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문학 이야기

서로박: (1)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

필자 (匹子) 2025. 3. 7. 10:12

친애하는 S, 세상 사람들은 때로는 문학과 예술을 잘못 이해합니다. 잘못 이해하여 놀랍게도 창조적 수용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통해서 해석학자인 가다머Gadamer는 독자 중심의 해석학 이론을 도출해낸 바 있지요. 어쨌든 작품이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는 것은 작가의 입장에서 고찰할 때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오늘날 세계 명작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은 한 인간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몰이해를 주제화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명작들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은 돈 키호테입니다. 사진은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 (Miguel de Cervantes의 동상을 찍은 것입니다. 그는 28세에 레판토 전투에 참가하여 왼팔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레판토의 외팔이"였습니다. 그가 작가로서 활동한 것은 35세 때부터였습니다. 당시 그가 이십대와 삼십대에 보낸 삶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것이었습니다. 세르반테스는 1547년 에스파냐의 알칼라에서 태어나, 1616년 마드리드에서 사망했습니다. 1616년에는 셰익스피어가 사망한 해이기도 합니다.

 

 

 

 

세르반테스가 태어난 알칼라 드 헤나레스라는 지역의 풍경. 알라카 드 헤나레스는 마드리드에 속하는 인접 도시입니다.

 

 

 

세르반테스는 에스파냐의 살라망카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우연히 젊은 남자의 결투 신청을 받아서 그를 죽이게 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1517년에 그는 해군에 자원 입대하여 레판토 전투에 참가하였습니다. 1575년에는 알제리에서 노예 신세로 전락하여,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그가 노예 신분으로서 겪은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1580년에 트리니다드 교단의 도움으로 마드리드로 돌아올 수 있게 됩니다. 1580년 그는 다시 군인으로 차출되어, 아초렌 전투에 가담하였으며, 1583년에야 비로소 마드리드에 정주하여 작품을 집필하게 됩니다.

 

 

 

왼쪽은 정상인의 뇌 활동을 적외선 사진으로 촬영한 것이고, 오른쪽은 조현병 환자의 뇌 활동을 촬영한 것이다. 도파민의 활동이 과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돈키호테는 자신이 중세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오늘날에 이르러 정신 분열증Schizoprenia의 원인은 의학적으로 거의 증명되었습니다. 뇌의 신경 전달물질인 도파민의 분비가 과다하게 출현하여 나타나는 질병으로 일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약물을 통하여 도파민 분비를 감소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당뇨병처럼 오랜 기간 약을 통해서 치료하면 완치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정신분열증의 치료제로 쓰이는 할로페리돌(haloperidol)이나 클로로프로마진(chloropromazine)은 도파민 수용체의 작용을 방해하는 약물입니다.

 

그런데 세르반테스가 살던 시대에서는 이러한 의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심리학이라는 분야 역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돈키호테는 많은 기사 소설을 읽고, 현실 감각을 상실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돈키호테는 문학적 세계를 현실이라고 믿고, 주어진 세계를 가상이라고 간주합니다. 모든 사건은 이러한 시대 착오적 착각 내지는 편집 망상증에서 발생합니다. 그는 16세기에 살고 있지만, 자신이 중세에서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슬픈 기사 아마디스와 동일시합니다.

 

 

 

 

 

돈키호테는 남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던집니다. 그러나 언제나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고, 일을 망치곤 합니다. 제 하나 몸조차도 건사하지 못하는데, 그는 불쌍한 처녀들을 보호해 주겠다고 공언합니다. 언제나 타인의 마음속에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기사는 고독한 바보입니다.

 

그의 체격은 장대하나, 몹시 말랐습니다. 누렇게 찌든 얼굴, 광대뼈 등은 광기로 인하여 수척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돈키호테의 뇌리 속에서 어떤 바보 같은 착상이 끓어올랐을 때, 책의 사소한 내용들은 어느새 연상 작용을 불러 일으켜, 스스로 점화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책의 내용이 상상이 끝난 다음에도 돈키호테의 삶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그의 내적 정서 속에는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자질구레한 사건들이 영속적으로 이어지면서, 그의 현실 감각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돈키호테는 한 번도 현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합니다. 거세된 양떼는 군인들로 보이고, 구름은 적들이 도사리고 있는 성 (城)으로 비칩니다. 풍차의 날개는 험상궂은 거대한 인간으로 보이며, 반쯤 깨어진 이발사의 세숫대야가 햇빛에 비칠 때, 그것은 영웅의 투구로 보입니다. 기사가 갈망하는 꿈은 날개 달린 말, 날개 달린 사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햇빛에 비쳐 불타는 듯이 보이는 바다, 그리고 누군가 헤엄치는 듯이 떠있는 섬들은 마치 수정으로 만들어진 왕궁과 같이 보입니다. 주인공의 이러한 착각은 단순히 사회적 시대착오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름대로의 고대적 갈망의 특성을 지닌 것으로서, 어떤 미래의 세계와 지속적으로 결부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돈키호테의 미래는 무엇보다도 고결하고, 아주 휘황찬란한 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의 일그러진 영웅”은 어느 날 아주 몹쓸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의 몸은 주먹질로 인하여 만신창이가 되어, 온 몸이 멍들고,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삭신이 쑤시기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는 목로주점의 다락방으로 간신히 기어 올라갑니다. 이때 가축을 돌보는 하녀가 돈키호테가 누워 있는 방에 살며시 기어 들어옵니다. 그러나 그미는 돈키호테의 눈에는 하녀로 비치지 않습니다. 그미는 고결한 전투에 가담하여 싸운 위대한 기사를 위로하러 나타난 아름다운 공주였던 것입니다.

 

돈키호테는 손을 뻗어, 그미를 맞이합니다. 그미의 셔츠는 거친 포장용 천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나, 가장 섬세하고 가장 부드러운 고급 아마 (亜麻)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미가 들고 있었던 유리 등불은 그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동방의 진주와 같은 찬란한 광채를 발하고 있습니다. 그미의 머리카락은 마치 말갈기처럼 뻣뻣했는데도, 그에게는 가장 세련된 아라비아 황금빛 머리카락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잠자지 못한 그미의 입에는 샐러드 냄새가 가득했는데도, 돈키호테는 이를 이국적인 향긋한 조미료 냄새로 받아들일 뿐이었지요.

 

 

 

돈키호테는 토보소에 거주하는 둘시네아를 가장 아름다운 미녀라고 생각한다. 그미는 실제로는 그냥 이목구비가 면상에 박혀 있는 지극히 못생긴 처녀였다.

 

 

인간 삶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자는 “사랑하는 임”일 것입니다. 가령 완전무결한 처녀로서 돈키호테의 뇌리에 존재하는 둘시네아는 주인공에게 엄청나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돈키호테는 그미를 직접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둘시네아와 조우하는 일은 한편으로는 진정으로 바라는 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난 두려움과 환멸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사들은 사랑하는 임에 대한 연애봉사를 실천하면서도, 사랑과 성에 대해서는 지극히 소극적 태도를 취합니다. 눈을 감으면 천국의 형상 속에서 아름다운 공주를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눈을 뜨면 기사는 고해의 현실, 불의와 죄악이 창궐하고 있음을 바라봅니다.

 

 

 

 

그러니까 기사들은 어떤 정복될 수 없는 처녀 외에는 어떠한 다른 여자를 완전한 여성이라고 칭송하지 않습니다. 문 앞에서의 이러한 기다림, 상상 속에서 완전무결한 미녀를 갈망하는 행위는 돈키호테에게 엄청난 위안으로 작용합니다. 왜냐하면 꿈속에서 그의 상상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돈키호테는 사랑하는 여성에 대한 편력기사들의 우상 숭배를 찬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러한 자세에 대해서 자부심을 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인은 이러한 우상 숭배를 통하여 “거의 도달될 수 없는 고결한 분”이라는 것입니다.