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bloch 대화

블로흐: 기독교 속에는 반란이 담겨 있다. (4)

필자 (匹子) 2021. 7. 25. 10:02

질문: 마지막 질문을 허용해 주세요, 블로흐 교수님. 최근에 뉴욕의 「헤르더 그리고 헤르더」 출판사는 영어판 블로흐 선집을 간행했습니다. 이 서문에서 가톨릭 신학자 하비 콕스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블로흐는 최근 신학의 관심사가 부상한 까닭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할까? 블로흐가 직접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하게 되면, 그는 무척 즐거워할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을 당신에게 청해도 될까요?

 

블로흐: 이러한 질문은 -콕스의 추측에도 불구하고-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완전히 일치되지 않아요. 이에 대해서는 젊은 신학자들이 우리 세대보다도 더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많은 자료들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밖에 이 문제를 뒤집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신학이 새로운 사고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을 경우, 우리는 이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고 곰곰이 생각해야 하겠지요. 이는 아직 철학의 영역에서 제공하지 못한 유사한 연구 대상들일 것입니다. 비록 철학의 오래된 분야인 종교 철학도 있지만 말입니다. 헤겔은 두 권의 『종교의 철학』을 집필했지요. 셸링도 무려 네 권의 분량인 『신화 및 계시의 철학』을 집필한 바 있으며, 칸트 역시 “유일한 이성의 한계성 내의 종교”에 대한 비판을 기술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내용은 내가 굳이 중세 스콜라 학에 관해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더욱이 신플라톤학파 및 철학사에 속하는 신의 인식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지금까지 종교적 테마가 존재했어요. 계몽주의는 테마로서의 종교를 언제나 적대적으로 대했습니다. 종교 비판이 없었더라면 계몽주의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 당시 사람들은 제후들과 속된 수사들의 사기술을 인식하고 있었지요. 물론 계몽주의는 속된 수사의 거짓말은 제후의 사기술보다 더 큰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철학의 테마로서의 종교는 철학 자체만큼 오래된 것입니다. 심지어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도 이에 관해 논했으니까요.

 

1755년 리스본에서 엄청난 지진의 피해를 입은 채 거리에 나온 단순한 사람들은 신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러한 물음은 18세기에 제기되었고, 나아가서는 이를 계기로 계몽주의 학파가 출현한 것을 부인할 수 없지요. 그러나 오늘의 상황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이와 같은 “신의 엄벌”은 인간에게 더 이상 충분한 대답을 가져다주지 않아요. 지진의 피해자 가운데에는 이렇게 징벌을 당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던, 말하자면 무고한 양민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로써 나타난 것이 밝혀지지 않는 결론, 신의 섭리 그리고 충직한 신 자체를 의심하는 경향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른바 무신론이지요. 이러한 의심은 오늘날 부권적 자아, 군주 체제의 붕괴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책 『기독교 속의 무신론』에서 밝히고 있듯이- 세계 내지는 우주 자체가 어떤 최상의 군주가 없는 공화국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출현한 것은 인간이 마음속에 믿어야 할 대상 및 하나의 유형적인 대답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에 반해서 쇼펜하우어가 “형이상학적인 욕망”이라고 말한 것은 현대인들의 마음속에 온존해 있지요.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생각해 보세요. 17, 18세기 오버 바이에른 농부들은 흔히 그들의 심적 상태를 다음과 같은 농담으로 표현했습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도저히 몰라. 그럼에도 내가 즐거워하는 게 놀랍기 짝이 없다.” 비록 농부들은 인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신앙적 답변이 전혀 신빙성이 없음을 알고 이를 잊으려고 하지만, 그들의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지요. 이렇듯 지옥을 의심하면서도, 소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독단론임을 잘 알면서도, 경건한 가톨릭신자들은 침묵을 지키기를 좋아합니다.

 

카를 라너 K. Lahner는 나와 함께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청중으로 참석한 수사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천사들이 어떻게 생겼는가? 육체와 날개를 지니고 있는가? 그들이 날개를 달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에 대한 질문에 라너는 몹시 당황함을 느꼈지요. 이때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라너씨, 다른 영역을 연구하지만, 수정주의적 견해를 지닌 동료의 입장으로 참견하겠습니다. 당신은 악마들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쉽게 답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사들보다도 악마들에 관해서 더욱 잘 알아차리기 때문입니다.” 아우슈비츠를 생각해 보세요. 그곳이 소위 악마가 활동한 장소는 아니지만, 우리는 소위 악마와 같은 공격 성향에 집착해 있던 군인들에 관해 말할 수 있으니까요. 군인들이 어린 아이들을 벽에다 집어 던졌을 때, 아이들의 두개골이 깨어져 뇌가 튀어 나오곤 했습니다. 그래놓고도 군인들은 부인에게 편지를 써서 아이들이 잘 있는지 다정하게 안부를 묻곤 했지요.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당한 아이들과 거의 동년배나 마찬가지인 자식들의 안부를 물었답니다.

 

그러나 신의 섭리가 현대에 와서 신빙성을 상실했다고 하지만, 삶과 신앙에 관한 인간의 질문이 모조리 사장된 것은 아닙니다. 콘스탄티누스에 의해서 기독교가 국가 종교가 된 이후로, 기독교는 좋은 정치 수단으로 변했습니다. 국민들을 노예로서 그대로 묶어두는 역할을 기독교가 담당했던 것입니다. 또한 로마 교황은 로마 황제의 계승자가 되지 않았나요? 그러나 이 모든 것으로써 기독교가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서, 그러니까 신약 성서에는 지옥에 관해서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이 기록되어 있지요. 구약 성서에는 지옥은 전혀 출현하지 않고, 다만 하데스와 같은 죽은 망령의 나라로 묘사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밖에 다른 설교, 다른 기독교 정신이 있습니다. 농민 전쟁의 이데올로기를 생각해 보세요. 토마스 뮌처는 혁명의 신학자였습니다. 아주 격정적으로 다른 의미의 위트를 사용해서 말하자면, “자본”이라는 단어가 러시아 혁명에 커다란 의미를 지녔다면, 16세기 당시에는 “성서”가 독일 농민 혁명,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의 농민 혁명에 커다란 의미를 지녔지요.

 

어째서 그게 가능했을까요? 이것저것 사소한 것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 없었지요. 그리스 신화로도 불가능했습니다. 신화에는 폭동을 일으킨 프로메테우스가 있지만, 이 반신은 나중에 형벌을 당하지 않나요? 이에 반하면 성서는 수많은 혁명적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느니, 차라리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리라.”라는 구절을 보세요. 그외 다른 혁명적인 글들이 성서에 담겨 있지요. 그러나 문제는 예수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사실입니다. “나와 하느님 아버지는 하나이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아버지라는 인물이 사라져 있습니다. “나를 보는 자는 하느님 아버지를 볼 것이다.” 얼마나 기막힌 발언입니까? 이는 바로 무신론이나 다름이 없어요. “무신론자 Atheist”라는 단어는 네로의 왕궁에서 처음으로 쓰인 것입니다. “무신론자들 hoi atheoi”, 바로 이들이 첫 번째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주피터를 믿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므로 여기서 무신론적 요소가 파악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속에는 바로 이러한 무신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기독교속에는 반란이 담겨 있지요. “나는 어떤 불을 지피려고 왔노라. 불은 이미 타고 있도다.” 이것은 콘스탄티누스의 선물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에는 교회에 의해서 본연의 의미가 감추어져 있는 많은 글들이 씌어져 있습니다. 나는 "기독교 속의 무신론"에서 이단자 운동의 거대한 전통을 밝히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수많은 이단자들을 창출해냈기 때문입니다. 이는 종교가 창출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지요. 그리스 종교는 어떠한 이단자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이집트 종교 역시 마찬가지예요. 물론 기원전 14세기의 아메노피스 4세인 에흐나톤 Echnaton은 예외입니다. 이에 비하면 기독교의 역사는 상류층이든 하류층이든 간에 이단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지요. 화형대의 불꽃은 헛되이 타오른 게 아닙니다. 오늘날 콕스라든가 기타 여러 신학자들에 의해서 기독교의 이단적 목소리는 다시금 신선하게 나타났어요.

 

삶의 의미에 관한 물음, 죽음이 제시하는 단두대의 칼날 앞에서의 구원에 관한 해결되지 않은 거대한 질문은 아직 남아 있어요. 모든 목적을 찢어버리는 개인의 죽음에 관한 문제는 아직 온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나는 조금 전에 바이에른 농부의 말을 인용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즐거워하는 게 놀랍기 짝이 없다” 어떤 다른 단두대의 칼날은, 다시 말해 개인적인 게 아니라, 우리가 미래에 대해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보편적인 냉혹한 죽음 속에, 그러니까 엔트로피 (열역학 함수)속에 담겨 있어요. 모든 세상이 한꺼번에 용해되어 버릴지 모르는 불안, 유성들이 태양과 부딪쳐, 모든 게 새롭게 춤추게 될지 모르는 불안을 생각해 보십시오. 태고 시대의 희미한 그림자 속에서 세계는 마치 회전목마처럼 빙빙 돌면서 발전하며, 수십억 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경우 말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묵시록, 즉 요한 계시록에 대한 관심사를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되며, 이로써 신학적 질문이 더욱 활발하게 제기되지요.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 제기되는 질문은 ‘무엇 때문에?’와 ‘어떠한 종국에로 치달을 것인가?’ 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실러도 대학 문에 처음 들어서면서 다음과 같이 강연한 바 있지요. “사람들은 어째서 우주의 역사를 연구하고 어떤 결말을 얻어내는가?” 하는 테마로 말입니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우리가 살고 있으며, 어떤 결말로 향해서 살아갑니까? 지금까지 이 세상에는 이에 관한, 수많은 (대부분 종교적인) 대답이 나왔지요. 이러한 답변의 내용은 낡아버렸거나, 오늘날 더 이상 고수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질문은 계속 남아 있으며, 질문의 유형은 그대로 온존하고 있어요.

 

이러한 질문으로 신학자들이 골몰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국가의 밥을 그냥 얻어먹고 사는 교회 사람들이 아니라, “종교인들 Homines religiosi”로서 이러한 철학적 문제를 실감하고 있는 자라면, 반드시 하나의 원칙, 성서에도 나오는 희망에 관해 몰두해야 합니다. 마지막 질문이라고 하기에 나는 칸트의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계몽이란 인간의, 자기 잘못으로서 생긴 미성년의 상태로부터 빠져나오는 출구이다.” 그러므로 모든 미성년의 상태를 벗어나는 게 문제이지요. 「어느 환시자의 꿈들 Träume eines Geistersehers」에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다음의 사항을 믿지 않는다. 즉 무언가를 시험하고 싶은 경향이 이러저러한 이유를 통해 나의 정서로부터 어떤 조종 능력을 빼앗아 버린다는 사항을 말이다. 이성의 천칭은 결코 양쪽에 대해 공평하지가 않다. 오히려 ‘미래의 희망’이라고 적힌 한쪽이 자동적으로 유리하기 마련이다. 미래의 희망이 속하는 접시는 -비록 그게 가볍다고 하더라도- 보다 큰 무게가 실려 있을 것같이 느껴지는 다른 쪽의 접시를 위로 올려 보내도록 작용한다. 이것이야 말로 (이성의) 유일한 오류이다. 나는 이를 결코 수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실제로 한번이라도 수정하려고 의도하지 않는다.

 

따라서 형이상학적인 욕망은 어떤 긍정적인 대답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머물고 있습니다. 미래의 희망은 지금까지 -지배 계급을 찬양하는 수많은 경향을 제외한다면- 기독교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 및 성서에서 가장 심하게 박해당한 사람들이 가꾸어 온 고유의 영역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몇몇 신학자들이 희망의 철학을 피부로 느끼며, 이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다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거짓된 동료를 맞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