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
고현철
다음 빈칸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낱말을 쓰시오.
사람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 )를 용서한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 그렇게 용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이 이 ( )의 혹독함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것보다 마음속으로부터 어떤 의식이 깨어 있었더라면 .... 많은 고대의 ( )들은 그들 곁에서 커온 총애자에 의해 제거되었다. 이러한 일을 행한 자들은 ( )의 본질을 알았고, 권력을 믿지 않았으며, ( )가 의지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 )는 누구를 사랑하지도, 누구에게 사랑을 받을 수도 없다.
실린 곳: 고현철 시집, 평사리 송사리, 전망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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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고전을 읽으려면, 지금 여기의 문제점을 연상시키는 문헌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고현철 시인은 놀랍게도 에치엔 드 라 보에시 Etienne de La Boetie 의 "자발적 복종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 "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 ) 속에 들어갈 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단어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이름도 아닐 것이다. 고현철 시인은 어째서 한 단어를 괄호로 처리했을까? 그 까닭은 언제 어디서든 간에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독재 체재 내지는 엘리트 과두 정치 체제가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상상력이다.
고현철 시인의 견해에 의하면 지금 여기 민주주의가 정착된 지는 불과 몇 십년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한 번도 일제 식민지 청산을 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서 친일 반국가 세력이 지금 이 순간까지 사회의 상류층을 구성하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전두환을 제대로 처형시키지 못했기에 굥석열이라는 괴물이 나타나, 군대를 동원하여 영구 집권을 획책한 게 아닐까?
고(故) 고현철 시인은 시대의 지진계와 같은 분이었다. 아니, 시인은 김상욱 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탄광의 카나리아와 같은 분이었다. 카나리아는 이산화탄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새다. 깊은 갱로가 무너질 위험이 있으면, 카나리아 새는 이산화탄소를 예리하게 맡고 이에 격렬하게 반응한다.
고현철 시인은 부산대 총장 간선제에 반대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5년 8월 17일 본관 건물 옥상에서 투신 자살하였다. 그분은 다음과 같은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이다. 그래서 중요하고 그 역할을 부산대학교가 담당해야 하며,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걸 감당할 사람이 해야 한다. 그래야 무뎌져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각성이 되고 진정한 대학의 민주화 나아가 사회의 민주화가 굳건해 질 것이다."
오늘날 대학 교수는 겉보기에는 그럴듯하고 편안한 직종처럼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교수 역시 임금 노동자일 뿐이다. 수직구도의 권위주의 사회에서 일개 직원처럼 하나의 도구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사장 -> 총장 -> 교원 -> 직원 -> 학생으로 이어지는 수직 구도를 생각해 보라. 학교 당국은 학생 -> 직원 -> 교원 -> 총장 -> 이사장 을 용납하지 않는다 ) 교수 노조의 필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사립대학들은 끼리끼리 뭉친 파벌 그리고 막강한 자금을 동원한 단체다. 대학의 이사들과 연줄이 없는 교직원들은 일꾼 내지는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수직 구도의 폭력은 국가 권력, 씨족 이기주의의 횡포 그리고 막강한 재화를 활용하는 금력에 의해서 자행된다.
고현철의 시 "고전 읽기"는 우리에게 다음의 사항을 시사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막강한 권력과 금력을 휘두르는 위로부터의 잔인한 횡포를 근절해야만 실현 가능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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