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작품 돈키호테는 문학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를 주제화하고 있습니다. 돈키호테는 거룩한 이상을 실현하려는 꿈을 꾸고 있는데, 일반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간주하고 조소를 터뜨립니다. 세상에 이다지도 어처구니 없는 오해가 있을 수 있는지요? 김지하의 『밥』에 언급되는 에피소드입니다.
어느 봄날 광대부부는 이 마을 저 마을로 유랑하고 있었습니다. 강물이 녹아서 강가에는 얼음이 녹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강을 건넜을 때, 뒤따라오던 아내가 그만 강에 빠진 게 아니겠습니까? 광대는 아내를 구할 밧줄도 없고, 발만 동동 굴렸습니다. 그러다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자 행인들은 광대가 춤을 잘 춘다고 박수만 치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위기를 알리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예술적 분위기 내지 기술에만 박수를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위의 그림은 렘브란트의 "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입니다. 로마 병정들은 나사렛 출신의 유대인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의도하면서, “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하고 말하면서 낄낄거리며 웃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계를 구원하려는 고결한 이상을 품고, 이를 실천하려고 하는데, 일반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기는커녕 아예 미친 자로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그의 머리에는 INRI (Jesus Nazarenus Rex Judaeorum)가 새겨져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 나자렛 출신의 예수 - 그 때 그리스도는 이렇게 토로합니다. "오 하느님, 그들은 스스로 무슨 일을 자행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영웅의 고결한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체 게바라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더 많은 월남을!” 하고 외치며 볼리비아로 떠났습니다. 그는 쿠바에서의 혁명에 만족하지 않고, 남미 대륙을 착취로부터 해방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소시민 농부들은 눈앞의 먹을 것 그리고 편안한 잠을 원할 뿐입니다.
만약 농부들, 소시민들이 체 게바라를 이해하고 그의 갈망과 이상을 파악하며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더라면, 그는 밀림에서 그렇게 허망하게 게릴라 사냥꾼에 의해 발사된 총탄에 개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소시민의 의식이 무조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그게 때로는 사회의 변화에 커다란 악재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러 돈키호테는 자신의 망상을 깨닫고 마침내 현실 감각을 되찾습니다. 이때는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그의 시종 산초 판사는 처음부터 냉정한 현실주의자였는데, 주인공의 영향으로 갈망이 무엇인지, 다른 찬란한 세계가 무엇인지 감지하게 됩니다. 돈키호테가 현실 감각을 찾는 반면, 냉정한 현실주의자 산초 판사는 인간의 꿈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고 하더라도 주위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살아갑니다.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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