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11. 카테고리에 관한 보편적인 발언: 이에 관해서 블로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즉 ”보편적인 무엇은 스스로 행동하여 스스로 관철함으로써 각인되는 것이며, 제각기 주어진 무엇 속에서 자체적으로 다양한 것을 결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수한 무엇의 발언은 보편성의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결국 카테고리를 개방시킨다. 카테고리들은 처음에는 사고의 내부에서 각자 가장 보편적인 관계 개념으로서 자신을 표현한다. 그것들은 그러한 식으로 제각기 가장 보편적인 현존재의 양식이라든가, 스스로 움직이는 무엇으로서의 가장 보편적인 현존재의 형태들을 다시 비추어준다. 이는 존재의 틀 그리고 존재의 내용 사이에 어떤 관련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관계야말로 그 자체 기본적 카테고리이며, 모든 다른 것은 이러한 특징에 의해 수행될 뿐이다.“ (Bloch, EM: 71). 블로흐는 기이하고도 난해한 특징을 이런 식으로 언급하면서 ”틀Daß“과 ”내용Was“ 사이의 관계를 기본적 카테고리의 특징으로 확정하고 있습니다.
12. 카테고리 방향성의 일곱 단계: 블로흐는 말년의 저작물 『세계의 실험Experimentum mundi』에서 자신의 카테고리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카테고리는 블로흐에 의하면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카테고리의 방향 설정에 있어서 모두 일곱 단계로 나눕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논리적 술어에 해당하는 어떤 배경이 되는 차원으로서의 시간과 장소의 카테고리를 가리킵니다. 세 번째는 객관화와 방향성을 설정하는 인과론을 지칭하고 네 번째는 목적론의 카테고리를 가리킵니다. 다섯 번째 카테고리는 외부로 향해 자신의 면모를 출현시키는 형체이며, 여섯 번째는 상호적 소통을 담당하는 영역의 카테고리를 가리킵니다. 블로흐는 일곱째 카테고리로서 “실체Substanz”로서의 동일성을 설명합니다. 특히 일곱 번째 카테고리는 무언가를 현실로 드러내는 실현의 의미를 강력하게 내세웁니다. (Bloch, EM: 254).
13. 논리학적 측면에서의 존재의 결핍: 논리적 차원에서의 술어에 해당하는 카테고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곳은 항상 어둡습니다. 그렇기에 그곳은 등하불명이라고 제대로 인식되기가 어렵습니다. 그곳의 텅 빈 상태는 오래 이어지지 않습니다. 대신에 어떤 무엇과 관계 맺는 충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언가가 항상 자신의 고유한 것을 산출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존재 뒤에 무언가가 생각되고, 하나의 술어로 연결됩니다. 물론 우리는 현존재에 대한 “거기 없음Nicht-Da”의 관계를 하나의 사고로 여길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관계는 외연 그리고 내포, 무엇과 자신의 고유한 것을 서로 중개하고 연결한다. 이로써 우리는 수많은 존재가 바로 이러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논리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된다. 논리적으로 형성된 관계는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하여 어떤 보편적인, 다시 말해 더욱 보편적으로 변화된 무엇은 수많은 세부적인 것들의 내부에서 특별한 사건으로 출현하게 된다. 의미심장한 발언은 연속적으로 과연 어떠한 무엇이 존재하는지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것은 제각기 주어진 수많은 개별성 그리고 이것이 고유한 방식으로 찾아내려는 보편성 사이의 관계를 밝혀낸다.” (Bloch, EM: 70).
14. 모사 이론이 아니라, 산출 이론이 중요하다.: 상기한 사항을 세부적으로 해명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인식 이론도 아니고, “모사 이론Abbildtheorie”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산출 이론Erzeugungstheorie”도 아닙니다. 물론 모사 이론은 스토아 철학과 파르메니데스에 관한 블로흐의 연구에서 참고 사항으로 잠깐 언급된 적이 있으며, 물질 이론을 논하는 자리에서 산출 이론보다도 더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왜냐면 산출 이론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두뇌에서 도출해낸 내용을 체계화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모사 이론은 모조리 배격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이것은 관념 이론의 반대급부의 사항을 분명히 전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플라톤은 최상으로 관찰된 이데아를 오로지 천국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산출 이론은 인간 노동의 생산성과 결부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물질적 측면의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 가령 잠바티스타 비코Giambattista Vico라든가 헤겔 등의 철학자는 구체적으로 증언한 바 있습니다. 말하자면 산출 이론은 천상의 영역에 도달하려는 모사 이론의 경향성과는 달리, 물질 이론으로 자신의 방향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산출 이론은 말하자면 인간 역사로 향하고 있다. 적어도 산출 이론과 모사 이론이 서로 고립되어 있지 않고, 산출 이론이 모사 이론 속으로 파고든다면 그러하다. 이는 모사 이론이 저세상의 영역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의 연속적 상의 이론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Bloch, EM: 62).
15. “포착 -> 판단 -> 개념 -> 결론”: 상기한 연속적 상의 이론을 활용하는 자는 바로 인간입니다. 인간은 세계의 변화가 진행되는 과정의 최전선에서 움직이면서 미래에 도래하게 될 구체적 내용을 자신의 의식 속에 떠올립니다. 그는 연속적으로 떠오르는 상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여러 가지 조건들을 인지합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세계 속의 잠재성을 찾아내려는 사고를 도출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러한 사고는 결코 통상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논리학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완성할 수도, 형성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이른바 “개념 -> 판단 –> 결론”이라는 전통적 방식으로는 해명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존재는 움직임 내지는 흐름 속에 자리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현존재의 방식에 관한 어떤 보편적인 발언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블로흐에 의하면 판단 형성의 출발점에 위치하는 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순서에 의해서 완성됩니다. 즉 “포착 -> 판단 -> 개념 -> 결론”이라는 순서 말입니다.
16. 우리는 무엇을 포착하는가? 블로흐는 이를 논리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듭니다. “흔히 ‘비 온다.Es regnet’라고 말할 때 비-인칭 주어인 ‘es’는 술어에 해당하는 ‘비 온다’와 연결되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그것은 장롱이다, Es ist ein Schrank.’라고 말할 때 ‘그것’은 ‘장롱’과 연결되고 있다. 두 문장의 경우 ‘es’는 서로 다르게 기능하기 때문에 서로 다르다. 그렇지만 만약 우리가 어떤 관여하고 개입하는 불확정적 주어를 미리 고려한다면, ‘es’는 하나의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설정되는 같은 주어일 것이다. 여기서 포착은 논리적으로 판단 이전에 설정된 무엇이다.
그러니까 주어인 ‘es’는 술어를 통해서 비로소 개념화된다. 여기서 포착은 술어를 통해서 하나의 개념으로 뒤늦게 정해지는 것들이다. 달리 말하자면 ‘es’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정해져야 하는 포착의 개념이다. 이러한 포착은 논리학적 차원에서 모든 주어 속에 미리 자리하고 있다. 판단이 존재하는 까닭은 주어를 술어를 통해서 개념화하기 위함이다. 주어에 해당하는 ‘es’는 단순한 것 같으나, 복잡한 외연을 위해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외연이 주어져야만 술어 속에 도사린 (내포에 해당하는) 무엇이 규정될 수 있다.” (Bloch, EM: 39).
17. 존재는 하나의 완결된 무엇 내지는 비역사적인 무엇이 아니다. 존재의 형성에 대한 차원은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시간 그리고 장소가 아닙니다. “아직 아닌 존재das Noch-Nicht-Sein”가 머무는 “지금”은 현재라는 개념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과거와 미래를 전제로 하는 표현입니다. 마르크스 역시 현존재의 형태에 관한 차원을 그런 식으로 이해했습니다. 현존재의 형태에서 두 가지가 인식됩니다. 그 하나는 “이루어진 무엇”이며 다른 하나는 그곳에서 “허망하게 사라진 무엇”입니다. 그렇기에 마르크스는 논리성을 역사성과 분리된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사실 사고와 존재는 특정한 전제 조건 없이 무조건 구분해서 다룰 수는 없습니다. 만약 사고에 해당하는 “논리Logik”을 존재에 해당하는 “존재-논리Onto-Logik”와 별개의 것으로 다루면, 사람들은 가상을 동시에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시민 사회는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서 존재와 사고를 별개로 구분해 왔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이데거는 존재를 하나의 완결된 무엇 내지는 비역사적인 무엇으로 파악했지만, 블로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존재는 블로흐에 의하면 그 속에 도사린 가능성의 척도에 따라 비로소 역사적 특징을 견지하게 되는 무엇입니다. 이때 존재는 이로써 변화되고, 사고 역시 존재와 함께 발전을 거듭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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