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bloch 대화

블로흐: 이 시대의 유산 (1)

필자 (匹子) 2021. 9. 13. 09:20

나: 당신의 책 『이 시대의 유산』은 1920년대 독일 사회를 심도 넘치게 분석하고 있는데, 1935년 당신에 스위스에 망명할 당시에 뒤늦게 간행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당신의 문헌을 어떻게 수용했는지요?

 

너: 그야말로 다양하게 수용되었습니다. 호평과 악평이 공존했다고 할까요? 이러한 모순적인 반응은 가장 중요한 명제인 유산의 문제 때문에 나타난 현상인 것 같습니다. 유산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라든가 경제 숙명론과 같은 특성을 유추하게 합니다. 그렇기에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개념 자체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내지요. 나는 유산을 이후 세대에게 부여하는 문화적 상속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적 상속으로서의 유산의 문제는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 고찰할 때 맨 처음에는 이른바 문화 유산의 문제로 표현되었습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루카치에 의해 제기되었는데, 오로지 미래 사회에 계승되어야 하는 두 개의 문화적 문제만을 관련시켰을 뿐입니다. 그 하나는 혁명 과업이 시작되는 시기를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혁명이 이룩된 이후의 문화적 정점의 시기와 관련됩니다. 첫 번째는 출발의 시기와 관련됩니다. 혁명 운동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유산을 강조하는 과업이지요. 이는 스파르타쿠스에서 시작되어, 1871년 파리 코뮌 시기에도 나타나고,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출현하였습니다. 이는 명약관화하기 때문에 굳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을 거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문화적 정점의 시기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루카치는 부분적으로 상당히 하자를 지닌 내용을 집중적으로 구명하고 있습니다.) 문화적 정점의 시기에는 커다란 계급적 긴장감이 자리하지 않으며, 오히려 생산력 그리고 생산관계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는 시기입니다. 이를테면 기원전 5세기 아테네라든가, 15세기 유럽 그리고 중세의 중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는 분명히 어떤 문화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18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출현한 의고전주의는 과거 정점기의 유산을 가장 잘 수용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은 결코 당연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유산을 정착시키려는 사람들은 이를테면 표현주의와 같은 신선한 경향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언젠가 빈켈만은 고대의 문화를 “고결한 단순성과 조용한 위대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렇지만 고대의 문화라고 해서 그런 식으로 전체적으로 못 박을 수는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건축가, 피디아스 (BC. 480 - 430)가 살았던 고전 문화의 정점의 시기라든가, 마르크스가 살았던 19세기 중엽에는 고결한 단순성과 조용한 위대함은 더 이상 지속적으로 사회적 삶의 문제를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원래 문화적 특성이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변화를 거듭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약간 변화된 이질적인 특성이라 하더라도 이후에 부분적으로 계승되어야 합니다.

 

모든 문화는 반드시 성장의 시기, 정점의 시기 그리고 몰락의 시기를 거칩니다. 그런데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몰락의 시기, 다시 말해 특정 생산 양식의 마지막 시기에는 유산으로 계승될 사항이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후기의 시대에는 대부분의 경우 데카당스의 특성이 돌출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국가 사회주의자는 이를 “부패”라고 명명하고, 소련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를 “퇴폐”라고 일컫습니다. 그렇다면 몰락은 대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마지막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기에 무엇을 하나의 문화적 유산으로 선택할 수 있을까요? 과거에 한 번도 출현하지 않은 유산이 우리의 시기에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무엇은 과거 시대에는 어떤 신화적인 면사포에 가려져 있었고, 이후의 시대에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청결한 형체 속에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었으므로, 모든 게 그야말로 선하고 아름다운 무엇으로 비치지 않았을까요? 특정 문화는 나중에 반드시 비판적인 시기를 거친다고 합니다. 지금의 시기는 소련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전문 용어 그리고 루카치의 견해에 의하면 표현주의가 자본주의의 마지막 퇴폐적 특성을 강하게 보여준다고 합니다. 루카치 그리고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른바 표현주의라는 부패 그리고 파멸 속에서 어떤 바람직한 유산으로 도출해낼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의 후기 시대에는 아무 것도 유산으로 계승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어떤 아름다운 겉모습에서 어떤 덧칠이 벗겨져 나오는 것을 간파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혁명의 시기는 물론이고, 이른바 사회의 정점으로 출현하는 찬란한 시기에도 정확히 투시할 수 없었던 무엇을 고찰하고 이를 예의 주시할 수 있었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미를 추구하는 작업 과정에 있어서 혹은 거대한 미적인 형체 내지 거대한 가상 속에서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러한 덧칠된 부분은 돌출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은, 기이한 사물들이 이 시기에 등장하지요. 어쩌면 이것들은 가시적일 수 없을 정도로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몽타주를 생각해 보세요. 이것은 아주 동떨어진 예술적 대상과 주제를 상호 근접시켜서, 서로 마주치게 하는 예술적 기법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아주 근접한 관련성을 의도적으로 아주 멀리 떼내어 고립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브레히트가 언급한 바대로 어떤 생소화 효과가 출현하게 되지요. 이는 단순히 교육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파푸아 뉴기니의 예술 작품에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흑인들의 조각품은 일순간 우리에게 피디아스의 예술보다도 훨씬 근친하게 다가올 수도 있어요. 이것이야 말로 예술의 거대한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조각 작품 속에 반영된 기이하고 낯선 현실적 형체를 접하면서, 일순간 섬뜩해진 느낌을 받습니다. 머리통은 자그마한데, 몸통이 거대한 드러나는 흑인 조각 작품을 생각해 보세요. 사실 지오르지오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그림이라든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의 작품들 역시 따지고 보면 상당부분 몽타주 기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키리코의 작품 가운데에는 방에 관한 그림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부부 한 쌍이 벽난로 가까이 있는데, 어쩌면 어디론가 도주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지 모릅니다. 왼쪽에도 벽이 있고, 오른쪽에도 벽이 있습니다. 과연 그들에게 벽이 존재할까요? 왼쪽 벽 위에는 야수와 뱀들이 우글거리는 원시림이 그려져 잇습니다. 동물들은 당장이라도 방안으로 급습할 것 같습니다. 오른쪽에는 대양의 거대한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지요. 앞에는 벽난로 속의 작은 화염, 뱀으로 가득 찬 원시림, 상어가 득실대는 대양, 벽난로 하나, 20세기의 평범한 의자 등이 보입니다. 여기에 현재 모던하게 차려 입었지만, 부조화의 흔적을 드러내는 부부의 모습이 마구 뒤섞여 있지요. 이것이 바로 놀라운 몽타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간적으로 현재와 과거가 뒤엉켜 있으며,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지역을 완전히 비동시적으로 조합해 놓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키리코의 그림은 우리 삶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린다는 점에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말하자면 그의 그림은 어떤 현재성을 지니고 있지요. 이것이야 말로 자본주의 후기 시대의 하나의 작은 표시라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유형의 예술은 정점의 시대라든가 어느 특정한 만개하는 시기에서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아요. 물론 여기에는 어떤 유일하고도 기이한 예외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매너리즘입니다. 매너리즘은 일찍이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의 시기에서 현저하게 나타난 바 있습니다. 이 시기에 해당되는 작가로서 우리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예술에서도 부분적으로 매너리즘의 특징이 은근히 발견됩니다. 그것은 바로 부조화의 흔적에 해당하는 몽타주 기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