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 무늬 하루
선안영
1.
맨살의 두 다리를 스타킹에 넣는 순간
그물 병에 갇힌 듯 파닥이며 저항한다
포획된 먹잇감처럼
불행이 감전되는
2.
매일매일 출발할 뿐 도착한 적 없으니
혀를 깨문 시간은 정글의 피맛이 나
날쌔게 잭나이프 칼날처럼
나를 구겨넣는 날
3.
찔레 넝쿨 가시 속 비상같은 흰 꽃 피어
우거진 질문들을 받아쓰는 물 웅덩이
패어진 길의 등짝에 또 얼룩이 꽃핀다.
..............
선안영 시집, 저리 어여쁜 아홉 꼬리나 주시지, 문학들 2021. 74쪽 이하.
선안영 시인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작품 얼룩 무늬하루는 (직장?) 여성이 겪는 불안과 피해 의식을 작품 속에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직장을 구해 처음 출근하는 대부분 여성은 "포획된 먹잇감"으로 간주되는가? 심한 표현 같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미는 매일 출근하지만, 처음에는 크고 작은 행복을 만끽할 수 없다. 스타킹 속의 다리는 파닥거리는 생선의 맨살과 같아 비친다. 바깥은 돈의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철저히 남성 중심적인 약육강식의 사회다. 정글의 피맛이 느껴지지만, 모든 감정과 오기를 마음 속에 감추어야 한다. 때로는 성희롱의 언사도 감당해야 한다. 매일 일터로 향하며 혀를 깨물면서 버티지만, 마음은 편할 날이 없고, 천근만근 무겁다.
물론 모든 직장 여성이 다 그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크고 작은 상처를 가슴에 묻어두면서 일해야 한다. 왜 내가 이 직장에 매여 있어야 하는가? 일단 내 생각을 가슴 속에 구겨 넣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 자신이 온통 독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었겠지. 나는 독을 품은 한 떨기 꽃이다. 불행이 감전되는 듯하다. 꽃은 마치 비상처럼 나와 타자를 소름 돋게 만든다. 꽃은 얼룩진 독의 상처로 피어나는 애처로운 영혼이다. 과연 언제 아픔을 극복하고 영혼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그러나 모든 터널은 끝나게 되어 있다.
'19 한국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설호: 김수영의 시문학, 비판의 비판 (0) | 2025.04.09 |
---|---|
(명시 소개) 고현철의 시, '고전 읽기' (0) | 2025.04.01 |
서로박: (3) 문창길의 시, '너는 네 우주를 안고 돌아올 것이다.' (0) | 2025.03.03 |
서로박: (2) 문창길의 시, '너는 네 우주를 안고 돌아올 것이다.' (0) | 2025.03.03 |
서로박: (1) 문창길의 시, '너는 네 세계를 안고 돌아올 것이다.' (0) | 2025.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