이에 대해서는 젊은 신학자들이 우리 세대보다도 더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많은 자료들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밖에 이 문제를 뒤집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신학이 새로운 사고..

30 bloch 대화 2021.07.25

블로흐: 기독교 속에는 반란이 담겨 있다. (3)

(계속 이어집니다.) 상황은 그렇게 비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소련이 그렇게 고립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중국이 약간의 영향을 끼칠지 모릅니다. 또한 길은 옛날처럼 하나가 아닙니다. 마오쩌둥이 있고, 사회주의의 다른 방향도 있을 수 있지요. 어쩌면 중국의 사회주의는 오로지 중국적으로 머물고, 다른 나라에 적용될 수 없을지도 몰라요. (이는 블로흐의 착각이다. 중국의 사회주의는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의 영역을 벗어났다. 블로흐의 이러한 오류는 그가 1977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인지 모른다. - 역주) 그렇지만 다른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서구에서 학생들만 활약했듯이, 소련에서처럼 지식인들만이 활약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언젠가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현실이 사고를 추동하지 못..

30 bloch 대화 2021.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