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초상화를 보면 레싱의 머리통이 예사롭지 않게 보입니다. 원래 이러한 두상은 관상학적으로 큰 인물이 된다고 합니다. 신라시대에 강수(强首)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역시 머리통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습니다. 그 역시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자신의 내적인) 훈련을 통해서 가장 위대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비밀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진리를 찾으려는 끝없는 노력, 바로 그것이다. 열정과 새로운 무엇을 알아내려는 욕망이야 말로 인간을 결국 완전한 존재로 만들게 한다." 곳홀트 에브라임 레싱 (1729 - 1781) 독일의 계몽주의 극작가. 독일문학의 역사에서 그가 지니는 비중은 참으로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레싱이 태어난 도시 카멘츠의 시청 건물. 카멘츠는 드레스덴의 복동쪽에 위치한 소도시입니다. 체코와 가깝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찬란한 건물들이 많지만, 과거에는 이와는 달랐습니다.
카멘츠의 정경. 독일의 전역에서는 이런 식의 붉은 지붕이 즐비합니다. 의식주 가운데에서 독일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옥입니다. 동양인들이 식사, 거주지 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의복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옷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의복이 날개다.". 신언서판 (身言書判)을 생각해 보세요.
레싱 박물관 , 정원에는 레싱의 흉상이 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친구 역시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어요.Ein unbekanner Freund ist auch ein Freund. " (에밀리아 갈로티) 공명정대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은 개방적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알려고 노력해야 하고, 이전의 친구와도 우정을 쌓아야 합니다. 친구는 나에게 이득만을 가저다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기쁨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수단으로 사람을 사귀지 말아야 하고, 친구에게 가급적이면 많은 것을 베풀려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익히 아는 것만 가까이 하려고 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사람을 접하고 배우려는 마음 - 이것이 우리를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합니다.
레싱의 책. 현인 나탄. 앞에는 레싱의 친필이 쓰여져 있습니다. 레싱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손해보는 자는 두 가지 부류라고 합니다. 그 한명은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자이며, 다른 한 명은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사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입니다. 허망한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게다가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볼폔뷔텔의 도서관. 여기서 레싱은 도서관 사서로 일했는데, 월급이라고는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레싱은 독일 최초의 "전업 작가 der freie Schriftsteller"로서 많은 작품을 집필하였습니다. 전업 작가는 오로지 글만 써서 먹고 사는 작가를 가리킵니다. (오늘날 전업작가로 살아가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원고료가 박하기 때문입니다.) 1777년에 그는 이곳에 아내인 에바 쾨니히와 함께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습니다. 현재 이 건물은 레싱 하우스로서 거의 박물관처럼 활용되고 있습니다.
모제스 멘델스존 (1729 - 1786) 유대 출신의 철학자. 레싱의 절친한 친구로 함께 지냈습니다. 그의 딸 도로테아는 나중에 프리드리히 슐레겔과 결혼하여 살았으며, 낭만주의 음악가, 펠릭스 멘델스존은 그의 손자이기도 합니다. 레싱은 멘델스존을 생각하며, "현인 나탄"을 집필하였습니다. 모제스 멘델스존은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참으로 훌륭한 점을 많이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손해를 당한다고 하더라도 더 큰 이득 (사회적 정의 등)을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이를 실천하였습니다.
옛날에 아들을 셋 둔 사내가 있었습니다. 죽기 전에 자신이 가진 반지를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했는데, 그는 세 아들을 모두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몰래 두 개의 반지를 만들었습니다. 세 개의 반지는 겉으로는 전혀 진품인지 모조품인지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사망한 다음에 세 아들은 자신의 반지가 진짜라고 주장하며 서로 싸웠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법정에서 서로 다투었습니다. 재판관은 다음과 같이 판결을 내렸습니다. "반지가 진품인지 모조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보다도 중요한 것은 세 개의 반지를 비밀리에 만든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랑하는 마음이다." 여기서 반지는 어쩌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가리키는지 모릅니다.
현인 나탄에서 "반지의 우화"는 우리에게 기독교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가 하나의 뿌리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유대교는 기원전 10 - 6세기 모세에 의해서 탄생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구약성서를 읽으면서 유대교를 숭상합니다. 기독교는 주지하다시피 기원 후 0년에서 33년까지 살았던 예수에 의해서 탄생하였습니다. 신약성서는 구약 성서와의 연관 없이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슬람교는 570년에서 632년에 살았던 무함마드에 의해서 탄생하였습니다. 이슬람 종교의 성서, 꾸란 속에는 구약성서와 신약 성서를 바탕으로 변화된 믿음을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세 종교의 뿌리는 동일합니다. 현인 나탄은 전쟁을 통해서 기독교인에 의해 아내와 자식들이 살해당하는 처절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기독교도의 아기를 발견하고 그미를 자신의 딸로 키웁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기를 원수의 핏덩이라고 생각하고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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